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코로나19와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0/06/17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위기가 되고 사회적 재난이 된 지 벌써 몇 달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단순히 숫자로만은 표현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는 대남병원 집단감염을 마주하며 20회 상영작인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함께 나누기도 했고,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연기하며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다른 자리를 갖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지난 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향을 공동으로 모색하자는 제안 속에서 코로나19 공동대응네트워크가 구성되었습니다. 총 22개의 인권단체(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광주인권지기활짝,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빈곤사회연대, 서울인권영화제,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언론개혁시민연대,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중심사람, 장애여성공감, 재단법인 동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모여 3월 11일 인권재단 사람에서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안전'과 ‘방역'의 이름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혹은 ‘안전'과 ‘방역' 바깥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생겨난 고민들을 나누었습니다. 몇 차례의 모임을 통해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고,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가이드라인을 집필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코로나19의 방역과정에서 드러난 인권의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한국사회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인해 위기 상황에서 더욱 취약해진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현실에 주목하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통해 위기 상황에서 우선시해야 할 인권의 원칙을 사회적으로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림1. 보고회 현장 사진. 가로로 긴 책상에 왼쪽부터 수어통역사, 발제자 세 명이 약 1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앉아 있다. 뒷벽 상단에는 ‘코로나19와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보고회’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그리고 드디어 6월 11일 목요일,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코로나19와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보고회가 열렸습니다. 190여 쪽의 자료집에는 코로나19 위기를 마주하며 여러 영역에서 드러난 권리 침해 상황과 이에 대한 인권의 원칙, 앞으로를 위한 사회적 제안이 담겼습니다. 아쉽게도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모든 내용을 나눌 순 없어 격리와 행정조치, 정보인권, 집회의 자유, 커뮤니케이션의 권리(언론), 아동・청소년, 장애, 수용자 파트에 대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인권에 있어 선후, 경중을 따질 순 없겠지만 보다 긴급하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했지요.
보고회의 풍경은 코로나19로 인해 여느 보고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 때문에 사전에 신청한 50명만 참석이 가능했고, 사전에 발열체크를 하고 명단을 작성해야 했고, 발표자도 참여자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습니다. 50명의 사전신청 인원이 금세 찬 뒤에도 참석하길 원하는 분들이 계셨지만, 온라인 중계를 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습니다. 그래도 수어통역을 배치하여 보고회의 내용을 보다 차별 없이 나눌 수 있도록 힘썼습니다.
[그림2. 코로나 19 인권대응네트워크가 SNS로 중계한 보고회 화면.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님이 방송중닙니다.’ 라는 문구 밑으로 보고회 현장이 라이브로 생중계되고 있으며 서른 명이 보고 있다는 뜻으로 숫자 ‘30’이 표시 되어 있다. 중계 화면에는 가로로 긴 책상에 왼쪽부터 수어통역사, 발제나 다섯 명이 간격을 두고 앉아 있다. 중계 화면 밑으로 실시간 채팅창이 열려 있고 우지양님의 ‘와 수어통역사배치!’라는 댓글이 떠 있다.]
더운 날씨에도 두 시간은 금방 흘렀습니다.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소주의 결론 및 사회적 가이드라인 발표를 마지막으로 보고회는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가이드라인 각 영역별로 고민하고 작성되었지만,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한 인권존중의 원칙, 그리고 차별금지와 특별한 보호의 원칙을 기초로 하여 위기에 대응하여야 한다는 결은 공통적이었습니다.
물론 190여 쪽에 달하는 보고서로도, 두 시간의 보고회로도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들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 가이드라인이 금세 실현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실현된다 해도 어디선가는 위기가 또 피어오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이 위기가 갑작스레 태어난 재난은 아님을 알았습니다. 뿌리깊은 차별과 배제, 불평등과 혐오의 장면들을 코로나19가 한꺼번에 드러냈을 뿐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코로나19를 “이기자”는 구호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겨내야 할 것은 바이러스 뿐만이 아니니까요.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끝없이 고민이 되면서도, 보다 적극적인 상상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보고서의 결론 중 한 부분을 함께 나누며, “코로나19와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보고회 소식을 마칠게요.
“우리가 말하는 재난과 위기가 종식된 사회는, 매년 25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사회가 아니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일상의 회복은, 수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삶을 마감하는 사회가 아니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재난과 위기가 극복된 사회는, 감염병의 위험이 특정한 집단,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거나 전가되는 사회가 아니어야 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안전한 사회는, 이주민은 제외하고 나만 안전하면 되는 사회가 아니어야 한다. 코로나19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인권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를 덮어둔 채 ‘재난위기가 극복되었다’, ‘일상이 회복되었다’ 혹은 ‘다시 안전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회복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 드러난 고통과 상처에 주목하는 일이다. 차별 없이 평등한 치료 및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혐오와 낙인의 조장을 방관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재난에 취약한 이들을 지원하는 것 등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나중이 아닌 지금, 불평등과 인권침해로 고통받는 삶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함께 미래를 상상하고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보고서 전문은 http://act.jinbo.net/wp/43050/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