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백신만이 아니다"

[함께나눠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백신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이 가물가물한 요즘이다. 일주일 뒤면 괜찮겠지, 한 달 뒤면 괜찮겠지, 하던 말들은 어느새 의미 없이 흩어진다. 대신 “백신 나오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암묵적인 희망이 생긴 듯 했다. 그리고 드디어 여러 제약사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했다. 통상적으로 필요한 임상시험 절차를 완벽히 거치지 않았음에도 상황의 위급함으로 인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백신을 승인했다. 한국에서도 곧이어 접종을 시작한다고 한다.

 

정부는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한 정보를 상세하게 공개했다. http://ncv.kdca.go.kr/에 접속하면 세세하게 나뉜 예방접종 우선순위부터 백신 부작용에 대한 피해보상까지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이트에서도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모두에게 드러난, 그러나 그 이전에도 존재하고 코로나19 이후로도 우리에게 과제로 남을 질문이다. 또다른 공백은 없는가. 우리는 ‘아픔’ 앞에서 평등한가. 건강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코로나19 백신은 전국민에게 무료로 보급된다. 그러나 모든 약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작년 “코로나19 인권영화제: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에서 상영되기도 했던 2007년작 <사고 파는 건강>은 의약품을 둘러싼 현실을 보여준다. 의약품은 건강할 권리로서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산업으로서의 의약품은 그렇지 않다. ‘빅파마(Big Pharma)’라고도 불리는 다국적 거대 제약회사들이 이미 시장화 되어버린 제약 산업을 꽉 쥐고 있는 현실이다. 건강할 권리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고 시장으로 넘어간 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결과다.

 

사진1. 기계에 알약이 가득하다. 거기에서 쏟아져 나온 알약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줄지어 간다. 기계 왼쪽에서 하얀 방역복을 입은 직원이 서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1. 기계에 알약이 가득하다. 거기에서 쏟아져 나온 알약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줄지어 간다. 기계 왼쪽에서 하얀 방역복을 입은 직원이 서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이렇게 ‘시장’에서 약이 ‘소비’되는 현실 속에서 약의 공급을 결정하는 것은 그 시장의 가능성이다. 빈곤한 국가는 그렇지 않은 국가에 비해 가능성이 낮은 시장이다. 1940년대 유럽에서 말라리아가 극성을 부리던 때 대량 공급되었던 말라리아 치료제 ‘디디티’는 유럽 내 말라리아가 사라지자 생산이 중단되었다. 아프리카를 가장 괴롭히는 말라리아, AIDS 등의 전염성 질병은 약으로 간단히 관리가 가능하지만 현지에서 약을 구하기는 어렵다. 영화에서는 충격적인 통계를 보여준다. 전염성 질환의 85%가 발생하는 남반구에서 세계 전체 의료 비용의 11%만이 지출된다. 나머지 89%는 북반구의 것이다.

 

건강할 권리가 시장에 내맡겨졌다는 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여름 국내에서도 상업성을 이유로 코로나19 치료제 백신 개발에 제동이 걸리는 일이 생겼다. 국내 민간 제약사들은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분명하고, RNA변이가 쉬워 개발하더라도 수익을 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시바삐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수익성을 기준으로 개발 여부를 따졌던 것이다.

 

감염병 위기는 모두에게 동시에 들이닥치지만 모두에게 평등하게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 1년 여의 시간 동안 이를 절실하게 체감해야 했다. 감염 상황에 더욱 열악하게 노출되는 시설 거주인, 장애인, 돌봄 노동자, 택배 노동자 등을 비롯하여 공공병원에 의지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리 두기’는 복잡한 의미를 가졌다. 거리를 둘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거나 거리를 두면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코로나19가 주는 불안과 공포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거리 두기와 코호트 격리는 이 현실을 차단시키는 데 급급했을 뿐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코로나19 백신이 보급된다 하더라도 불안을 놓을 수 없다. 매 위기 상황마다 불평등과 차별의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사회에서 백신은 만능 열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공백은 곳곳에 포진해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의료공백인권실태조사단이 발간한 보고서(http://hrffseoul.org/sites/default/files/files/20202511111605.pdf)에서 그 사례들을 더 구체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여름 동자동 쪽방촌의 주민 A씨는 평소 이용하던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면서 큰 공포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절단 부위 염증으로 인해 극심한 통증과 고열, 죽음에의 공포까지 느껴야 했지만 고열로 인해 세 곳의 응급실에서 계속하여 진료거부를 당했고 결국 집으로 돌아와 해열제로 버텨야 했다. 비슷한 시기 HIV감염인 E씨는 만성중이염으로 수술을 해야 하는데 국립의료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면서 수술이 연기되었다. 다른 상급병원은 높은 치료비 때문에 갈 수 없는데 수술을 계속 미룰 경우 청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의료공백 사례들은 너무나도 많고 지금도 계속하여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백신에 있어서 공백이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세세하게 나뉜 우선 순위 어딘가에 내가 포함되어있다는 것은 어떻게, 무엇으로 증명해야 할까. 사회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직군은 어떻게 구분하는가. 우선 순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하청의 하청으로 계약된 노동자나 프리랜서 형태의 특수고용노동자 모두 안전하게 포함될 수 있을까.

 

백신이 코로나19로 인한 비일상의 풍경을 멈춰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면서도, 백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참고 감내해야 할 것은 서로의 안전을 위한 노력들이지 불평등과 차별이 아니다. 한 집담회의 제목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백신만이 아니라 누구나 아프면 쉽게 병원에 갈 수 있는, 건강하고 존엄할 수 있는 삶이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