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존재가 저항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함께나눠요] 존재가 저항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사진1. 영화 승리의날 스틸컷. 레즈비언 커플이 편안한 자세로 이불 위에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의자에 앉은 두 사람이 입을 연다.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 풋풋함 가득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또 다른 두 쌍의 커플이 등장한다. "데이팅 사이트에서 만났어요"라며 쑥스러워 하는 그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다정한 모습 사이로 거리를 채운 탱크가 등장한다. 건물을 흔들 만큼 요란한 존재감. 뒤이어 또 다른 커플의 다정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요리를 하는 두 사람 위로 혐오 발언을 하는 정치인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티비 속에도, 인터넷 속에도 혐오의 노래는 계속된다. "그들의 심장은 땅에 묻어버려야 합니다. 생명을 구할 가치가 없으니까요"라는 말에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컴퓨터로 그것을 보는 두 사람이 있다. 직장을 잃고, 밤길을 두려워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없는 현실에 놓인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래를 널고 사랑을 말하고 얼굴을 마주한 채 웃는다.

무난한 일상 사이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탱크와 혐오의 말들. 영화의 제목은 '승리의 날 Victory Day'이다. 적을 물리친 국가는 그날의 영광을 매년 되새긴다. 전쟁무기가 도로를 가득 채우고 깃발과 국가가 거리에 흐른다.

다른 한 편에는 날 선 목소리가 화면을 채운다. 저주의 말과 함께 돌이 날아온다. 또 한 번의  '승리의 날'을 위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는 이들. 그 맞은편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선 사람들이 있다.

축제의 소란 속에서 변함없이 이어지는 일상. 그것은 폭력과 위협 사이를 지나며 이어지는 누군가의 일상을 닮았다. 정치인의 입을 막을 수도 없고, 법을 없앨 수도 없고, 위협을 피할 수도 없는 그들은 침묵 대신 '나'의 모습대로 살기를 선택한다. 무지개 깃발을 무기 삼아 평등과 자유를 외치고 날아오는 돌을 같이 맞는다. 눈치 보지 않고 외출하기 위해서, 마음껏 사랑하기 위해서, 주어진 삶을 힘껏 살아내기 위해서 굳이 거리에 나가 돌을 맞고 혐오의 말을 마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 세 사람도 그랬다.

은용님, 김기홍 활동가님, 변희수 하사님. 그리고 전해 받지 못한 수많은 이들의 삶.

존재가 저항이 되어버린 이에게 일상은 투쟁이다. 사는 것이 싸움이며, 그래서 기어코 살아야 함을 안다. '내일 다시 만나자'는 간절한 약속을 알기에 온몸이 부서질 듯 아프고 가슴이 내려앉아도 다시 문 밖으로 나가야 함을 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사는 대가는 가혹하다. 일상은 소란의 연속이고 동시에 지독히 적막했을 것이다. 무심히 찾아오는 수많은 침범으로부터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했는지 상상할 수 없다. 그런 삶을, 그들은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 살아냈다. 

그 마지막 선택을 탓할 수 없는 까닭이다.

'승리의 날 Victory Day'은 돌아올 것이다. 거대한 무기들이 다시 도로를 채우고 위협적인 함성이 거리를 채울 것이다. 승리를 상징하는 깃발과 국기가 길가에 나부끼고 군악대의 연주가 모든 소리를 잡아먹을 것이다. 한 몸처럼 걷고 한 목소리로 '승리'를 추억하는 사람들로 길은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우리'가 거기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 ‘우리’가 질서정연한 거리를 가로지를 것이다. ‘승리’를 위한 희생을 멈추기 위해 무지개 깃발을 들고 평등과 자유를 외칠 것이다. 맞잡은 손을 향해 날아오는 돌을 기꺼이 맞으며, 끝까지, 그 거리를 지켜낼 것이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채영 

 

<승리의 날>은 20회 서울인권영화제 [기억, 하다] <혐오에 저항하다> 섹션의 상영작입니다. 상영지원은 서울인권영화제 이메일 hrffseoul@gmail.com 또는 전화 02-313-2407로 문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