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영화 상영하세요.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08/01/22
무더위도 한풀 꺾이고 이제 완연한 가을입니다.
가을에는 여러 단체(소규모 그룹)에서 다양한 행사를 많이 기획합니다. 그 중에서도 인권영화 상영이 단연 인기가 높습니다. 상영 문의나 요청이 제법 들어오는 편이죠. 지난 11회 인권영화제에서 감동을 안겨준 작품 7편( )을 엄선해서 영화제 또는 소규모 상영회에 대여해 드리려고 합니다(판매는 아직 못합니다). 기존 인권영화제들 뿐 아니라, 이번 기회에 단체 (후원)회원들과 상영회로 만나는 오붓한 기회 한 번 만들어보세요.
인권영화 VHS 50% 할인 판매합니다
아직도 인권영화가 없으신가요? 이번 기회에 (단체) 책꽂이를 인권영화로 빼곡하게 채워보세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판매하고 있는 인권영화(VHS)를 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합니다. 이번 할인판매로 더 이상 VHS 판매는 하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말씀입니다. 재고가 많지 않은 작품도 있습니다. 구입가능한 작품은 위 메뉴로 들어가 보세요.
◎ 대여는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1. 유료 상영도 가능한가요?
- 잘 아시듯이 인권영화제는 무료상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들을 상영하시는 주체들도 무료상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인권영화제의 무료상영원칙을 함께 실천하는 의미도 있구요, 작품 상영을 통해 수익을 남기는 것은 저작권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2. 대여료를 내야 하나요?
- 대여료는 받지 않습니다. 단, 인권영화제를 후원해 주세요. 후원금은 최소 5만원입니다(이 금액도 부담스러운 단체는 저희와 상의해 주세요). 작품을 많이 대여할 예정인 영화제나 상영회는 상영료로 책정해 두신 금액을 모두 후원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인권영화제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만들어지는 영화제입니다.
2. 복사하거나 살 수 없나요?
- 작품의 복사나 판매는 안 됩니다. 저작권자(감독이나 제작사 등)의 동의 없이 불가능합니다.
3. 미리 볼 수 없나요?
- 인권운동사랑방으로 오시면 미리 보실 수 있습니다. 단, 회의실 일정을 비워야 하니 미리 시간 약속을 꼭 해주세요.
4. 무엇으로 상영할 수 있나요?
- DVD로 상영하실 수 있습니다. 더 안정적인 상영을 원하시면 DV-CAM으로 대여 가능합니다. 단, DV-CAM은 데크가 있어야 합니다. 이 기계를 빌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번거로울 겁니다. DVD로 상영하셔도 문제없을 겁니다.
5. 언제 빌릴 수 있나요?
- 상영 2주전에 예약하시면 상영 3일전에 대여해 드립니다.
6. 어떻게 받지요?
- 인권운동사랑방으로 직접 오시거나 우편으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우송료는 상영 주체 측에서 부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7. 상영회나 영화제가 아니라도 대여할 수 있나요?
- 행사의 성격과 주체 등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자세한 건 저희와 상의해 주세요. 물론 서 너 분 정도 모여서 개인적으로 관람하는 경우까지 다 대여해 드릴 수는 없구요. 그런 분들은 시간 내서 인권운동사랑방으로 찾아오시면 보여 드릴께요.
8. 사진이나 리뷰 등 자료를 사용할 수 있나요?
- 인권영화제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는 모두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작품 해설
영국 / 드라마 / 닉 브룸필드 / 상영시간 96분
중국 푸지엔에 살고 있는 에이 퀸은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 여성 가장이다. 아들과 부모를 먹여 살리기 위해 그녀는 영국행을 결심한다. 2만 5천 달러를 빌려 이주 브로커에게 건넨 그녀는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몽고를 거쳐 모스크바 그리고 동유럽을 통해 영국의 어느 항구로 밀입국한다.
관보다 더 작은 상자에 담겨서 짐짝처럼 도착한 영국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두 칸짜리 좁은 아파트에 11명이 모여 사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였다. 칠면조 공장, 농장 날품팔이 등 돈이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하지만 비싼 숙박비와 부채를 갚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 영국인의 신고로 이들의 숙소는 쑥대밭이 되고 많은 동료들이 연행된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게 된 이들은 모캄베이 해안으로 조개잡이에 나선다. 그러나 조개잡이 역시 영국 어부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나고 만다.
숙박비와 빚을 갚기 위해 다급해진 이들은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어두운 해변에서 다시 조개잡이를 하게 된다. 죽기 살기로 조개를 캐는 이들은 승합차의 바퀴가 잠길 때까지 자신들의 죽음의 한 복판에 서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2004년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실화를 영화로 옮겼다.
팔레스타인 / 다큐 / 샤이 카멜리 폴라 / 상영시간 84분
팔레스타인의 작은 마을 블레인에 살고 있는 1700여 명의 거주민들은 땅의 절반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통째로 앗아갈 고립 장벽의 설치에 맞서 싸우기로 하고, 이를 지지하는 이스라엘과 세계 곳곳의 평화 활동가들은 블레인으로 모여든다.
2005년 고립 장벽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시작될 당시에는 그 누구도 마을 사람들이 이토록 끈질기게 저항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블레인은 고립 장벽과 점령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떠오르게 된다. 영화는 농사 짓는 땅의 대부분을 잃게 될 농부 와지와 주민반대위원회의 멤버인 모하메드를 중심축으로 1년이 넘는 기나긴 투쟁을 따라간다.
장벽 설치를 위해 몇 만 년 된 올리브 나무가 허망하게 잘려나가고, 허가도 받지 않은 이스라엘 '정착촌'의 집들은 불도저를 앞세워 막무가내로 세워진다. 비폭력 시위에 이스라엘 군인들은 실탄과 고무총으로 대응하고 심지어 폭력을 위장하기 위해 복면을 쓴 요원들이 시위대에 몰래 잠입해서 돌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주민들과 활동가들 사이에 싹튼 연대감을 원동력으로 그들은 꿋꿋하게 싸움을 이어나간다. 감독은 블레인에 대한 깊은 애정이 생기고, 장벽이 설치된 후에도 저항은 끝나지 않는다.
영국 / 다큐 / 마크 프랜시스 & 닉 프랜시스 / 상영시간 78분
매일 20억 잔, 세계 무역에서 두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커피를'금'이라고 말하지만 아프리카 재배 농가가 벌어들이는 돈은 없다. 영화는 커피의 발상지인 에디오피아 하라르산을 시작으로 커피 향을 따라 세계 곳곳의 불공정 거래 현장으로 침투한다.
커피 생산지인 가난한 아프리카 재배 농가와 소비지인 미국과 유럽의 화려한 커피 시장의 모습은 천지 차이이다. 기업들은 질 좋은 커피를 싼 값에 사들여 이익을 챙기려고 혈안이고, 재배 농가는 낮은 구매 가격 때문에 좋은 커피를 팔아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에티오피아에 살고 있는 타데스 메스켈라는 7만 4천 명이 속한 오로미아 커피 재배농의 협동조합 대표이다. 그는 커피 재배농이 돈을 벌 수 있도록 공정 무역 거래에 직접 뛰어들었다. 농민들이 가족과 함께 먹을 음식, 깨끗한 물, 옷을 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는 커피를 제대로 잘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
세계적인 커피 기업인 크래프트, 네슬레, 프록터&갬블 등은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스타벅스에 커피를 납품하던 시다모 지역, 처음으로 기근이 들어 파탄이 난 이 재배 농가의 현장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다.
한 상인은 "왜 에디오피아가 뉴욕 시세를 걱정해야 하냐"고 개탄한다. 카메라는 세계무역기구(WTO) 회담장 주변을 돌며 힘의 논리로 가난한 나라를 조종하는 불공정한 협상 방식과 내용을 고발한다. 유럽 연합과 미국은 빈곤이나 개발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기업의 권리만 떠들어대며 보조금 주겠다고 떠벌리고 있다.
그러나 개발 도상국은 원조가 아닌 공정한 무역 거래를 원한다. 그리고 세계 소비자들이 문제를 자각하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타데스는 새로운 상인과 시장을 찾아 세계 곳곳을 바쁘게 다니고 있다.
캐나다 / 다큐 / 낸시 니콜 / 상영시간 68분
캐나다의 퀘벡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성차별 금지를 법으로 명시한 곳이다. 캐나다 정부는 그 사실에 너무나 당당했지만 동성애에 관한 차별은 몇 년 전까지 여전히 존재해왔다. 는 그 차별에 맞서 싸웠던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기록의 모음이다.
이성애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들도 결혼에 대한 욕구가 있으며 나아가 자식을 키우고 사회 복지 혜택을 받길 원한다. 하지만 그들 앞에 있는 거대한 차별의 벽은 그들 자신은 물론 그들이 키우는 자식에게까지 그 그림자를 드리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동성애자 부부는 법적으로 아이들의 부모로 인정받지 못하며, 이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다.
물론 퀘벡의 동성애자 연인들도 이런 현실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캐나다는 동성애자가 애정을 표현하면서 살기에는 너무나도 척박한 국가였다. AIDS 차별 반대 집회는 반정부 시위와 같은 수준으로 다루어졌고, 심지어는 은밀하게 동성애자들을 죽이기까지 한 매정한 땅이었다. 이윽고 동성애자들은 그들의 소망과 의지를 캐나다의 민중에게 보이고, 독립적인 성적 취향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머나먼 길의 문을 열게 된다. 카메라는 그 과감하고 당찬 시도와 성공들을이루어낸 이들의 이야기와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법으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법과 사회로부터 사랑할 수 있는 한 인간으로 당당히 인정받은 것이다. 자신들의 손과 발로 이루어내고도 스스로 믿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사건을 만들어내게 한 힘은 바로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일본 / 다큐 / 고바야시 에우시 / 상영시간 46분
일본 미군 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주둔해 있다. 95년 미군 소녀 성폭행 사건으로 촉발된 주민들의 반기지 운동은 후텐마 기지 반환에 담긴 일본과 미국 정부의 또 다른 군사 재편 음모로 더욱 불을 당긴다. 한국의 평택 미군 기지 확장처럼, 겉으로는 미군 기지를 축소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오히려 더욱 강하고 침략적인 군대를 만들기 위한 계획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헤노코라는 아름다운 바다가 해상 기지가 된다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8년 동안 끈질기게 저항 운동을 벌여왔다.
지역 케이블TV에서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농업과 어업이 중심인 마을의 기지때문에 파괴되자 주민들이 끈질게 이에 맞서는 과정을 빠른 스케치로 담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의 생계 수단인 어업과 농업이 위협을 받고 소음과 쓰레기 등으로 고통받아온 오키나와 사람들은 '생명을 지키는 모임', '평화 시민 연락회' 등 시민 조직을 건설하고 헤노코 해상 시위, 주민 투표 등으로 일본과 미국 정부의 일방적 국방 정책에 맞서고 있다.
페루 / 다큐 / 에르네스토 카벨로스 / 상영시간 85분
태양 빛이 좋은 페루 남쪽의 농경 도시, 탐보그란데. 망고가 그들의 생산품이고 망고 재배는 그들 삶의 더할 나위 없는 낙이다. 하지만 이 평화의 땅에 굴삭기를 내세워 금광을 노리는 기업들이 앞다투어 진입한다. 영화는 이러한 기업을 반갑게 맞이하는 페루의 대통령을 보여 주면서 시작한다.
캐나다인인 감독이 그들의 모습을 세상에 알리려 카메라를 들었지만 그조차 의심하고 끝내는 저지하는 탐보그란데 사람들의 모습은 금광 산업의 만행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이제 쉽게 서양인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영화는 탐보그란데 침탈의 역사와 함께 그들을 그렇게 만든 정치인들의 행적을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 준다. 또한 카메라는 금광 산업이 그들이 힘들게 가꾸어 놓은 땅을 파괴하는 과정을 담으면서 그 피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도 환경학자와의 대화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돈에 눈이 먼 정부와 금을 밝히는 다국적 기업의 합작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점점 농사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주민들의 모습 또한 카메라에 담았다. 그곳의 주민들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투쟁을 시작했다. 낮에는 망고를 기르고 밤에는 정부와 기업에 맞서는 그들의 고통스러운 대항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 다큐 / 들소리 / 상영시간 30분
대추리, 도두리의 들판에 철조망이 쳐지고, 논밭이 파헤쳐지던 작년 5월을 기억한다. 태어나서 처음 봤던 그 넓은 들, 대추리 작업반장님의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던 그 들판이 좋아서 우리는 대추리, 도두리로 향했다. 그리고 그 너른 들판을 지키고 싶어서 아니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그렇게 '황새울 방송국 들소리'는 시작되었다.
황새울 방송국 들소리는 2006년 6월 19일에 첫 방송을 시작해서, 2007년 4월 24일 200회를 마지막으로 방송을 마쳤다. 들소리는 대중과 만나기 위한 인터넷 방송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위한 방송이었다. 우리가 방송을 시작했던 시점은 싸움이 점차 내리막을 그으며 내려오는 시기였다. 몇 번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방송을 하면서도 '우리가질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었고, 촛불 행사에서 방송을 틀었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노곤한 일상이 촛불 행사에서 우리 방송을 보는 그 10분 남짓한 시간만이라도 기쁨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우리는 슬퍼도 즐거운 척 했고, 애써 아프지 않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너무나 힘들어하는 주민들 앞에서 "우리도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계속 그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많이 아팠다고, 남몰래 많이많이 울었다고, 많이 많이 울어서 눈물이 다 말라버릴 것 같기도 한데 참 이상하게도 눈물은 잘 안 말랐다. 우리는 기록을 하는 사람이고, 들소리 활동가이고, 지킴이인 것도 맞지만 그 무엇보다 우리는 그냥 대추리, 도두리 때문에 그렇게도 많이 아프던 사람들이라고 그냥 그렇게 말하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다큐'라는 이름으로 여러 사람 앞에 선보이는 이 부끄러운 영상은 말하자면 그냥 '우리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