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편지) 오랜 습관

(자원활동가편지) 오랜 습관

그 길을 걷는 내내 가슴이 떨렸습니다. 가기 하루 전부터 마음을 준비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갔던 것만 같았습니다. 전(前)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로, 습관처럼 서대문역에서 내려 출구를 찾고 익숙한 길을 걸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로 급히 워킹홀리데이를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솔직히 이게 무슨 낭패인가 싶었습니다.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을 뜨겠다며 외국을 가는 족족 호언장담한 기간을 못 채우고 돌아오는 제가 참 민망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조용히 한국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23회 서울인권영화제 단톡방에 회의에 가도 되냐고 묻기 전, 며칠 동안 망설였습니다. 다시 보면 어색하기만 하지 않을까. 솔직히 겁이 났습니다. 막상 회의에 갔다가 낯섦만 느끼고 쓸쓸하게 집에 돌아와야 할까 봐요. 

사무실의 문을 열었을 때 들은, 저를 반겨주는 목소리가 몹시도 따뜻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들은 인사는 한국에 돌아와서 들은 것 중 가장, 가장 제 마음을 안도하게 만든 인사였습니다. 이건 뭘까요? 왜 여긴 이렇게 쿨하고 다정한 걸까요? 

 

안녕하세요, 23회 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를 시작한 채영입니다.

이 코로나 시국 속에서 다행히 일을 구했습니다. 서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필수 노동시간을 채우려면 아마도 서울인권영화제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어 욕심을 내, 24회 서울인권영화제 그룹 채팅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주 작은 티끌이라도 제 손으로 만들어 영화제에 보탬이 될 수 있길 바라며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올해도 영화제를 보고 내후년에도 영화제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몇 년 후에도, 여기서 만난 분노와 좌절과 신뢰와 믿음과 양심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올해나 내년뿐만이 아니라 오래도록, 평생, ‘사는 데 돈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