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보석 활동가의 코로나19 인권영화제 수어통역 후기

(활동펼치기) 보석 활동가의 코로나19 인권영화제 수어통역 후기

* “코로나19 인권영화제: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라이브토크에서 수어통역으로 활약해주신 한국농인LGBT의 상임활동가이자 서울인권영화제의 자원활동가 보석의 수어통역 후기입니다.

 

코로나19 인권영화제의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고민은 행사 기획 처음부터 시작한다.

 

‘비교’라는 것이 올바른 이야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약 10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이번 코로나19 인권영화제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느끼기에 보통 수어통역은 행사가 모두 기획되고 마지막에 챙겨야 하는 소품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소품 중 하나인 통역으로는 농인의 훌륭한 정보접근권은 기대하기 힘들다. (잘 보이지 않거나, 집중하기 어렵거나, 등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의 송출 통역들은 청인들이 보기에 좋은 화면 구성이나 무대 구성이다(청인들이 보기에 적절한 구색이 맞춰진 포맷). 농인을 위한 통역이라면 당연히 준비과정에 농인들의 의견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상식으로 생각되겠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뭐, 일부 반영된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 물론 간접 의견은 들어간다. ‘청인’ 수어통역사의 의견이다.(필자도 ‘청인’ 수어통역사이다.) 지금까지 농인들이 만족스러운 통역 화면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는 점에서, 수어통역사의 의견이 농인의 의견을 대변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수어통역이 소품 중 하나로 취급되는 현장에서 농인을 수어통역사(다시 말해 제3자)가 대변한다는 일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사진1. 김보석 수어통역사가 통역을 하고 있다.

(사진1. 김보석 수어통역사가 통역을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처음부터 하는 것은 코로나19인권영화제 준비 과정에서 했던 접근권에 대한 고민이 너무 기본적이고 상식적이지만, ‘상식’이라는 의미가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영화제가 했던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도전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인권영화제의 기획자들과 기술자들, 게스트들이 참석한 회의에는 수어통역사가 함께 참여한다. 이 회의에서 영화제의 굵직한 줄기들이 나오는데, 그 과정에서 농인들의 정보 접근이 보장되고 있는지도 함께 논의된다.

내가 수어통역사라는 위치에서 이 회의에 참여한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행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숙지할 수 있다는 것.

 

통역이란 전달하려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고 그 연설이 담고 있는 정서적이고 언어 미학적인 요소까지도 충실하게 바꾸어 전달해야 하는 고도의 지적 작업이다. 따라서 진정한 통역이란 말만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대한 지식, 상대국의 문물 사정까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의사소통으로서의 통역이다.

(정호정, <(제대로 된) 통역·번역의 이해>, 한국문화사, 2008)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수어통역사가 아무리 수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도 통역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내용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절대로 농인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통역을 할 수 없다. 그동안 ‘소품’ 중 하나로 배치되었던 통역사에게 내용과 맥락을 이해하고 통역할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이번 코로나19 인권영화제에서는 모든 준비과정에 수어통역사가 함께 참여했고, 기획자들 간에 공유되는 자료들 또한 모두 공유가 되어 수어통역사들이 행사의 모든 내용과 맥락을 이해하고 통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둘째, 평등한 의사결정 방법으로 진행된 회의에 수어통역사가 함께 했다는 것.

 

이것은 수어통역사가 가감 없이(눈치 보지 않고) 농인을 위한 정보 접근 방식을 제안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면을 어떻게 구성해야 농인들도 온라인 라이브 토크를 함께 즐길 수 있을까를 논의 하는 과정에서 기억 남는 일화가 있다. 나는 한국에서 (허용된) 수어통역 포맷들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기술적인 부분과 농인들이 보는 관점 그리고 코로나19 인권영화제에서 바라는 포맷에 합의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속으로 ‘차마 이건 좀 그렇지..’, ‘이것까지 말하면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이 아닐까?’, ‘청인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니 중간 합의점을 찾아야겠지.’와 같이 적정선이라는 것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마음 한쪽에 두었던 것을 ‘말해도 되나..?’ 하면서 제안했다.“혹시 이게 진짜 괜찮은 그림일 것 같은데…” 라고 어디선가 본 적 있는 통역 포맷을 제시하자 모두 ‘그게 제일 좋네!’ 하면서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오히려 회의 구성원들은 ‘제일 쉬운 길이 있었는데, 괜히 어렵게 돌아서 왔네!’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수어통역 준비가 시작 되었고, 그 결과가 이번 코로나19 인권영화제였다.

 

사진2. 코로나19인권영화제 라이브토크 현장. 활동가들이 일렬로 앉아있다. 왼쪽부터 백수진, 기선, 김현우, 남진영, 최규진. 김현우 활동가가 말하고 있고, 남진영 수어통역사가 통역을 하고 있다.

(사진2. 코로나19인권영화제 현장. 활동가들이 일렬로 앉아있다. 왼쪽부터 백수진, 기선, 김현우, 남진영, 최규진. 김현우 활동가가 말하고 있고, 남진영 수어통역사가 통역을 하고 있다.)

 

한국농인 LGBT 설립준비위원회는 물론 내 주변의 농인 지인들 모두가 입을 모아 이런 통역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호평을 해주었다. 깐깐한 피드백을 부탁드렸을 때 “굳이 말하자면…” 이라고 했던 작은 실수들이 있었지만,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농사회의 일원으로써 코로나19 인권영화제의 라이브토크 통역 경험이 아주 특별하다. 앞으로 통역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에 대해 말할 때 들 수 있는 교과서와 같은 예시가 생겼고, 코로나19 인권영화제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그동안 이런 포맷은 꿈과 같은 이야기라고 지인들과 자주 얘기하곤 했다.) 무엇보다 이 포맷이 농인들에게 호평받았고 그들이 원하는 포맷이었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평가일 것이다.

 

코로나19인권영화제 회의에서 통역 배치를 내가 자꾸 소심하게 제안하고 우려하는 태도를 보이자 들었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어중간하게 통역을 배치할 거라면) 안 하면 안 했지, 할거라면 제대로 해야지!”

 

한국농인LGBT 상임활동가,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