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X서울인권영화제) 우리는 당신의 '정상'이 아니다

(차별금지법X서울인권영화제) 우리는 당신의 '정상'이 아니다

사진1. 영화 투병의 스틸컷. 커튼 새로 스미는 노란 빛이 어두운 방을 밝힌다. 커튼을 열고 창 밖을 바라보는 아나의 뒷모습과 그런 아나를 바라보는 반려견의 모습.

사진1. 영화 투병의 스틸컷. 커튼 새로 스미는 노란 빛이 어두운 방을 밝힌다. 커튼을 열고 창 밖을 바라보는 아나의 뒷모습과 그런 아나를 바라보는 반려견의 모습. 

영화 <투병>에는 유독 클로즈업샷이 많다.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라서, 부모의 손에 이끌려 9개월의 강제입원을 당해야 했던 아나의 눈을 깊고 고요하게 들여다보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진하고 단단한 눈썹, 넓고 깊은 눈동자가 말을 한다. ‘정상’이 아니었기에 겪어야 했던 나날들, 두려운 기억 속에 갇혀있어야 했던 관계들,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들.

한편 2013년 러시아에서는 동성애선전금지법이 제정되었다. 제정된 첫 해에 바로 두 명의 성소수자인권활동가가 첫 유죄선고를 받았다. 동성애선전금지법은 “비전통적인 성관계”의 홍보를 통해 “전통적인 가족 가치관의 부정을 목적으로 한 선전활동을 금지”한다. 이 법을 옹호하는 이들의 말에는 아무런 맥락이 없다. 자신들만의 정상성으로 비정상을 나누고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할 뿐이다. 그러나 혐오의 언어는 강력하다. 영화 <승리의 날>에서는 러시아의 성소수자 커플들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이들의 공간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흘러간다. 인터뷰가 이어지는 가운데, 창 밖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행진이 이어진다. 거대한 폭력의 현장에서 거두었던 승리를 기억하고 축하함과 동시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누군가의 존재를 창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얇은 유리창 사이로 정상과 비정상이 나뉘고 승리와 패배가 나뉘며 이 모든 것이 다시 한번 폭력의 현장이 된다. 

사진2. 영화 승리의날 스틸컷. 레즈비언 커플이 편안한 자세로 이불 위에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2. 영화 승리의날 스틸컷. 레즈비언 커플이 편안한 자세로 이불 위에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다.

 

혐오와 차별은 그냥 공기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에 너무나도 강력하게 달라붙고, 너무나도 강력하게 삶의 방향을 훼손시킨다. <승리의 날>에서는 동성애선전금지법의 제정 이후 자신의 소수자성을 빌미로 직장을 잃어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투병>에서의 아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병’이라고 하는 이들에 맞서 9개월간의 ‘투병’ 생활을 해야 했다.

 

2020년의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번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다. 처음이 아니다. 10년이 넘도록 차별금지법은 상상속의 동물처럼 우리를 맴돌았다. 누군가는 차별금지법이 천지개벽을 일으켜 세상이 망할 것처럼 말을 한다. 말은 쉽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천지개벽을 일으키지 않는다. 다만 당신의 ‘정상’이 나의 ‘비정상’을 규정할 수 없음을, 정상성의 구획에 맞추어 차별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혐오와 차별로 인해 누군가의 삶을 흔들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좋은 세상이란 무엇일까. 고리타분한 질문을 계속해서 되뇌게 하는 때다.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이 존중받고 스스로 삶의 방향성을 일구어 갈 수 있는 세상. 고루한 답변이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과정은 전혀 고루하지 않다.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착한 마음으로만 되지 않는다. 자신의 위치와 권력에 대해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고, 타인의 존재와 정체성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단순히 금지되어야 할 차별의 목록을 나열한 법이 아니다. ‘인권’이라는 너무 당연한 듯하면서도 잘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실현하기 위해, 성찰과 고민을 멈추지 않겠다는 사회의 약속이기도 하다. 차별과 배제가 없는, 혐오와 낙인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싸움을 끝까지 지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그것은 <투병>에서 아나의 눈이 말하는 것이고, <승리의 날>에서 창 밖의 행진을 바라보는 커플들이 말하는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은 이들이 너무 많이 말해왔다. 무엇을 얼마나 더 잘 이야기해야 하는가. 국회 앞에서 이어지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1인시위 피켓에는 “나중은 없다”, “우리가 없다”는 문장이 적혀있다. 이미 있는 존재를 언제까지 미루어야 하는가. 

누군가는 자꾸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존재는 누군가의 합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평등을 향해 달리는 급행열차에 훼방을 놓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린 당신의 ‘정상’이 아니며, 당신의 ‘정상’이 될 필요가 없다고. 평등 열차에는 바깥이 없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든 연결되어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기꺼이 그 연대를 맹신할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는 멈출 수 없고, 세상은 결국 달라질 것이다.

*<승리의 날>은 20회 서울인권영화제 “기억,하다” 중 ‘혐오에 저항하다’ 섹션, <투병>은 21회 서울인권영화제 “나는 오류입니까" 중 ‘혐오에 저항하다’ 섹션의 상영작입니다. 두 영화 모두 상영지원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함께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인권영화제로 연락 주세요. 02-313-2407, hrffseoul@gmail.com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