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편지]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된다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1/04/23
* 서울인권영화제의 상임활동가 채영과 후원활동가 윤석이 서로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이에 두 차례에 걸쳐 편지를 연재합니다. *
윤석의 채영 소개
현명한 사람. 건강히 살기에는 험난한 사주팔자를 달고 태어났지만, 특유의 현명함으로 울고 비틀거리면서도 ‘잘’ 살아가는 중.
채영의 윤석 소개
진지하고 열정 많은 전갈자리. 내 친구들 중 나와 가장 다른 사람. 만약 한 줄로 표현한다면,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채영의 편지
안녕, 윤석.
많이 바쁜가 봐. 신경 쓸 일이 줄지 않고 벌어지는 현실에 지칠 만도 한데,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도 참 대단해.
기후정의를 위해 공부하고 활동하는 나의 친구에게, 그리고 내가 일하는 단체의 후원활동가님에게 묻고 싶어서 이 메일 문답을 요청해보았어.
(돈도 많이 못 벌면서) 어떤 마음으로 연구자+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는지. 게다가 없는 살림에 서울인권영화제의 후원활동가가 되기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설마.. 돈 못 버는 친구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은 아니겠지? ㅎ 그나저나 저번에 남기고 간 책에 껴 둔 돈 덕분에 이번 이사 보증금을 잘 해결할 수 있었어. 피붙이가 아닌 사람에게 노동 없이 큰돈을 받는다는 게 정말이지 낯선 경험이어서 처음에는 불쾌할 뻔했지만, 곧 돈 쓸 일이 벌어져 옳다구나 하고 써버렸지 뭐야.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싶어. 내가 오래 살긴 했나 봐 하하.
없겠지만 혹시 나에게도 묻고 싶은 게 있다면 적어줘. 친구 채영보다는, 당신이 후원하는 곳의 활동가에게, 또는 활동가 동지에게 묻고 싶은 거라면 더 좋겠군!
윤석에게 채영이
윤석의 편지
오랜만 언니.
바쁘다는 말 안 쓰려고도 했다가, 바삐 살다 곁에 소홀해져 슬퍼했다가, 지금은 그냥 이렇게 정신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다니는 삶을 긍정하기로.
활동가의 지속가능성이 이 판(?)에 맴도는 사람들의 공통된 화두일 터인데, 나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 지속 가능할 수 없는 여건에서 "지속 가능해야지"라고 염불 외는 것이 별로라. 그냥 우리 사는 세상이 그렇지 뭐.
실은 요새 나는 나를 활동가라 소개하지는 않게 되더라. 어떤 패배감? 쓴맛이 싫어서 그런가 봐. 그 왜 베트남에 지어진다는 붕앙 석탄발전소 막으려고 이래저래 설치고 다녔잖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못 막았어. 이미 포크레인이 삽 떴겠지. 월성, 밀양, 삼척, 홍천의 장면이 거기서도 있었겠지.
나쁜 놈들 나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한이 맺혀서, 준비하기로 했어. 생태학살(Ecocide)을 주제로 논문을, 삼성과 한전 상대로 기후소송을 준비 중이야. 곧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생태학살을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등극하는 법령(Ecocide Law)이 올라올 것 같고, 남는 일은 이 지각변동에 맞추어 준비하고 흐름을 만드는 것이겠지. 이제는 국가와 기업의 판을 엎어서 지지 않을 수 있어.
슬프게도, 세상이 밑바닥으로 꺼꾸러질수록 우리에게는 승기가 보일 거라는 생각을 해. 내리막길에서 잘 미끄러지는 법, 이랄까. 기후 위기로 대표되는 행성한계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을 향해가고 있고, 급진적인 기후과학자들은 이미 늦었다고 고백하곤 하지. 증명된 종말을 보는 것은 여간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세상에 망하는 과정에서도 사람을 살아갈 것이고, 지켜야 할 것은 있기에 그리 괘념치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30년 안에 기후난민이 10억 명 단위로 생길 때, 식량난이 고조되어 북반구에서도 기아, 빈곤이 일어날 때, 연관되어 각국의 정치체제가 극단으로 치닫고 붕괴할 때, 그곳에서 우리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쓰고 보니 지금이나 그때나 정도만 셀 뿐 양상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사진1. 윤석의 친구가 윤석에게 만들어준 책갈피. 윤석이 좋아하는 책구절을 종이에 적어 코팅했다. 원고지 바탕의 종이에 쓰인 문구. 윤석에게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된다.” by정환]
활동가들은 희망을 발굴하는 사람들이지. 대부분 사회는 진보한다는 믿음에 기초해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곤 하고. 그런데 이번에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시장이 오세훈이더라. 12년 전에 용산참사가 있었고, 처음 그때 부모님 따라 촛불을 들었었는데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거지? 많은 것을 잃어버렸고, 시대는 못돼먹은 철학자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역행하기도 하더라. 나는 기후 위기기 진보와 상충하는 개념이라 생각해. 보수라 불리는 이들과 대기업 내에 자리 잡은 경제성장의 돈 논리나, 진보라 자칭하는 이들과 활동가들의 사회 진보에 대한 믿음과 논리가 비슷해 보이더라.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마음과 이별하기는 쉽지 않고, 나도 녹색당에서는 희망과 기대에 대한 호언장담을 늘려놓아. 힘이 되니까. 희망을 주니까. 그러나 희망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영역이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길어졌네. 서인영에 있는 사람들의 활동을 이루 말 못 하게 응원하지. 당신들이 정말 무언가를 지키는 사람들이라 생각해. 기후 위기로 미래가 없어져도, 오세훈이 시장이더라도 지켜야 하는 생명과 가치가 있다는 것은 변치 않아. 독립한 사람들에게 마음과 후원을 보내는 데 다른 이유는 없고. (매번 영화 티켓 값도 못 보내는 기분이라 영화 틀 때 미안하더이)
묻고 싶은 거라, 글쎄. 언니는 늘 자기 마음 이야기를 건네줘서 모르겠고 궁금한 거는 딱히 생각나지는 않네. (아, 바라는 것은 많소만)
덧. 광주 온 김에,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된다고(김상봉, <네가 나라다>, 2017/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 2014), 내가 잡고 살아온 말이잖아?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너'들을 무시하거나 망각하는데, 서인영이 바라보는 '너'들은, 잡는 손들은 참 감사하게도 많더라. 응원. 지지. 연대. 활동가 레터라는 걸 잊었어. 미운 언니가 고생 좀 하겠네. 그래도 어디서든 다 할 수 있는 뻔하고 멋지고 번지르르한 말들 보다야, 솔직한 게 낫지. 어떤 선들이 계속 무너져내려가는 걸 보면서, 점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어. 불확실성이 우리 시대의 속성이라지만, 그렇기에 더욱 지켜져야 하는 건 지키고 싶다. 다 무너지고 다 죽고 다 떠나면 무엇이 남을까.
덧덧. 전남도청 앞에 나가 노란 리본 매달고 기자회견 앞에 서니까 못 다한 말이 남았더래. 기분이나 감정에 좌우되고 싶지 않아서 내밀한 글을 그만둔지는 좀 되었어. 주어에서 나를 빼는 연습을 하려 애썼는지도. 너무 많이 이야기했고, 모르겠고, 비탄어린 일은 차고넘치고, 나는 일을 이뤄야 하니까.
그런데도 4.16이 또 오고, 유가족들의 한 맺힌 목소리를 듣고 그러니, 하얀 옷 입고 이름들을 부르며 너울거리는 공연가의 몸짓에 눈물 좀 쏟고 보니 뭔가 거슬러가고 싶네. 앓음에서 시작했던 앎, 그 전에 있었던 슬픔들로 말이야.
정치 이야기는 안 할래.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에 익숙해져 실망할 것은 남아있지 않고, 세월호를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의 한 맺힌 슬픔에 참으로 무력하다 그런 이야기는 안 할래. 그저 내가 그 때 왜 촛불을 들었는지, 지금은 그 맘이 떠오르지도 않고 어색하기도 하네. 힘겹게 모아낸 희망이 무너질 때 사람은 어떻게 살고, 사회는 어떻게 되는가. 집단 무기력과 부정과 무관심과 망각 모두다 착잡키만 하여 분석할 엄두를 못 내겠다. 나는 사회로 과학할 수 있다는 전제를 많이 포기했어. 불가능하다고 여기지는 않고, (실패하더라도) 시도할것이지만, 적어도 사회과학을 통해 이상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논리는 (앞선 활동가의 사회 진보의 믿음과 마찬가지로) 나의 바람일 뿐이니까.
세월호의 노란색 앞에서 녹색은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졌어. 대게 배부른 소리, 뜬구름 잡는 소리로 일축되는 색이었는데, 몇 년 사이에 시대가 자각되면서 녹색이 가장 배고픈 이들의 색이자, 코앞에 닥친 위기의 색이 되었지. 나에게 녹색은 노랑색도 빨강색도 보라색도 무지개도 끌어안는 색이었는데 지금은 그럴까.
상봉샘이 보고싶다. 광주에 사는 나의 철학자 선생님이 보고 싶다. 내논 자식처럼, 광주와 너도나라를 떠난 지 시일은 꽤 흘렀지만, 어찌 고향을 잊을 수 있을까. 결국 나에게도 근원은 있을긴데. 상봉샘께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차 한 잔 하실 수 있으시냐 전화드리고 싶다. 계속 이어달리기 중인데 모르시겠지. 광주에 있는데 뭐 먹고 싶은 거 있는 사가고~
2021.4.16 정오 전남도청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