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3.31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1/04/09
지난 달 31일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었습니다. 자신답게 살아가는 모든 트랜스젠더들의 존재를 축하하고 이들이 마주하는 차별의 현실에 대해 사회적인 경각심을 일깨우는 국제적인 기념일이지요. 올해는 특히 특별한 날입니다. 많은 이들이 추모와 애도, 슬픔의 시간을 견디는 동시에 분노를 느끼고 저항의 의지를 다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날 정오에는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특별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 2주일 간 모은 퀴어들의 일상 사진으로 대형 현수막을 제작해서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린 것이죠. 광화문광장 공사로 인해 공간은 비좁았지만 우리가 함께 있음을, 어디에나, 언제나 있음을 알게 한 날이었습니다.
이날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에디 활동가,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의 키도 활동가, 트랜스해방전선의 류세아 활동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퀀팀의 정현 활동가가 소중한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따뜻한 봄볕에 뒤통수가 따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발언을 들었습니다. 다들 힘들게 봄을 맞이했구나, 그래도 우리는 함께 오늘을 다독이고 내일을 만들어나가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낭독한 기자회견문에는 퀴어들의 한 줄 일기 모음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특히 하루하루 일상을 보내는 동시에 동료와 친구,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고, 더 중요하게는 나의 일상과 생존이 계속될 수 있게끔 분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보내는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가 봄볕보다도 더 따뜻하게 마음을 적셔주었습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있음을, 언제 어디에나 있음을 알려야 할지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우리가 이길 것임을 압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 이날의 기자회견은 무지개행동 페이스북에서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한국농인LGBT 진영 활동가의 수어통역도 함께 있답니다. 기자회견문 속 한 줄 일기도 아래 붙여둡니다.
“젠더퀴어인 저는 3일간 외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왔습니다. 몇번이나 의심어린 말투와 눈빛으로 딸인지 아들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지만, 끝내 운구까지 직접 하며 할아버지 잘 보내드리고 왔습니다.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매번 해명할 필요 없는 일상을 기원합니다. “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집 앞에 목련이 활짝 폈네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아 꽃이 폈듯이 차별과 혐오가 지나가고 존엄과 평등이 실현되는 나날이 올거에요.”
“난 오늘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밥도 먹었다. 낮술도 했다. 나를 포함한 소수자집단, 그리고 다른 소수자 집단의 일상의 영위가 너무 힘들지 않은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얼른’이란 단어를 타이핑했지만, 좀 더 차분히, 오래, 끝까지 지치지 않고 가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지웠다.”
“나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이다.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이 그걸 모르더라도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자 나의 일부이다. 무심코 잊혀지기엔 오늘만큼은 나의 일부를 드러내고 지하철에 타고 서울시청에 갔다.”
“나는 오늘 반려묘와 사냥놀이를 하고 프라이드 에코백을 들고 출근하여 근무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인 나는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시스젠더 청소년들과 함께.”
“예배 가운데 차별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
“퀴어인 우리 소소 부부는 오늘, 만난지 3000일 (전일제) 데이트로 행주산성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하루치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입니다. 사람 많은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무지개 리본을 손에 묶어 높이 치켜듭니다. 모든 사람의 일과 사랑과 존엄을 지키는 동료시민이고 싶습니다.”
“양성애자인 나는 오늘, 대학원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동기들과 부대찌개를 먹었습니다. 카페에서는 크림라떼를 마셨고, 내일도 비슷한 하루를 보낼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퀴어하게산다. 나대로, 다르게살아간다. 이해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나대로 나름대로 온전한 나로서 살아간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