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편지]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된다 (2)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1/05/07
* 서울인권영화제의 상임활동가 채영과 후원활동가 윤석이 서로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
http://hrffseoul.org/ko/article/3105 에서 지난 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채영의 편지
윤석,
지난 7년 중 가장 조용한 4월 16일을 보냈어. 눈물도, 비에 젖은 옷도, 무거운 다리도 없었어. 그런데 몸이 기억하는 건지 밤이 되니 이유 없이 몸이 붓더라. 몇 년 전 거리에서 보낸 4월 16일을 기억하듯 말이야.
봄이 올해 만큼 잔인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나 싶어. 개인적으로는 2014년보다 2021의 봄이 더 잔인했어. 2월부터 3월로 이어진 연속된 죽음을 겪으며 비로소 소중한 이를 잃는다는 게 무엇인지 배웠어. 가까운 이의 죽음에서 타인의 죽음으로 나의 경험을 확장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았어. 난 3월에 멈춰서 3월이 오는지도 몰랐고, 작년까지만 해도 통증으로 찾아왔던 416이 눈 깜짝할새 ‘어제’가 되어버렸어.
얼마 전 엄마와 다투다 독한 말을 뱉었어.
"내가 죽을까봐 걱정된다고? 그러니까 그러지 말라고? 단 한 번도 살아보고 싶은 세상을 주지 않았잖아. 당신들 세대가 만든 세상이잖아. 나한테 죽음은 일상이야. 일상. 그러니까 내 죽음 가지고 유난떨지 마."
오래도록 가슴에 묵혀 둔 진심이었지. 사실 난 요즘 주변에 대한 원망이 늘었어. 내가 왜 이런 세상에 살고 있어야 하는 건지, 왜 나의 친구가 죽어야 했던 건지, 왜 내 또래의 여성들의 우울증이 늘고 있는 건지, 화가 나는 게 많아. 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지구를 걱정하고 있지만 솔직히 난 지구가 망하는 것보다 내 주변 사람이 죽는 게 더 무섭고 걱정돼.
[그림2. 그림1을 만들어 준 친구 ‘정환’이 채영에게 만들어준 책갈피. 고양이그림이 있는 메모지에 손글씨로 책구절을 적고 코팅했다. ‘마음이 너무 무거운 건 이미 지나가서 무게도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너무 가벼운 것 또한 아직 오지 않아서 무게 없는 것들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다. 모두가 마음이 제 무게를 잃어서였다. 제 무게를 찾으면 마음은 관대해지고 관대하면 담담해진다. 지나가는 것들을 지나가도록 놓아주고 지금 여기있는 것들을 있는 모양대로 받아들이고 다가오는 것들도 무심하고 담담하게 맞이한다. <아침의 피아노38>]
‘활동가는 희망을 발굴하는 이’라 말했지.
마침내, 결국, 활동가의 타이틀을 단 나는 조금 궁금해져. 활동가에게 희망이 없으면, 누가 활동가의 희망은 챙겨주나?
나는 대의를 위해 소수의 운명이 희생되는 ‘운동판’의 숙명이 그만 멈췄으면 해. 그런 점에서 한국에 '진보'는 있었는가? 가 요즘 나의 화두 중 하나인 것 같네. 나의 어린시절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원흉에 대한 분노이기도 해.
그럼에도 왜 하냐고? 서울인권영화제의 상임활동가가 된 후, 지난 반 년 간 내가 매일 마주하는 것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이기지 못한 싸움에 대한 소식들이었어. 모든 소식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어 대부분 슬쩍 스치는 것이 사실이야. 반면 영화제에 들어오기 전, 나는 ‘희망’을 말하지 않는 것을 매일 노력했어. 보다 현실적이고 실리적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어. 그때의 나보다 지금 내 삶이 더 희망적이라고, 믿어. 믿고 싶어.
어쩌면 나는 희망을 갖기 위해 활동을 하는지도 모르겠어. 아직은 나를 활동가라 소개하는 것이 낯설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무언가 할 수 있다면, 기왕이면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이상을 실현하고 싶어.
그래. 어찌 어찌 살다 보니 난 인권운동단체에 들어와 있고 세월호는 7주기이고 이곳 저곳의 인권은 여전히 탄압 받는 와중에 오세훈이 '다시' 시장이 되었네. 철학자들을 믿은 적은 없지만 사회과학으로 희망을 주려던 인문학자+교수들을 믿었던 나로써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 그들이 실현시켜 놓은 ‘희망’에 대해 묻지 않을 수가 없네. 나에게 대학이 힘들었던 이유는 ‘이론’을 통해 ‘현실’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야. 내가 노동자탄압의 역사나 사회를 해석하는 이론을 읽고 있는 그 시간에 나로부터 한 시간 떨어진 곳에선 또 한 번의 단식투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어. 그 현장에 가는 용기를 기르지 않을 거라면, 나에게 공부의 목적은 무엇인가, 답을 구할 수 없었어.
미래의 목표, 먼 곳에 있는 이들의 삶. 그것을 위해 끌어낼 힘은 없어. 지난 몇 년간 단 기간에 많은 것이 천천히, 꾸준히 스러져 왔고 회복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엄마에게 ‘내게 살으라 부탁할 권리는 없다’고 해놓고 뒤돌아서 기도해. “제발, 네가 살아달라”고.
이런 세상임에도 지켜야 하는 게 있다면,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다면 난 지구나 어떤 가치, 대의, 권리, 도덕, 윤리를 말하진 않을 것 같아. 차라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친구와 활동가들, 그들의 일상을 지키고 싶어.
윤석의 편지
언니,
시간이 금세 가네. 점점 허들이 높아지고 있어. 요새는 들어오는 기회들과 제안들을 모두 받고 있어. 닥치는 대로 다 하고 있어. 규모의 경제처럼, 많은 곳에 속해있기에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들이 있는 듯 해. 그보다, 힘과 권력과 명예 돈 같은 것들을 거역하지 않는 거지. 주객전도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자기위안에 머무는 운동과 연구를 할 생각은 없어. 어떻게든 엎고 이길거야. 뭔가 그저 스러지게 두지 않을거야. 그냥 이런 생각하면서 한 다스리고 촉촉해지고 그래.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에 중독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소신있게 살아갈거야. 이미 그러고 있고. 다만 정말 늘 숨차게 달려오다 보니 옆과 뒤를 챙길 겨를이 없어지는 것은 속이 상해. 그것도 나부터 챙겨야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들려주고파서 들렸어. 녹색당 세미나를 하다가, 한국 사회의 현주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네? 오세훈이 태양광 정책 폐기 지시를 내렸대. 원전 하나 줄이기 부터 작게나마 에너지전환을 해오던 서울의 10년이 뒷걸음질 치게 되었어. 이곳저곳 사회적경제 조직 들이 무너지는 이야기도 들었네. 코로나에 엎친 데 덮친 격이지.
무엇이 남게 될 지 모르겠다. 희망을 발굴하기 어려운 때야. 그럼에도 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그래서 나는 가려고. 멋진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늦었고, 눈꺼풀이 무겁네. 그저 아스팔트 위에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의 목소리와 시도 덕에 힘을 얻네.
조금은 연결이 무서워. 마음을 독하게 먹었어. 늘 섬세해지고 싶었는데 요새는 야박할 정도로 무뎌지려고 해. 결국 많은 것이 내 손을 떠난 일이지 싶어.
나에게 언니가 죽지 말라 요구할 자격은 없어. 그래도 말은 할 수 있었음 좋겠다.
편히 자고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 모레 재밌는 자리를 준비했으니 시간 나면 와보고. 내일 저녁 ‘어떻게 사회를 전환할 것인가 ‘ 주제로 사회 전반에 대해 기조발제를 해. 준비는 못했고, 몇 년 간 생각만 많았네. 진심은 통하려나. 학자로서 확신이 없는 때에도 나는 희망을 불어넣어야 하는 듯해. 거짓말이 아니길 빌어. 믿어.
202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