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눠요] 시점으로부터

[함께 나눠요] 시점으로부터

[사진1. 서울인권영화제 21회 상영작 <살인자, 그리고 살인자들> 스틸컷. 브라질의 한 여성인권 활동가가 화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1. 서울인권영화제 21회 상영작 <살인자, 그리고 살인자들> 스틸컷. 브라질의 한 여성인권 활동가가 화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살인자, 그리고 살인자들⟩(원제 : Who killed Eloa?)은 슬픈만치 익숙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브라질의 열 다섯 살 여성 엘로아가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과 납치와 폭력에 시달리고 있을 때, 카메라는 액션영화마냥 박진감 넘치는 현장에 초점을 맞추었고 심리학자는 사랑에 빠져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한 청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엘로아의 어떤 행동이 그녀의 남자친구를 집착하게 만들었고, 화가 나게 만들었는지를 설명했으나 그들의 맥락 속에 엘로아는 없었다. 피해자로서의, 선택의 주체로서의 엘로아는 없었다. 경찰에 의해 방치되고 시선에 의해 부추겨진 인질극으로 엘로아가 사망했을 때 언론은 다시 한 번 앞다투어 엘로아의 장기 기증 사실을 알렸고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 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그렇게 엘로아는 비극 끝에 여러 생명을 구하고 떠난 성녀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우리에게 물었다. ‘누가 엘로아를 죽였을까?’

 

어떠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당신은 늦은 밤 집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 당신은 어떠한 발소리를 듣는다. 당신은 속도를 높인다. 의문의 발걸음 역시 속도를 높인다. 당신은 계속 계속 속도를 높인다. 발걸음은 계속 계속 당신을 좇는다. 발소리가 멈춘다. ‘다행히’ 당신은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또 다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당신은 소설을 읽는다. 소설에는 가난하고 어두운 자신과 대비되는 어떠한 사람을 짝사랑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당신은 그 찌질함과 남몰래 품어온 열등감에 대한 화려한 서술에 감탄하며 서사에 이입한다. 신기하게도 상대는 주인공을 마음에 들어라 하지만 주인공은 본인의 자격지심에 의해 상대에게 상처를 주며 떠난다. 순식간에 상대는 꼬리치는, 천박한 누군가로, 순수한 주인공을 이용하는 악인으로 그려진다. 그땐 내가 어렸지, 하는 주인공의 씁슬한 웃음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그리고 당신은 책을 덮는다.

 

⟨살인자, 그리고 살인자들⟩은 어떠한 시점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엘로아는 그녀의 전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당했으나 분명 그 사이에는 며칠간의 기회가 있었다. ‘성실하고 선량한 청년의 현명한 선택을 믿’는 대신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구출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가해자의 서사를 조명하고 그의 서사를 두둔하며 피해자를 비극적인 성녀로 그려냈다. 그리고는 엘로아로부터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누군가에게 충고를 전했다.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는 늦은 밤 귀가하는 여성의 뒤를 좇아 빠르게 걸을 때 그 여성의 반응이 재미있다 표현하는 모 연예인의 방송을 듣고 채널을 바꾸고, 누군가는 찌질한 남성의 서사에 본인을 대입하다가도 그 남성이 짝사랑하는 여성에 대한 욕구를 묘사하는 대목에서 책을 덮는다.

 

시선에는 힘이 있고 모든 시점은 그 힘을 전달한다. 사회는 엘로아로, 열 다섯 살 여성으로 향하는 가해자의 시점을 선택했다. 24분의 짧은 영화, ⟨살인자, 그리고 살인자들⟩은 어떠한 시점의 탄생과 자꾸만 누군가에게로 내려꽂히는 시선의 기울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는 이 사회의 시점, 그 너머에 말을 건넨다. 다음의 구절처럼.

 

“그녀가 성녀가 되고 싶었을까요? 아뇨, 살고 싶었겠죠.”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권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