(함께나눠요) 어서오세요, <퀴어의 방>에

(함께나눠요) 어서오세요, <퀴어의 방>에

 

어서오세요, <퀴어의 방>에
-거부당한 세상 안의 거부 하우스-

 

*[함께 나눠요]에서는 서울인권영화제의 지난 상영작과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23회 서울인권영화제 "적막을 부수는 소란의 파동"의 상영작 <퀴어의 방>을 나눕니다.

 

또 한 번의 아이다홋을 맞이하며 ‘커밍아웃’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뜻의, 이제는 모두에게 익숙해진 표현. 그러나 코로나 시대의 우리가 이 말을 되뇌는 방식은 사뭇 다를 수 있다. 질병에 대한 혐오가 감염인과 특정 정체성에 대한 혐오로 번져가는 오늘, 우리는 커밍아웃이라는 말로부터 커밍아웃 저편의 삶을 떠올린다. 외부로부터의 침범에 대응하며 지켜가는 삶과, 그런 삶의 공간. 우리는 영화 <퀴어의 방>에서 ‘벽장’이라는 공간의 생경한 무게와 정동을 실감한다.

세계는 자꾸만 누군가를 어딘가로 내몰았고, 우리는 보다 자주 그곳으로부터 내몰렸다. 혐오에 반대하는 날을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나의 정체성을 가시화하는 기념일이 존재하고, 나를 추모하는 날이 존재하는 삶을 사는 것. 다시 말해, 생활이 생존이 되는 것. 일상적이지 못한 일상이 존재하는 한, 삶이 영위되는 장소인 공간 역시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한다.

공간의 소유와 점유에는 ‘자격’이 필요하다. 사회가 인정하고 부여하는 자격을 가지지 못한 모든 것들은 집에서마저 하나의 방으로 내몰린다. 이에 영화의 제목은 ‘퀴어의 집’이 아닌, <퀴어의 방>이 된다. 영화의 퀴어들은 각자의 방으로 내몰리는 동시에, 그 분리와 억압의 틀인 방마저도 너무나도 퀴어다운 공간으로 만들어간다. 그렇기에 벽장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커밍아웃을 도모하는 것 너머의 의미를 가진다. ‘퀴어’라는 원어에 담긴 혐오를 전복하고 그것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듯, 나의 삶을 거부한 세상 안에 ‘거부 하우스’를 꾸려나가는 것. 거부당한 몸들이 요리를 하고, 소파에 뒹굴고, 무지개 스티커를 곳곳에 붙여두면서도 자신이 퀴어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있기에 퀴어로서 존재할 수 있는 방. <퀴어의 방>은 그런 곳이다. 그리하여 퀴어의 방은 퀴어의 세계가 된다.

그 누군가의 방을 떠올린다. 늘 그랬듯 명명은 권력의 언어였고, 질병은 공간의 권력과 공간에 대한 권력 모두를 보여줬다. 자신만의 공간이 없어 일터로, 거리로, 가해자가 상주하는 공간으로 떠밀려간 사람들이 있었고, 공간에 대한 낙인과 침범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었다. 공간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공간은 재난만큼이나 평등하지 못했다 - 혐오는 공정하지 않았으므로. 공정하다면 그것은 혐오가 아니기에.

모든 아픔은 동등하지 않다. 혐오가 일상화된 시대에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연대의 정신을 드높일 우리는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픔이 동등하지 못하고, 재난마저 평등하지 못한 현실을 끝끝내 받아들이고 마는 이들의 맑은 슬픔과 순수한 분노. 우리로 하여금 ‘모두에게 더 나은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한 그 힘을 믿는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권태

 

*영화 <퀴어의 방>은 상영지원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함께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인권영화제로 연락 주세요. 02-313-2407, hrffseou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