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눠요] 당신의 사월, 나의 사월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1/04/23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노란 리본을 달고, 서명을 하는 일을 가벼이 여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한 행위들이 물리적으로 가장 손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의를 폄하하는 시선에는 좀처럼 동조하기 어렵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노란 리본을 달고, 서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영화 <당신의 사월>은 그 ‘잊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커피 공방 사장님의 이야기, 인권활동가의 이야기, 기록관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의 이야기.
당신들의 사월에 대해 듣고 나니 조금 부끄러워졌다. 나는 항상 내 생각만 했다. 정확히는 내 가족과 내 친구들을 걱정하기만 했다. 배가 침몰한 그 날부터 반년 간 나는 늘 불안에 시달렸다. 터미널에서 불이 났다고 했고, 자주 가던 지하철역에서 사고가 났다고 했고, 공연장에선 환풍구가 무너졌다고 했고, 학교에선 가스가 누출됐다고 했다. 사고는 원래 항상 많았는데 우리가 좀 더 인지를 잘하게 되었을 뿐인 것일까? 내 가족과 친구의 안전을 끊임없이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당연한 걸까? 모르겠다. 그 시절 내가 행한 것은 애도이기보다는 기도였으리라. 불쑥불쑥 친구들에게 “오래 살자”는 말을 내뱉던 시절이었다.
“그들이 죽은 뒤에 내게 남을 세계, 그 황폐함을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맥락도 없이 불쑥, 너는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내가 너를 무척 소중하게 여기고 있고 네가 그것을 알고 있으니 만약의 위기가 닥쳤을 때 너는 무조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황정은, <눈먼 자들의 국가>)
처음으로 안산에 다녀온 것은 재작년 사월 십육일이었다. 미루고 미루다 그제야 다녀왔다. 그곳에서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생존자는 떠난 친구에게 가닿지 못할 반성문을 자꾸 쓴다고 했다. 그 마음을 영영 알 수 없을 것 같았다가, 또 어떤 때는 너무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영영 알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하는 일도, 너무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하는 일도 어려웠다. 그 다음 사월 십육일에도, 그 다음 사월 십육일에도 그 마음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사실 사월 십육일은 좋아하는 친구의 생일이기도 하다. 너는 참으로 얄궂게 이런 날에 태어났구나, 할 수는 없으니 그냥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말았다. 언젠가 함께 안산에 가자 하면 친구는 흔쾌히 그러자고 할 터인데 그것도 아직 묻지 못했다. 어수선한 세상에 부디 친구가 평안히 사월을 통과하기를, 이기적인 나는 그것을 간절히 바란다.
[그림1. 당신의 사월 포스터. 노란 리본이 중앙에 크게 그려져 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