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경계를 가로질러

[현장스케치] 경계를 가로질러

[경계에 답하다] 관객과의 대화 현장스케치

 

조금은 정신없는 시작이었습니다. 7시 관객과의 대화 [기억과 만나는 기록]에 모두 빠져든 나머지 시간이 가는 줄 몰랐거든요. 7시 50분이 다 되었을 때, 1부 사회자는 토크를 서둘러 정리했고, 현장에선 바로 2부를 시작할 준비를 했습니다.

[경계에 답하다]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과 <혜나, 라힐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디아스포라’라는 키워드로 묶기는 했지만, 영화제는 그 단어를 넘어선 질문도 던지고 싶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게 뭡니까?”

‘관객과의 대화’에는 두 편의 작품 감독님들과 이주민방송의 정혜실 님과 <인권운동>의 편집장이자 간첩 조작사건 피해 탈북이주민을 만나는 등의 활동을 하시는 강곤님이 나와주셨습니다. 아오리 감독님과 로빈 감독님이 두 영화와 관련하여 개인의 경험을 솔직하게 나눠주셨다면 두 활동가님은 풍부한 경험과 함께 문제의식과 해석, 대안 등을 제시해주셨습니다.

탈북이주민과 동남아 등의 지역에서 이주해 온 분들이 한국에서 겪는 경험을 들으며 많은 관객분들이 댓글 창에 분노를 표현해주셨습니다. 특히 일방적이고 편파적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이주민의 경험을 사용하는 여러 TV 프로그램을 얘기할 때는 모두들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의 무례함에 경악했습니다.

아오리 감독님도, 로빈 감독님도, 한국에 대한 충격에서 영화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먼저 아오리감독님은 탈북청소년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시면서 만난 학생들이 작업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 컴퓨터 자판을 보면 국정원이 떠올라요.” 한 학생이 무심코 뱉은 말에 궁금증이 생긴 감독님은 학생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되셨고 영화 작업을 시작하셨죠.

로빈 감독님은 부인 혜나님을 만난 후 한국 사람들이 혜나님을 외국인취급하는 것과 거기에 대응하지 않는 혜나님 양쪽에 전부 놀라셨었다고 해요. ‘혜나는 한국인인데 왜 다들 ‘한국말 잘하네요’라고 하는 거지? 혜나는 왜 제대로 답을 안 하는 거지?’

로빈 감독님이 혜나님에게 처음 영화 작업을 제안하셨을 때 혜나님은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 라힐이가 경험해야 하는 세상이 변하지 않아선 안 된다는 마음에 다큐멘터리 출연을 결심하셨대요. 영화를 통해서는 몰랐는데, 혜나님이 낯을 많이 가리신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어려운 결정이셨을 것 같아요. 대단하지 않나요?

제 기억에 남는 활동가분들의 말이 있어서 적어보려 합니다. 먼저 강곤님의 말씀인데요,

“탈북민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본인들을 북향민이라고 불러달라고 이야기하는 분이 많아졌어요. 북한에서 온 분, 북한을 고향으로 둔 사람 이렇게 자기를 정체화하는 분들이 있는 거죠. 한국 사회가 이분들을 새터민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탈북민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북향민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죠. 보이지 않는 아이들 영화를 보면서 북향민이라고 할 때 사실 중국에서 태어난 청소년들은 또 거기서 보이지 않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한국 사회에서 탈북민 문제가 얼마나 주변화 돼 있는지 보여줍니다. 저는 사실 우리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어떻게 정체성을 갖고 어떻게 호명됐으면 하는지 스스로 발언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주고 대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뒤이어 정혜실님이 말을 해주셨어요.

“내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억압이 지배하는 사회이죠. 무엇으로 부르는 것도 폭력이고 스스로가 또 나를 드러내고자 했을 때 그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회도 폭력인 거죠. 그래서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나를 규정하고 내가 무엇으로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지는 내가 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자꾸 이런 호명이 문제 되고 또 외국인이야 한국인이야? 순수한국인이야? 저렇게 생긴 건 동남아야. 이런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부터 없어져야 내 정체성을 이야기해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거죠.”

정혜실님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고 계시기도 합니다. 이주민의 문제와 차별금지법을 연결 지어 생각해보지 못했던 저로서는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두의 인권이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한국을 강타했을 때, 마스크 공급이나 재난지원금에서 배제된 이주민들이 많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거죠. 재난는 국경을 가로질러 퍼져 나가기에, 이럴 때일수록 차별 없이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만 진정한 ‘안전 사회’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 본 ‘관객과의 대화’ 라이브 영상은 참가자의 요청으로 편집 후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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