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편지] 벌써 겨울이에요.

[활동가 편지] 벌써 겨울이에요.

 9월의 반이 지나가네요. 올해를 시작할 때에는 어서 7월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는데,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있어요. 저는 이제 어서 올해만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내년에도 어서 겨울이 되었으면, 하고 있는 제가 있겠죠? 꼭 있을 거라고, 때 모르는 소원을 빌고 있는 제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철학 수업을 듣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어제의 우리는 지금 우리와 같은가요?’ 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고, 교수님은 ‘그래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답은 ‘아니다’ 였어요. 교수님 개인의 답은 ‘아니다’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때 그 시절 철학의 대답은 ‘아니다’였습니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교수님께 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지 설명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도중 그 이야기는 지나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정말 구태의연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제 본질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바뀌지 않는, 그런 단단한 다이아몬드 같은 본질이요. 설명하자면 길고 조금은 오그라들 수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그런데 다가오는 추석을 생각하면 저는 다이아몬드는 커녕 돌리면 이리저리 지직 거리는 라디오 주파수 같아요. 이것도 숨겨야하고, 저것도 숨겨야하고, 이런 건 이야기 하면 안 되고, 이런 건 꼭 해야하고… 맞는 주파수를 찾으려 애쓰는 제가 벌써 보이는군요. 세상을 바꿀 때까지 불온하고 싶지만 대 정상가족 사이에서는 그 일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이 싫은 건 아니에요,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봐요. 제가 느끼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또 얼마나 장황하고… 모순적이고… 

 

 아무튼,이 편지를 쓰면서야 어제의 저와 오늘의 제가 같다는 게 ‘그래요?’라는 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물론 철학 수업의 질문은 이런 개인적이고 소소한 자아성찰이 아니었겠지만요. 

 

 모쪼록 다가오는 추석을 무탈하게 보내셨으면 합니다. 얼른 겨울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은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