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변희수 하사, 김기홍 활동가, 은용 작가의 삶과 뜻을 기억하고, 혐오와 차별 없는 우리의 내일을 이어가기로 다짐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안녕을 묻고 지금, 여기 우리의 존재를 드러낼 것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까지 추모와 저항의 특별상영회 <지금, 트랜스젠더로 살다>를 이어갑니다.
1차 조사 이후로도 코로나19 대확산 상황이 반복되며 의료공백 역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공공의료의 확충 등을 통한 코로나 19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의료공백 상황을 방치한 결과, 감염병 전담병원의 지정으로 홈리스들이 강제로 퇴원해야 했고, 코호트 격리로 인해 감염이 확산되는 등 의료공백의 피해는 심화되었습니다. 이에 코로나19 의료공백실태조사단은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의료공백 피해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2차 설문 조사를 시작합니다. 링크(http://bit.ly/의료공백)를 통해 온라인으로 응답이 가능합니다.
[사진1. 청와대 분수대 앞. 고 정유엽 학생 사망 1년 추모 기자회견 “정부는 의료공백 문제 책임있게 조사하고 재발방지 위해 공공의료 강화하라”의 모습. 발언자들이 기자회견의 제목이 적힌 현수막을 뒤에서 국화, 피켓, 병원 모형을 들고 있다.]
(...) 저는 코로나19 의료공백실태조사단과 함께 17일과 18일 행진에 함께했습니다. 다행히도 날이 맑고, 밝고, 따뜻했습니다. 코로나19를 말미암아 집회가 자유롭지 못한 지금 정말 오랜만에 사람들과 거리를 함께 걷고 함께 외칠 수 있었습니다. 여의도를 지날 땐 엘지트윈타워 투쟁현장 노동자들의 지지와 응원의 박수를 받으며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포근한 봄날씨에 겉옷을 벗고 걷다가, 지칠 때 즈음엔 함께 김밥 한두 줄을 먹으며 남은 거리를 가늠해보기도 했습니다.
몸 곳곳에 달린 트랜스젠더 색의 액세서리가 눈에 띕니다. 2호선 시청역에 책을 한 권씩 든 사람들이 들어섭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장갑 낀 손이 높이 들어지면, 다 같이 들어섭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그러나 한 공간에서 한 모습으로 3월 6일 변희수 하사 추모 행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고 변희수 하사, 김기홍 활동가, 은용 작가의 삶과 뜻을 기억하고, 혐오와 차별 없는 우리의 내일을 이어가기로 다짐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안녕을 묻고 지금, 여기 우리의 존재를 드러낼 것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까지 추모와 저항의 특별상영회 <지금, 트랜스젠더로 살다>를 이어갑니다.
1차 조사 이후로도 코로나19 대확산 상황이 반복되며 의료공백 역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공공의료의 확충 등을 통한 코로나 19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의료공백 상황을 방치한 결과, 감염병 전담병원의 지정으로 홈리스들이 강제로 퇴원해야 했고, 코호트 격리로 인해 감염이 확산되는 등 의료공백의 피해는 심화되었습니다. 이에 코로나19 의료공백실태조사단은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의료공백 피해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2차 설문 조사를 시작합니다. 링크(http://bit.ly/의료공백)를 통해 온라인으로 응답이 가능합니다.
[사진1. 청와대 분수대 앞. 고 정유엽 학생 사망 1년 추모 기자회견 “정부는 의료공백 문제 책임있게 조사하고 재발방지 위해 공공의료 강화하라”의 모습. 발언자들이 기자회견의 제목이 적힌 현수막을 뒤에서 국화, 피켓, 병원 모형을 들고 있다.]
(...) 저는 코로나19 의료공백실태조사단과 함께 17일과 18일 행진에 함께했습니다. 다행히도 날이 맑고, 밝고, 따뜻했습니다. 코로나19를 말미암아 집회가 자유롭지 못한 지금 정말 오랜만에 사람들과 거리를 함께 걷고 함께 외칠 수 있었습니다. 여의도를 지날 땐 엘지트윈타워 투쟁현장 노동자들의 지지와 응원의 박수를 받으며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포근한 봄날씨에 겉옷을 벗고 걷다가, 지칠 때 즈음엔 함께 김밥 한두 줄을 먹으며 남은 거리를 가늠해보기도 했습니다.
몸 곳곳에 달린 트랜스젠더 색의 액세서리가 눈에 띕니다. 2호선 시청역에 책을 한 권씩 든 사람들이 들어섭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장갑 낀 손이 높이 들어지면, 다 같이 들어섭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그러나 한 공간에서 한 모습으로 3월 6일 변희수 하사 추모 행동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