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크로마키와 함께 한 영화제

[활동펼치기] 크로마키와 함께 한 영화제

크로마키와 함께한 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작업이 있습니다. 바로 장애인접근권인데요. 상영되는 모든 영화에 한글자막과 한국수어영상을 삽입하고 있습니다. 이번 24회 인권영화제의 영화들을 모두 끝까지 보신 분들은 알아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말미에 나오는 크레딧을 보면 두 편의 영화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수어 편집은 모두 같은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제가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을 하게 될 때부터 기다리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수어 크로마키 촬영을 편집해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원활동가 중 한국수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사람이 저 한 명뿐이라는 자신감과 편집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공존했습니다. 

[사진1. 수어통역활동가 한국농인LGBT 진영님. 검은 배경 앞에 앉아 검은 옷을 입고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쫙 펴서 입앞에 있고 왼손 또한 쫙 펴진 채 가슴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저는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상영되는 모든 영화의 크로마키를 편집하겠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고생한다며 걱정해주었지만 저는 아주 즐거웠습니다.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었고, 오류도 발견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거든요. 비록 수어통역사들은 재촬영을 해야 한다는 괴로움에 시달렸지만 말입니다. 제가 하지 않으면 영화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편집하면서 있었던 일을 잠깐 말해보려 합니다. 혹시 지난 울림에 등장했던 태희를 기억하시나요? 저는 거의 매일 사무실에 들락날락했고, 그러던 어느 날 태희가 사무실로 오게 되었는데요 덕분에 사무실 메이트가 생겼습니다. 태희는 제 발과 손을 물고 뜯고 맛보며 저의 작업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태희는 저를 장난감으로 여기는 듯했습니다.
또 사무실에 상주하던 활동가들도 제가 오지 않는 날은 허전하다며 말을 해줄 정도였으니 얼마나 자주 왕래했는지 짐작할 만하죠? 외박을 하던 때도 있었고, 사무실의 침대에서도 자주 잤습니다. 침대 옆에는 평창올림픽 캐릭터 인형이 있는데 눈이 한쪽으로 몰려 있습니다. 저는 침대에 자는 날마다 제 SNS에 캐릭터 인형과 함께 시간을 올렸었는데요 그 사진을 찍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사진2. 한국농인LGBT 성실 수어통역활동가의 모습. 검은 배경 앞에 앉아 검은 옷을 입고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살짝 웃고 있는 표정으로 오른손은 손바닥을 앞으로 보인 채 팔을 접어 ‘저요’하듯 들고 있고, 왼손은 오른손 팔꿈치를 손등으로 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제일 길었던 작품은 <보라보라>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보라보라>를 한 것이 제일 어려웠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히려 힘들었다기보다는 뿌듯했습니다.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사람들이 최고라고 해줘서요. 그래서 편집하면서 영화가 길다거나 대사가 많아서 힘들었던 적은 없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상영 날이 다가오는데 마감을 지킬 수 있을까, 편집하면서 수어에 오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전전긍긍함이 저를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하면서 중간에 잠깐 ‘내가 이 많은 양을 왜 혼자서 한다고 했지’라는 생각도 살짝 들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주는 피로감은 적었습니다.

 크로마키와 함께한 영화제는 즐거웠습니다. 오히려 이 글을 쓰는 게 더 어려운 느낌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어떤 감정일까요? 궁금해집니다. 매번 여름의 영화제가 올해는 겨울로 늦춰지게 되었네요, 그 기다림의 시간만큼 많은 걸 얻어가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망나(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