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섹스, 설교, 정치 그리고 일곱 권의 책

(함께나눠요) 섹스, 설교, 정치 그리고 일곱 권의 책

*[함께 나눠요]에서는 서울인권영화제의 지난 상영작을 함께 나눕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22회 서울인권영화제 "불온하라, 세상을 바꿀 때까지" 중 ‘맞서다: 마주하다, 저항하다' 섹션의 상영작 <섹스, 설교 그리고 정치>를 나눕니다. 이 영화 는 상영지원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함께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인권영화제로 연락 주세요. hrffseoul@gmail.com 02-313-2407

그것은 하루 만에 벌어졌다. 일곱 권의 책을 선정하는 데에 쓰였던 수일, 수 시간이 회수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단 하루였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일 년 동안 공을 들인 정책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철회하는 데 들인 시간은 단 하루였다. 토론도 논의도 없이 그렇게 일곱 권의 동화책은 ‘불온서적’으로 취급되어 공공 도서관에서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 한 명의 성인 남성의 발언에 재빨리 움직이는 ‘여성가족부’의 모습은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상시키기까지 했다. 

문제 제기의 내용은 익숙한 것들이었다. ‘아이들의 조기 성애화’ ‘동성애 조장’ ‘무분별한 성행위의 위험’. 학부모로서, 아이를 지킬 의무가 있는 한 어른으로서,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그렇게 ‘충격적이고 야한’ 책을 보여줄 순 없다는 것이었다. 정작 책을 읽을 예비 독자였던 학생들의 의견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도 하루 만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낙태 불법 시술 후 합병증이 생긴 잔디라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한다. 불법 시술을 감춰야 했던 자들은 그녀의 팔, 다리, 이, 턱 등을 자르고 잔디라가 있는 차에 불을 질렀다. 그 속에서 재가 되지 않은 것은 잔디라의 장기, 그중에서도 난소였다. 까맣게 탄 몸속에 남아 있던 난소가 잔디라를 세상에 알리게 될지, 가해자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잔디라의 죽음에 대해 복음주의 기독교인 출신의 정치인들과 목사들은 ‘그녀의 잘못’이라 말했다. 여성의 인권만큼 태아의 인권도 중요하기에 낙태는 여성이 태아의 인권을 마음대로 빼앗는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몇몇 정치인은 낙태를 불법화 시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자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낙태법과 한 여성의 죽음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은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진. 22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섹스, 설교 그리고 정치> 스틸컷. 메가폰을 든 활동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22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섹스, 설교 그리고 정치> 스틸컷. 메가폰을 든 활동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섹스, 설교, 그리고 정치> 는 잔디라의 사망사건을 시작으로  사회의 주류가 되어버린 복음주의 기독교와 기독교인 정치인들을 따라다닌다. 그들의 기독교 윤리가 어떤 방식으로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논리가 되는지를 가감없이 담는다. ‘낙태가 합법화되면 무분별한 성행위를 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 걱정(?), 동성애는 문란하며 저출산과 질병으로 사회를 위협한다는 등, 보수 정치인과  종교지도자들이 쏟아내는 말은 모두 한곳으로 통한다. ‘성’은 불온하므로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인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 미숙한 존재를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는 확신. 이러한 내용은 이번 나다움 어린이책 일곱 권을 반대했던 이들의 발언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고정관념이라고 보는 것은 우리 전통사회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아직 인지능력과 지각 능력이 미성숙한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사상이 동화의 형태로 제공된다면 우리 고유의 가치 기준에 반하는 사고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교육이 오히려 반사회성을 길러주는 독소적인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나쁜교육에분노한학부모연합 성명서 일부, 출처 : 크리스쳔투데이 2020.08.20 기사)

 

낙태가 합법화되면 여성들이 무분별한 성생활을 하고 임신을 가볍게 여길 거라는 생각과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성평등적인 성교육이 아이들을 조기성애화시키고 동성애를 조장할 것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닮아 있다. 그들에게 여성과 어린이는 언제나 미숙한 존재로 통제할 대상이다. 여성과 어린이를 사회적 주체로 인정하는 대신 피보호자의 위치에 고정해 놓고, 자신들이 보호자 역할을 행사하려 한다. 더불어 성소수자를 ‘전염병’ 취급하며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조건’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것도 기억하자. 장애인들의 결혼과 출산을 국가의 힘으로 금지했던 건 오래전 일이 아니다. 

 

‘전통’은 ‘성’이 사적인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성은 정치적이라고. 권력자들이 성을 이용하여 국민을 통제하려 한 사례는 한두 개가 아니다. 

어른들은 성에 관련된 질문을 하는 아이에게 정확한 대답 대신 입술 앞에 검지 손가락을 대며 ‘쉿’ 이라고 했다. 그렇게 ‘성’은 음지로 밀려나고 또 밀려났다. 그 음지 속에서 N번방이 탄생했고 불법동영상유통시장이 자라났다. 성교육이 부재한 교육환경에서 이 음지는 많은 청소년의 ‘성교육 현장’이 되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것의 피해자는 여성, 여성 아동, 여성 청소년이었다. 

한국의 ‘전통적 문화’는 피해자가 피해를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종교는 제멋대로 해석한 성경 구절을 들이밀며 왜곡과 편견, 공포를 생산했다. 이런 문화와 편견은 법이 되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는가?

 

수많은 피해자의 희생을 업고 우리의 분노는 자라난다. 질문을 멈출 수 없으며, 변화를 막는 모든 것에 대한 저항도 멈출 수 없다. 

 

또 다른 잔디라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또 다른 N번방을 막기 위해서. 같은 죽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복종과 굴욕을 감수하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대답 없는 당신들을 향해 우리는 오늘도 묻는다. 

 

“누가 잔디라를 죽였습니까?”

“누가 N번방을 만들었습니까?”

“누가 제니퍼 로드를 죽였습니까?”

“혐오와 배제가 배불려주는 것은 누구입니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