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기억과 정의는 맞닿아 있다

[현장스케치] 기억과 정의는 맞닿아 있다

[기억과 만나는 기록]은 ‘기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섹션입니다. <#387>과 <혼란 속에서, 마지드에게>는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를 떠올리게도 하고 저 먼바다 지중해 위에서 목숨을 건 항해 중인 수많은 난민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두 편의 영화는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재난 상황 한 가운데에서, 나의 안녕을 지키는 데 파묻히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의 머리를 깨워주고 마음을 흔듭니다.

 

“무엇을 기억할지, 어떻게 기억할지, 우리가 어떤 기억을 기록할 가치가 있는 기억으로 대할 것인지. 기억을 만드는 과정은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387이라는 영화가 기억과 기록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의를 이야기하는 영화라고도 느꼈습니다.”

 

어쓰님은 한국이 재난, 전쟁 등 많은 것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애도를 하는 것에 서툰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을 기록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것보다는 안 좋은 상황을 빨리 수습해서 지나가 버리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때뿐만 아니라 위안부, 베트남전 등의 역사에 대한 한국사회의 태도, 한국 정부의 태도를 보면 어쓰님의 말이 과한 해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린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또, 다시,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의 정부는 벌써 촛불 든 시민들의 외침을 잊었나 봅니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고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정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투쟁은 끝나지 않겠지요. 다시 한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을 되뇌어봅니다.

 

<혼란 속에서, 마지드에게>와 압둘 와합님의 말씀은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우리가 왜 외쳤던가를 묻게 합니다. 무엇을 잊지 않겠다고 한 거였던가. 그리고 한국 사회가 재난과 역사의 피해자들에게 보여왔던 태도에 대해 반성하게 합니다. ‘순수한 피해자’를 찾고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내 안에도 그런 모습이 있지 않았던가, 묻게 되기도 합니다.

 

“시리아 분들이 많이 말하는 것이, 행복했던 시절에 사진 한 장을 남기지 않아 아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행복을 과장해 보이려는 경향을 자주 보입니다. 10개의 좋지 않은 순간 속에 1개의 좋은 순간이 생기면 그것을 기록해 SNS 같은 것으로 보여주려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런 난민들을 생각 없다, 무식하다고 비난합니다.”

 

“난민을 고정적인 시각으로만 봅니다. 난민은 가난해야 하고 더러워야 하고 힘들게 살아야 하고 어두운 구석에서 살아야 합니다. “너처럼 이렇게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향수도 뿌리고 웃으면서 사진 올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많은 분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어쓰님과 압둘 와합님의 얘기를 듣고 나니 한국 사회가 추구한 가치와 ‘정의’가 무엇일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가 보여온 죽음에 대한 태도와 잘못에 대처하는 방식들. 거기에 반영된 한국 사회의 맨얼굴. 나는 그 맨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내 안에 스며 들어 있는 ‘한국’을 마주하고 있을까? 묻게 됩니다. 

 

‘관객과의 대화’ 이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가볍지 않은 대화였고 가벼워선 안 되는 얘기들이 오고 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쓰님과 압둘 와합님의 표정과 말투에서 느껴지던 힘과 포근함이 있어 쓸쓸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이 전한 세상의 모습은 어두웠지만 두 분의 표정은 세상을 닮아 있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바뀔까요?”라고 두 분에게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네”라고 대답해주실 것 같습니다.

 

* 본 ‘관객과의 대화’ 라이브 영상은 참가자의 요청으로 편집 후에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