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중간점검

(활동펼치기) 중간점검

6월 4일 회의록에 평소와 다른 논의안건이 적혀있었다. 크고 진한 검은 글씨로 적힌 “중간점검”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 어떤 직감이 섬찟하게 스쳐갔다. 아- 오늘 회의는 길어지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택시비는 영화제에서 지원해준다는 상임활동가 a의 말 뒤로 돈이면 다 되냐는 자원활동가 b의 회한 섞인 작은 궁시렁거림이 부질없게 허공에서 흩어졌다. 위이잉-. 짧은 진동이 울려 들여다 본 핸드폰 화면 속에 함께 사는 이에게서 온 카톡이 반짝였다. “오늘 늦니?” ···왜 그랬을까. 왜 그 두 마디가 그렇게도 시큰거렸을까.

회의록에 “중간점검”이 적히게 된 계기는 이랬다. 후원/홍보팀 회의에서 영화제의 확장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고 했다. ···그렇다. 못 알아들었다. 영화제의 확장성과 중간점검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잠시 고민하다, 내가 놓친 것이 있나 자문해보는 사이 미묘한 기류가 사무실을 감쌌다. 흠칫 몸이 떨려왔다. 그것은 중간점검을 미리 알고 있던 자들과 알고 있지 못했던 자들 사이의 간극을 지나쳐 누가 먼저 말할 것이냐 하는, 언제나 활동가들을 시험에 빠지게 만들었던 순간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짧은 침묵을 깨고, 내 앞에 앉아있던 상임활동가 c가 나를 지목했다. “명님은 할 말 없으신가요?” 세상에, 이렇게 정확할 수가.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회의를 타성으로 버텨온 나와 같은 자들에겐 그러한 지적을 벗어나게 해주는 무기가 하나쯤 있는 법이다. “아(멋쩍은 웃음), 아직 생각이 정리가 안 돼서요..ㅎㅎ”

첫 번째로 말하는 것에는 적어도 세 가지가 필요하다. ①안건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준비성 ②“저는..”이라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 ③특정 안건에 대해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 보통 회의에 참석할 때 난 세 가지 모두 없는 편이었으므로, “다음에 할게요(멋쩍은 웃음)”를 시전한 후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다행히 옆에 앉은 자원활동가 d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한 사람이었던지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나 둘 코로나 영화제를 준비하는 활동가로서 자신이 가진 고민을 나누어주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시간을 지나오면서 활동가 모두 각각의 고민이 있었을 테다. 24회 영화제가 연기되고, 짧은 기간 안에 새로운 영화제를 준비하는 일은 수많은 변수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채 온 몸으로 시행착오를 겪어나가는 과정이었다. 습관처럼 되뇌게 된 “사회적 거리두기” 처럼, 감염병은 가장 먼저 활동가들이 만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자신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은 천연동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들곤 했다. 같은 공간에 있지 못해도 영화제를 함께 꾸려나가고자 모니터 앞에 앉았지만, 화면 너머로 서로를 만나는 시간이 옆자리에 붙어 앉아 의논하고 농담을 나누던 때보다 ‘함께 한다’는 감각을 줄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도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새로운 담론이 쏟아져 따라가기 벅차 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아주 낯선 얼굴을 한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코로나19 이후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지만 답을 달지 못한 채 여러 질문들이 물음표 그대로 남았다. 나도 잘 모르는 것을 ‘쉽게’ 설명해야 한다는 어려움과 동시에 여러 가지 의제를 어떻게 연결시킬지, 어떻게 하면 오해 없이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이 더해졌다. 그렇게 생각을 다듬고 더해가는 중에 함께 고민의 방향을 잡아가기보다 서로의 의견에 대해 첨삭을 위주로 말을 덧붙였던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기약 없이 늦춰지는 일정과 ‘온라인 상영’이라는 첫 도전 앞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치기도, 무언가를 놓치기도 했던 것 같다. 정신 없이 지나간 시간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언어로 더듬어보았고, 함께 나누었다. 간직한 말이 없던 사람은 없었다. 어떤 해결책을 마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필요했던 것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 자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 이야기들을 ‘내가 무언가를 못해서’라는 자책으로 내버려두지 않아 다행이었다. 말이 곪기 전, 그것을 풀 실마리를 잡을 기회가 생겼다는 데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여전히 우리의 고민이 어떤 방점을 찍게 될지 아직 모르지만,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사회에서 ‘감염병’이 아닌 ‘사람’이 남기고 간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에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혼자라면 하지 못했을 선언에 각자 조그만 힘을 보태고 있는 중이다.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비말을 뿜을 준비를 한다. 본래 영화제란 것은 비말이 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의 생막걸리[1]를 생각해보라. 다만, 안전하게, 온라인으로 비말을 뿜을 것이다. 누구 말마따나, 요즘은 비대면이 대세니까. 사람에겐 무해하지만, 혐오의 뼈대를 녹일 침. 이제 한 달 뒤면 “코로나 19 온라인 영화제: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가 열린다. 

[1] 지지난주, ‘생활나누기거리’를 줄여서 ‘생나거리’라고 말한 것을 문자통역사님이 ‘생막걸리’로 통역해주셔서 활동가들의 웃음버튼이 되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