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태희의 일기

[특별기고] 태희의 일기

 

\\\\\\\\\                                 U (--> 이것은 고양이어로 ‘잘 잤다’는 말입니다)

 

[사진1. 수건 위에서 자고 있는 태희.. 옆으로 누운 채 몸을 직각으로 굽혔다. 앞발이 눈 주변에 놓여 있어 마치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나를 태희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깡이라고 했다가 깡이가 아니라면서 이름을 태희라고 바꿨다. 깡이는 코에 까만 점이 없었다나. 11월 1일 밤, 나는 비를 맞고 있다가 사람들에게 옮겨져 왔다. 그날 아침, 나와 닮은 고양이가 똑같은 자리에서 비를 맞고 있다가 이곳 사람, 고운 언니에게 발견됐다고 한다. 고운 언니는 그 고양이를 씻겨서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았다. 그런데 늦은 밤 같은 자리에서 비슷하게 생긴 내가 발견된 것이다. 그 고양이의 이름이 ‘깡’이었다. 비가 오는 날 발견돼서 그렇다. 내가 암컷이 아니었으면 그냥 ‘깡’이라고 불렸을 뻔했다.

 

조금 이상한 사람들에게 잡혀 온 것 같다. 내가 똥을 싸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든다. 안 그래도 힘을 주느라 힘든데 보는 눈이 많아서 신경이 쓰인다. 이 사람들 때문에 똥을 못 싼 적도 있다. 그런데 내가 똥을 싸다가 말면 똥꼬를 눌러서 똥을 뽑아낸다. 내 똥을 모으려고 하는 걸까?

어느 날부터는 매일 밤 나의 배를 주무르지 못해 안달이었다. 아랫배를 꾹꾹 누르고 똥꼬를 톡톡 치고, 아주 난리였다. 몸이 짧아서 똥꼬 그루밍을 하지 못해 답답한 나의 마음은 모르고 똥꼬에서 냄새가 난다며 뭐라고 한다.

며칠 전 병원에 갔을 때 아빠가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태희가 변비가 심해요.” 의사 선생님이 내 배를 조금 만져보더니 “변비가 아니라 살이 찐 거예요.”라고 했다. 그 뒤로 아무도 배 마사지를 해주지 않는다. 그러더니 나보고 뚱보 고양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나는 변비 고양이에서 뚱보 고양이가 됐다. 사람들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내가 사는 곳에는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여기를 서인영 사무실이라고 부른다. 바닥이 따뜻하고 매운 냄새가 자주 난다. 라면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릇에서 기다란 쇠 두 개로 기다란 것을 건져 먹는다. 그럴 때마다 후루루루룩 부산스러운 소리가 난다. 그릇은 얼마나 깊은지 뭐가 들어 있는지 볼 수가 없다. 나처럼 혀로 찹찹찹 조용히 먹을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아무튼 해가 지면 자주 매운 냄새가 난다. 나처럼 다들 해가 지면 활동을 시작하나 보다.

나에게는 엄마 세 명과 아빠 셋, 언니와 이모가 있다. 엄마 셋 중 한 명은 춘천이라는 곳에 사는데, 그래도 종종 와서 나를 봐준다. 사무실에는 고운 언니와 채영 아빠와 레고 엄마가 주로 있다. 고운 언니에겐 뽀미가 있는데, 모두 나한테 뽀미 언니한테 잘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뽀미 언니만 보면 하악 하고 싶어진다. 다들 나한테만 잘해줬으면 좋겠는데, 뽀미 언니가 오면 뽀미 언니한테도 잘해준다. 그게 싫다. 하악.

 

[사진2. 태희가 컴퓨터 자판기를 베고 옆으로 누운 채 사진을 찍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태희의 배부터 발까지는 흰 털이 있고 그 위로는 회색 털과 검은색 털이 호랑이처럼 멋진 무늬를 이루고 있다.]

 

요즘 나의 최애 잠자리는 컴퓨터 옆이다. 타자기 소리를 듣다 보면 잠이 잘 온다. 차가운 책상에 배를 대고 누우면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귀에 꽂힌다. 타닥..타닥..타닥...타다닥…

하도 듣다 보니 이제 나도 타자를 칠 수 있다.

 ‘[;

nnnnnnnnnnnnnnnnnn4 9fr7

ㅣㅊ

&&’’’’’’’’’’’’’’’’’’’’./

 

사람들이 나를 처음에 데려왔을 때는 온종일 같이 있어 줬다. 해가 지고 해가 뜰 때까지 나를 혼자 두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꾸 사라진다. 이 큰 사무실에 나를 혼자 두고 밥만 주고 떠날 때도 있다. 처음에는 내가 조금 움직이기만 해도 좋아하더니 요즘엔 놀아달라고 찡찡거려도 잘 놀아주질 않는다. 고운 언니와 엄마 아빠의 눈가가 어두워졌다. 가끔은 힘없이 바닥에 푹 누워서 일어나질 않는다. 영화제라는 것을 하느라 그렇다. 그게 뭔진 모르지만,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밤에도 나랑 있고 종일 나랑 놀 테니까. 그러니까 얼른 영화제라는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 엄마들이랑 아빠들이랑 언니가 나랑 밤새 같이 있으면 좋겠다. 인간에게 살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내가 사냥할 때만큼 힘든가 보다.

[사진3. 태희가 사무실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갸냘픈 모습의 태희가 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아래 앉아 있다. ]

 

어제는 익숙한 냄새가 나서 창문 주변으로 갔다. 내가 이 사람들을 만난 날 맡았던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내 몸을 완전히 적셔버렸다. 냄새가 내 눈을 막고 털을 묶어서 움직일 힘이 나지 않았다. 그날의 나는 춥고 배고프고 눈도 안 떠졌는데, 지금 나는 아무리 달려도 힘이 들지 않는다(그런데 나는 원래 움직이는 걸 좀 싫어한다. 그냥 내가 누우면 사람들이 알아서 놀아주면 좋겠다.)

다시는 그런 차갑고 축축한 것에게 붙잡히지 않을 거다. 엄마들이랑 아빠들이랑 언니와 이모가 나를 지켜줄 거다.

 

태희의 일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