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눠요] 영화 <이름의 무게>

[함께 나눠요] 영화 <이름의 무게>

[사진1. 방으로 보이는 공간. 책상 위에는 공책과 액자 등이 널부러져 있고, 빈 의자가 있다.]

[사진1 . 방으로 보이는 공간. 책상 위에는 공책과 액자 등이 널부러져 있고, 빈 의자가 있다.

 

저마다 이름의 무게를 안고 살아갑니다. 제 이름의 무게는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정의하는 ‘나’와 타인이 알고있는 ‘나’, 그리고 ‘나’가 합쳐져 제 이름이 불리고 쓰인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이름 붙이기가 어렵고 가끔은 무력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어떻게든 언어의 틀에 의지하고 있고, 언어의 구조 속에서 사고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손가락’이 진짜 ‘손가락’이 아니듯이, 제 이름을 표상하고 있는 개념은 어디를 떠돌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계속해서 이름 불리기를 원하고 동시에 어딘가에 이름을 적어나갈 때 무게감을 느낍니다.

이름을 지우려는 국가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이래 팔레스타인은 나크바를 겪은 후 오늘날까지도 집을 빼앗기고, 땅을 빼앗기고, 정체성을 빼앗기고, 이름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군사점령으로, 아파르트헤이트로 팔레스타인을 탄압하고 국외적으로는 핑크워싱으로 ‘성소수자가 살기 좋은 나라’를 표방하며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가 브랜드(브랜드 이스라엘)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본질을 무시한 채 무력으로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영화 <이름의 무게>에는 록 밴드 라디오헤드 보컬에게 텔아비브에서 예정된 공연을 취소해달라는 청원서에 서명을 하고 고민하는 마하디와 친구 파리스가 나옵니다. 마하디와 파리스는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로 각각 베를린과 영국에 살고 있습니다. 두 친구는 언젠가는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함께 무력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서명이 언젠가 돌아갈 때 문제가 되지 않을까,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마하디에게 파리스는 그 사자는 코털을 건들든 말든 아무 상관도 안 한다고 말합니다. 그 사자는 이미 너무 커졌고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아무 힘도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힘 없는 투쟁에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밤 잠을 못 이루고 고민해야 하는 일입니다.

2005년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단체는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Boycott, 투자철회Divestment, 경제제재Sanctions 즉 ‘BDS’를 통해 이스라엘의 인권유린을 멈추자고 세계에 알렸습니다. BDS는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행위에 대응하는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비폭력적인 방법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도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문화생산물을 거부하고, 성소수자 행사/영화제에 대한 지원 및 섭외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말하고 연대하고 투쟁하며 정체성을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어딘가에 이름을 적어나갈 때는 제 이름에 대한 묘한 위화감이 두려움을 자아날 때도 많지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는 이름의 무게를 가득 실어 제 이름을 또박또박 적고 싶습니다. 이 연대 속에서 제 이름이 불리길 바랍니다. 다른 누군가의 무게도 이 선언의 한 폭을 차지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은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