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깊고 오랜, 사랑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1/05/21
[사진1. 영화 <깊고 오랜 사랑>의 스틸컷. 한 사람이 병원 침대에 앉아 있고, 다른 한 사람이 앉아 있는 사람에게 밥을 떠주고 있다.]
2013년의 부산, 한 60대 여성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반려와 사십년을 함께 한 집의 건너편에서, 장기를 기증해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갑자기 나타난 조카가 그들을 갈라놓았던 탓에 반려의 죽음을 뒤늦게 접한 후였다. 어떤 기사는 여고 동창 시절부터 이들이 함께한 시간과 그녀의 죽음이 “우정을 과시”했다고 표현했고, 또 어떤 기사는 그녀가 “친구”의 죽음을 비관했다고 서술하였다. 〈깊고 오랜 사랑〉은 이들의 서사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허구의 영화다.
우정이라는 표현이 지우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본다. 40년을 함께 한 두 사람의 시간. 이들이 여고 동창생이라는 점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여느 노부부의 시계로 비춰졌을 시간이다. 함께 자라고, 함께 늙어간다는 것. 함께 넘어지고 일어서고 장을 보고 길을 걷고 잠에 들며 어떠한 삶의 궤적을 만들어가는 일. 반려, 라는 말로도 채 담아낼 수 없으나 보호자라는 말로는 불릴 수 없는 이 관계의 양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록되지 못하는 사랑의 시대를 살아내는 우리는 이 영화가 허구의 이야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영화는 어떠한 관계가 손쉽게 부정되고 금기시되고야 마는 현실의 폭력을 마주한 우리의 이야기에 가깝다. 실재한 그녀들의 삶과 죽음을 혼인평권과 가족구성권이 보장되지 못한 현실로 인해 발생한 비극으로 해석할 때 이들이 반려로서 함께해온 삶의 정동은 너무나도 쉽게 지워지며, 이는 영화 속 영희와 순정의 사랑에서 성애적 사랑의 맥락을 제외하고 반려적 애정만을 수용하는 것만큼이나 무례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들이 퀴어였든 퀴어가 아니었든 사십년을 함께한 이들이 가족의 이름으로 명명될 수 없었던 현실이 비현실적이리만큼 괴이하다는 것이며, 이것이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마주한 문제라는 점이다. 이에 영화 〈깊고 오랜 사랑〉은 허구에 머물 수 없는 허구의 이야기가 되며, 허구와 우리의 오늘 사이, 그 경계에 서 있는 우리는
부서지고 모래가 가득 쌓인 양호실에서 입을 맞추는 여고시절 영희와 순정의 모습부터
식탁에 둘러 앉아 열무국수를 말아 먹는 이들의 모습까지,
28분의 시간 동안 우리들의 깊고 오랜 사랑을 본다.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영화의 엔딩에 등장하는 어떠한 노랫말처럼.
너를 만나 난 행복했다 모두 꿈인 것만 같아
세상 어디라도 나는 좋아 너와 함께 가면
봄과 여름과 가을 또 겨울도 난 영원히 너를 사랑해
- 권진원, 깊고 오랜 사랑 中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권태
*<깊고 오랜 사랑>은 21회 서울인권영화제: 나는 오류입니까 (2016) 중 ‘가족을 묻다’ 섹션의 상영작으로, 상영지원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함께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인권영화제로 연락 주세요. 02-313-2407, hrffseou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