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차별금지법의 공통 감각

[함께나눠요] 차별금지법의 공통 감각

가족이 지니는 구체적인 의미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족과의 관계는 중요한 '삶의 조건'으로 작용한다. 딸을 위해 여기저기 국민동의청원을 독려했을 엄마를 상상해본다. MTF 손녀를 위해 난생 처음 청원에 참여했다는 70대 노인의 사연을 상상해본다. 동성혼 법제화를 꿈꾸며 차별금지법을 응원했을 동성 부부를 상상해본다.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했을 10만 명의 사연을 하나, 하나 상상해본다.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을 가뿐히 달성하자 마치 법이 제정된 것처럼 너도나도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온라인 퀴어문화축제의 현장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지. 정치는 과연 이 열망을 받아안을 수 있을까. 정치인들의 말, 말, 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불충분하다", "시기상조다" 운운하는 이들도 보인다. 정치인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불성실하고 성의없는 답변이다.

 

영화 <게이비 베이비>에서도 그러한 말, 말, 말이 쏟아진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해야죠", "동성 커플은 엄마와 아빠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없죠", "동성 부모는 아이들에게 해로워요" 등. 그러한 말의 포화 속에 살다 보니, 영화 속 동성 부부의 자녀는 두 명의 아빠를 이웃에 소개할 때 그 중 한 명을 '베이비 시터' 혹은 '아빠 친구'라고 소개해야 한다. 레슬링을 좋아하는, 예고를 준비하는, 종교에 의문을 품게 된 자녀들의 삶에 부모의 현실이 종종 개입한다. 

 

그들이 학교 선생님에게 아빠와 '아빠 친구'를 소개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며 개인적인 경험을 들추어본다. 어쩌다보니 페이스북에다 대고 커밍아웃을 하고도 다행스럽게도 '별 일 없이' 지낸다. 그럼에도 가끔은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며 산다. 온라인 자아와 오프라인 자아가 사뭇 다른 것인지,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대면하는 누군가에게 내가 동성의 애인을 만나고 있다고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애인의 부모님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다. 그들에게 나는 '인권운동을 하는 불온한 멘토 선배'쯤으로 위치지어진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로 인해, 나와의 관계로 인해 누군가 가족과 절연의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는 자각을 하면서 처음으로 나는 '동성 연애'의 현실에 맞닥뜨렸다. 

 

차별금지법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구제'해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 하나의 열망이 모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세계에서 내가, 나의 애인이, 나의 가족이 받을 수 있는 신호는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 같다. 차별금지법은 '상식(common sense)'을 바꾸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통 감각'이다. 무엇이 당연하고 무엇이 당연하지 않은지에 대한 '상식'은 바뀔 것이다. 차별금지법 이후의 세계에서는 대선 후보가 감히 "동성애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하겠지. 차별금지법 이후의 세계에서 나의 가족을, 당신의 가족을 만나길 상상해본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