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편지) 완전히 안녕하게

(자원활동가편지) 완전히 안녕하게

편지를 쓰려고 하니 무슨 말을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괜히 타자를 눌렀다가 지우고 눌렀다가 지우고는 합니다. 만일 이게 종이였다면 이미 너덜너덜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에요. 편지를 쓰는 걸 즐겼던 날들이 있습니다. 저는 펜의 얇은 굵기를 좋아하고 꾹꾹 눌러서 쓰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건지 타자도 괜히 꾹꾹 누르게 됩니다. 

올 한 해는 어땠는지 떠올려 봅니다. 여러분의 2020년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2020이라는 숫자를 처음 봤을 때 대칭이 주는 안정감이 마음에 들었었는데 지금은 그 설렘이 닳아진 것 같아 어쩐지 아쉽습니다.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한 해를 뺏긴 기분이 든다지만 이게 저희의 삶이 아닐까요. 이게 우리의 최선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봅니다. 농담처럼 느껴지는 하루들이 실은 농담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게 아닐까요. 

이 글을 읽을 때 여러분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실지 저는 매우 궁금합니다. 저는 여름을 떠올리면 푸르른 빛깔의 나뭇잎들이 생각납니다. 초록초록한 잎사귀들이, 녹음들이 웅장하게 펼쳐진 모습을 떠올립니다. 국내외적으로 여러 소식들을 들으면 힘든 한 해구나 싶습니다. 비단 코로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다들 자신의 몫보다 더 큰 짐들을 지고 산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의 남은 시간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요즈음 부쩍 더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능력 있다는 말, 당당해지라는 말, 자신을 좀 믿어주라는 말이요. 칭찬을 듣는 건 어색하고, 부정하고 싶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가 저를 잘 알아야 하는데 하나도 모르겠고,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고, 내가 누군지 캄캄합니다. 어젯밤에는 삶이 버겨웠습니다. 그래도 아침은 온다는 말이 하나도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힘이 나지 않는 걸 인정하고 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이상한 모습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자주 언제 자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고 자기도 하고요.

이번 장마가 끝나면 몇 년간 묵힌 필름들을 들고 현상소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케케묵은 먼지를 털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잊고 있던 장면들을 들여다보아야겠습니다. 그러면 또 한 번 과거를 떠올리면서 ‘그랬었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인권영화제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지나갔습니다. 모두가 함께 한 덕분입니다. 저는 항상 시작은 창대하지만 끝은 미약합니다. 어영부영 끝납니다. 지금도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지만, 24회 영화제 준비는 어떻게 끝났는지 싶은 마음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디 잘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잘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편지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모두들 몸도 마음도 안녕하길. 각자의 안전한 공간에 있을 수 있길. 완전히 안녕하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