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내 몸이 세상과 만날 때

[현장스케치] 내 몸이 세상과 만날 때

‘관객과의 대화’를 가지기 전까진 [내 몸이 세상과 만날 때]라는 섹션 이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영화들을 본 후 직관적으로, 느낌으로만 섹션 이름의 의미를 알고 있었지요. 관객과의 대화를 가진 후, [내 몸이 세상과 만날 때]라는 이름을 조금 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섹션은 꼭 영화를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설’이 가진 문제와 제도의 문제를 아는 것만큼 이 사회가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그들의 모습을 알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사진1. [내 몸이 세상과 만날 때] 관객과의 대화 라이브 방송의 캡처 화면. 화면 양 끝에 수어 통역사가 한 명씩 배치되어 있고, 화면 가운데에 줌 화면이 있다. 왼쪽 위에서부터 서울인권영화제 권태 활동가, 리슨투더시티 은선 활동가, 장애여성공감 타리활동가,노들장애인야학 명희활동가가 있다.화면 아래쪽에는 문자 통역이 세 줄씩 나오고 있다. 문자통역 내용. 타리활동가의 말이다. “고립되거나 혹은 배제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생존의 기본적인 조건이 마련됐을 때 어떻게 더 의사소통”]

[내 몸이 세상과 만날 때]는 탈시설에 대한 섹션입니다. 시설은 ‘시설 기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집 밖으로 외출하지 못하고, 원할 때 원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고, 공연장도, 편의시설도 편히 이용하지 못하는 것.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가 이행되지 못하도록 짜여진 사회. 이 자체가 하나의 시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떄문에 탈시설은 시설 속 사람들이 시설 밖으로 나오는 일이 아니라 그들을 단절시켰던 세상과 그들의 몸이 만나는 것입니다. 짜여진 규칙대로 움직여야 했던 ‘시설 속 삶’을 벗어나 ‘개인’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렇기에 탈시설은 사회와 시설이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시설 안으로 몰아넣고 사회에 없는 존재로 만들었던 이들을 다시 사회로 초대하고 그들과 같이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연습하고 준비하는 것 없이는 ‘탈시설’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다음은 이야기손님으로 와주셨던 장애여성공감의 타리 활동가의 말씀입니다.

“이제는 누가 시설에 가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모든 사람이 자기 집을 가지고 살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옮겨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랬을 때 변화해야 하는 것은 지금 물리적으로 이 건물로 존재하는 시설뿐만 아니라 그 건물이 그 지역에 주소를 가지고 존재하도록 만들었던 그 도시의 구조, 그 도시 전체의 흐름 그런 것을 어떻게 바꿔야만 그 시설이 폐쇄되고 거기 살던 사람들이 지역사회로 다시 삶터로 옮겼을 때 생존하고 관계 맺음을 통해서 도시가 함께 변할 것인가 이런 논의가 중요하다(...)그 시설을 존재하게 했던 것은 시설장과 종사자, 거주인만이 아니라 그 옆에서 우리가 함께 살고 있었고 그 역세권에 존재하는 그 시설이 계속 거기에 있도록 만들었던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이다”

 

영화<문밖에서 잇는 날들>은 시설 밖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입니다. 시설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당사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은 모습입니다. 같은 종소리에 맞춰 밥을 먹고 주는 약을 먹고 주어진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살아야 했던 이들이 ‘개인’의 삶을 꾸려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사회가 ‘개인’이 될 능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시설 안으로 몰아넣었던 ‘개인’들을 만나는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영화 제목은 ‘문밖에서 있는 날들’이 아니라 ‘문밖에서 잇는 날들’입니다. 세상은 그들을 단절시켰지만, 그들의 삶은 한 순간도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개인의 정체성과 취향과 관계와 추억과 감정은 ‘문’으로 단절될 수 없습니다.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포항 지진 속에서 장애인은 무엇을 경험했는가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장애인과 장애인권활동가, 생활지원사의 인터뷰와 포항의 무너진 건물들이 교차하여 나옵니다. 증언을 통해 한국 사회의 ‘안전 대책 및 대피요령’이 비장애인, 그중에서도 성인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또한 한국 사회가 ‘재난 상황에서 누가 배제되는가’를 고민하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k-방역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 그 심각성은 수치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국정감사에서 나온 자료에서 보면 400명의 코로나 사망자 중에서 3분의 1 정도가 시설에서 생활하신 분들이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많은 코로나 상황이나 국가재난상황이 발생했을 때 수용돼 있고, 감금돼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것 같고요.” (노들장애인야학 명희활동가)

 

“우리나라가 장애인도 충분히 스스로 탈출도 할 수 있고 장애인이 비장애인 도울 수도 있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 훈련이라는 게 필요한데 우리 비장애인 훈련 안 하지만 장애인은 더더욱 훈련 안 하거든요. 비장애인들이 훈련할 때 장애인은 너 잠깐 있어, 이런 경우가 되게 많았어요, 인터뷰를 하다 보면. 청각장애인 학생이 있는데 "잠깐 있어, 1시간 동안 훈련할 거니까 있어" 이런 식으로 배제하거든요” (리슨투더시티 은선활동가)

 

현재 장애인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는 그들의 ‘개인성’과 ‘주체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미완성된 인간’ 취급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들 속에서 그들 고유의 문화가 있고 삶의 방식이 있고 주체적인 생각이 있다는 상상을 하지 않지요. 이런 오해와 편견이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그들이 시설 안에 격리되어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게 은폐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른’ 존재를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려면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탈시설은 시설 밖 사람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도와 시설의 보호 아래서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고 있는 것은 사실 시설 밖의 사람들이니까요.

채영(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