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눠요] 그 어떤 삶도 비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1/04/09
그러니까 딱, 이 정도의 봄이었다고 한다.
새삼스레 숫자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날이 있다. 어떤 숫자는 화폐의 단위였고 어떤 숫자는 시간의 구분이었으며 또 어떤 숫자는 사람의 단위였으나 화폐의 숫자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사람의 숫자를 가늠하는 일은 한없이 아득하기만 하다. 남겨진 도시가 매년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일처럼. 만 오천 명가량의 희생자와 칠 만여 명의 유족을 남겼다는, 팔 년가량 계속된, 그러나 아직도 비석에 새길 이름을 찾지 못해 사월의 셋째 날로 불리는. 영화 〈비념〉은 숫자나 문장으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어떤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제주의 곳곳에 새겨진 기억을 좇는다. 사려니숲이나 천지연폭포, 여러 갈래 올레길과 어떤 오름, 그리고 여느 해변들. 아이들이 뛰놀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단체 사진을 찍는 모든 곳에 그날의 기억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알려진 제주의 풍경과 눈앞에서 부모를 잃고 남편을 잃고 육지의 형무소로 끌려가는 과정에서 헤어진 아이를 잃은 이들의 증언 사이의 간극은 영화에 부재하는 나레이션을 대신할 뿐이다. 차라리 장소에만 머무는 기억이면 좋으련만, 어떤 일은 몸의 기억으로 남았다.
당사자의 슬픔을 완벽히 헤아리려 들지 않는 것이 함께 슬퍼하는 이들의 예의일 것이나 그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우리의 연대이리라. 그렇기에 감독은 도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숨어들었다는 어두운 계곡과 눈이 허리까지 푹푹 내린 산을 계속해서 달린다. 그믐날 랜턴도 없이 밤새 산을 헤매야 했다는 생존자의 증언에 닿아보려는 듯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나라로 피난을 가야만 했던 시간 사이의 틈을 이어보려는 것처럼.
구럼비라고 불렸다,
제사를 지낼 때의 정한수를 떠오던, 언젠가는 마을의 제단으로도 사용되었다는 바위. 살아남은 이들이 죽은 이들을 위로하는 장례식은 남겨진 자가 떠난 자를 온전히 떠나보내기 위한 절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시체를 찾지 못해 장례를 치를 수조차 없던 이들과 장례를 치렀어도 해소되지 못한 한들을 위로하는 ‘비념’은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니나. 아직도 해마다 제주에서는 온 마을이 꼭 같은 날 제사를 지낸다는데. 함께 비념을 올릴 수 있던, 그렇게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던 바위를 부쉈다면. 그것이 한 섬을 비념으로 가득 채운 군대라는 것을 위한 일이었다면. 구럼비를 산산조각 내던 폭약과 그 언젠가의 총소리는 어떻게 달랐나. 군사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활동가의 목소리를 덮던 공사 기계 소리와 제주말을 쓰는 입을 막던 그 시절은 또 얼마나 달랐나.
올해 사 월 삼 일, 제주 전역에는 비가 왔다. 봄은 더디게만 오는데 사월은 왜 늘 그리도 잔인한지. 올해 삼월에서야 제주 수형인 중 335명은 무죄를 인정받았으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 섬의 이 날을 부를 이름이 없다. 그것이 두고 두고 아프다.
찾지 못한 이름을 대신해 짧은 비념을 올린다.
그 어떤 삶도 비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권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