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폐막토크 광장에서 말하다-"혐오에 저항하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0/12/01
11월 30일. 열 한 개의 섹션을 지나 드디어 마지막 섹션 [혐오에 저항하다]에 도착했습니다. [혐오에 저항하다]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영화들로 구성된 섹션입니다. 트랜스남성들이 교도소 수감 생활 중에 겪은 온갖 차별과 경험을 담은 <우리가 여기 있다>. 2014년 10월 11일 필리핀 올롱가포에서 미군에 의해 발생한 ‘제니퍼 라우데’의 죽음과 그 사건을 시발점으로 퍼져나간 트랜스인권 운동을 기록한 <혐오의 시대>. 트랜스 청소년 운동선수들의 이야기 <게임의 규칙>. 이 세 영화 중 <게임의 규칙>은 24회 서울인권영화제가 선정한 폐막작이었습니다.
저녁 7시에는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맺는 폐막토크 ‘광장에서 말하다’가 있었습니다.
섹션 [혐오에 저항하다]를 통해 최근 한국에서 발생했던, 발생했지만 드러나지 못했던 트랜스혐오에 대해 얘기하고 마지막으로 24회 서울인권영화제의 끝을 선언했습니다.
광장에서 말하다를 위해 세 분의 이야기 손님이 와주셨습니다. 장서연 님(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차차 활동가님(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리나활동가님(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 세 분을 한 자리에 모실 수 있다니!!! 정말 기대되는 자리였습니다.
이야기 손님들은 섹션 속 영화들을 한국 사안들과 연결 지어 생생하고 폭넓은 대화를 펼쳐주셨는데요,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강물같이 잔잔한 목소리 속에서 촌철살인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댓글 창의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댓글을 통해 같이 분노하고 공감하며 서로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야기 손님들은 댓글에 올라온 질문에 답변해주시며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팁을 주기도 하셨어요. 이를테면 “‘트랜스젠더가 생물학적으로 비정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장서연 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해주셨습니다.
“대법원 판례에서는 성별을 결정할 때 이런 생물학, 신체적인 요소만 보지 않고 본인이 어떤 성별을 귀속감을 느끼는지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결정해서 성별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때문에 성별이 신체적으로 결정된다는 건 이미 법학적으로나 인권적으로나 틀린 얘기다, 이렇게 반문할 수 있겠죠.”
차차님은 다양한 지역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고 그중에서도 트랜스 여성들을 만났던 경험에서 비롯된 많은 사례와 경험을 나눠주셨습니다. 차차님의 말씀에 모두가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댓글창을 통해 느껴지는 분노와 처참함, 숙연함, 씁쓸함, 슬픔. 이 끔찍한 혐오의 시대는 언제 끝날까요.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요?
리나님은 <게임의 규칙>과 함께 숙명여대에서 있었던 트랜스 여성 입학 거부 사태에 관해 얘기하면서 이런 까스활명수 같은 말도 해주셨습니다.
“혐오를 하는 분에 대한 안타까움도 사실 들었어요. 혐오하시는 분들이 결국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살면서 한 번 이상은 트랜스젠더를 만날 거고, 당사자분들과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살아갈 텐데,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를 알 기회를 놓쳐버리는 거예요. 혐오자들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한번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언젠가는 살면서 트랜스젠더를 만날 텐데 실제로 그럴 때는 어떻게 할 거야?”
정말 꼭 기억해두었다가 써먹고 싶은 ‘혐오 대응 무기’ 아닌가요!?
이것 말고도 나누고 싶은 구절들이 많은데, 다 담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현장의 분위기와 이야기의 맥락을 빼놓고는 그 감동이 전달되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니 ‘광장에서 말하다’를 놓친 분이 있다면 꼭 유튜브로 찾아보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유튜브채널에 전부 올라와 있으니까요!
더불어 11월 20일이었던 TDoR(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에 조각보에서 만드셨던 티저 영상도 함께 나눴습니다. 잔잔한 반주와 부는 바람을 닮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흐르고, 검은 화면에 트랜스젠더 당사자분들의 말이 자막으로 띄어지는 영상이에요. 여러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 잔향이 컸던 것을 나눠볼까 해요.
“저에게 ‘이름’이란 곧 저의 정체성입니다. 제가 선택한 이름으로 불릴 때 저는 제일 행복하고, 저의 정체성이 무시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으로 인정받고 자신으로 불릴 때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정체성은 타인에 의해 규정되거나 바뀔 수 없는, 오롯한 ‘나’의 일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존재가 ‘나’로 존중받고 인정받고 사랑하게 되는 ‘그날’을 그리며… 내일도, 내년에도, 그리고 또 그다음 해에도 광장에 모여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길 바라봅니다:-)
24회 서울인권영화제는 폐막했지만, 아직 온라인 상영관과 온라인 광장은 열려 있습니다. 12월 1일부터 6일 아침 10시까지 이어지는 앙코르 상영과 1일부터 5일 매일 저녁 7시와 8시에 시작되는 섹션별 관객과의 대화도 잊지 말아 주세요.
올해의 서울인권영화제를 만들어주신 것은 모두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 덕분입니다. 24회 서울인권영화제를 지켜주신 후원활동가님들께 감사 인사를 다시 전합니다..!
소셜펀치의 후원함은 아직 열려있습니다. ‘작지만 큰 한 방!’ 던져 주세요!
끝으로 조각보의 TDoR 티저영상 수록곡 가사를 적어 봅니다.
이 여운을 품고, 오늘 하루도 건강히 지내시구요.
저녁 7시에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또 만나요..^^
차연지 - Plan (e) T
세상에 뿌리내리지 못한 기분 나만이
세상에 뿌리내리지 못한 기분 나만이
나는 가만히 있고
모든 것은 움직이지
나는 붕 떠 있고
지구는 계속 돌아가
바람이 부는 것이 느껴지지만
시간은 흐르지 않아
공기를 삼키고 있지만
숨을 뱉지는 않는 것처럼
미래로 가지 못하는 나만
미래로 가지 못하는 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