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서울인권영화제의 화면해설 정복하기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0/11/05
[사진1. 스튜디오 녹음실 장면. 채영과 권태가 화면해설 대본 녹음을 진행 중이다. 채영은 마이크 앞에 앉아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채영의 왼쪽에 앉은 권태도 함께 모니터를 보며 채영의 목소리 녹음 소리를 모니터 한다. 사진의 가장 앞에는 스튜디오에 설치된 또 하나의 마이크가 있다.]
비가 내렸던 11월의 첫날, 저와 고운님, 권태님은 홍대 근처의 한 스튜디오에서 모였습니다. 화면해설 대본을 녹음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영화제가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라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됐어요.
많은 분이 그동안 영화제에서 꾸준히 화면해설 영화를 소개해 드려서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해요. 화면해설은 영화의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영상을 보기는 힘든 시각장애인들에게 영화 속 화면을 음성언어로 전달하는 작업이지요. 지난 23회 서울인권영화제의 상역작 <공동정범>을 시작으로 활동가들은 화면해설 대본을 직접 썼습니다. 대본을 쓰는 작업은 대사와 대사 사이, 소리와 소리 사이에 나오는 틈을 찾아서 인물의 표정을 묘사하거나 장소의 모습을 묘사하는 문장들을 쓰는 일입니다. 영화를 꼼꼼히 봐야 하고 하나의 장면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시각 정보 중 어떤 것을 전달해야 영화감독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지요. 대본을 쓰면서 신기했던 것은 같은 장면을 두고도 활동가 세 명의 해석이 다른 것도 있다는 거였어요. 23회 영화제 때 화면해설 대본을 쓰던 사람들이 왜 “절교의 시간”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다행히 저희는 절교의 경험 없이 무사히 대본 작업을 마쳤습니다.
24회 서울인권영화제는 총 세 개의 작품을 화면해설 영화로 만들고 있어요. 영화제를 거듭할수록 화면해설 영화를 늘리는 것이 저희의 목표이자 관객분들과의 약속인데, 이번에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좋았어요. 24회에서 상영하게 될 화면해설 영화에 조금 더 특별한 점이 있다면, 대본 녹음을 저희가 직접 했다는 겁니다. 대본 쓰기부터 음성을 편집에서 영화에 입히는 것까지. 화면해설 영화를 만드는 전 과정을 해보게 된 거예요.
직접 녹음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가장 첫 번째는 촉박한 영화제 준비 기간 내에 전문 성우를 구해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에요(정말 솔직하게 말이에요…). 두 번째 이유는 화면해설을 읽는 목소리가 영화의 내용 전달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좀 차분한 목소리가 필요한데 그런 성우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목소리가 낮은 제가(..) 한번 해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세 개의 작품 중 두 개의 작품에 제 목소리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전문 성우가 하는 것보다 질이 떨어질 것 같아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놓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생긴 영화에 대한 애정이 무모한 용기가 되어 까짓것 해보자, 라는 배짱이 생겼답니다.
녹음은 기대보다 더 수월하게 진행됐어요. 조용히 숨죽여 모두 영화에 집중했고 제 목소리에 집중해주었어요. 대본을 읽는 저는 타이밍을 잘 맞춰 들어가야 한다는 긴장 때문에 주먹 쥔 손을 필 수가 없었지만, 이따금 영화에 몰입한 순간 목소리에 감정이 담기는 게 느껴져 짜릿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단편 영화 두 편의 화면해설 녹음을 마쳤습니다. 두 영화의 상영시간을 합치면 한 시간 정도 되는데, 녹음 시간은 2시간 반 정도 소요됐어요. 그동안 당연하게 들어왔던 많은 영상 속 내레이션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날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끼리 이런 말도 했어요.
“아니 우린 이거 하는데도 며칠 전부터 목소리 신경 쓰이는데 연예인이나 전문 성우들은 얼마나 자기 몸을 소중히 다뤄야 할까.”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가 되겠더라고요..!
이렇게 매년, 매회, 서울인권영화제는 장애인접근권 실현을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곳에서 장애인접근권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힘들어도 ‘고집스럽게’ 해내려 합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장애인접근권에 대한 고민은 필수적입니다. 누구도 이 세상에서 배제되지 않기를. 누구도 우리의 ‘만남’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기를 바라며.
서울인권영화제는 오늘도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
2주 앞으로 다가온 24회 서울인권영화제! 계속 함께 해주세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