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울림 5호 "포스터에 담긴 이야기"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08/05/23
영화제 공지
인권영화제 심(심의를)심(심의)하다?
'표현의 자유 19조 위원회'의 공개심의위원이 되어 주세요!
제12회 인권영화제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개심의'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영상물 등급심의 제도에 대한 대안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세계인권선언 제19조에 명시된 정신에 따라 '표현의 자유 19조 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체적으로 자율적인 심의를 할 계획입니다.
우선 언론,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공개심의위원을 모집합니다. 모집 기간은 5월 13일(화)부터 5월 19일(월)까지입니다. 이렇게 공개 모집된 심의위원 10명과 추천을 통한 심의위원 9명이 '표현의 자유 19조 위원회'의 구성원이 될 것입니다. 추천을 통한 심의위원은 영화, 문화, 인권 등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됩니다. 직업, 성별, 연령대별로 다양한 시민들의 입장이 반영될 공모 심의위원에는, 남녀 각 1명씩 청소녀/청소년도 참여하게 됩니다.
그 후 5월 22일(목) 오후 7시에 '표현의 자유 19조 위원회'가 처음으로 모여서 '표현의 자유 19조 위원회' 운영 방안과 심의 기준, 방법 등에 대해서 공개토론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오는 5월 24일(토)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심의 장소에 모여 인권영화제 일부 상영작에 대한 공개심의에 들어갑니다. 또한 공개 시사와 토론을 통해서 정리된 의견은 인권영화제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제공될 것입니다.
○ 위원 공개 모집: 5월 13일(화)부터 5월 19일(월)까지
○ 위원회 1차 회의: 5월 22일(목) 오후 7시, 인권운동사랑방 회의실
○ 위원회 공개 시사와 심의: 5월 24일(토)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장소 추후 공지
상영시간표 확정
장소는 마로니에 공원과 미디액트 대강의실
장소 | 상영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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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마로니에 공원 | 20:00 Favela Rising / 21:30 국가 보호가 필요하다 |
5월 31일 마로니에 공원 | 20:00 Health for Sale / 21:10 슈퍼맨의 하루, Out of balance |
5월 31일 미디액트 | 11:00 필승 ver 2.0 연영석 / 13:00 세리와 하르 / 15:10 무죄 / 16:50 Favela Rising |
6월 1일 마로니에 공원 | 20:00 Bridge over the Wadi, 오월상생 / 21:30 전장에서 나는 |
6월 1일 미디액트 | 11:00 진옥언니 학교가다 / 12:30 길 / 14:20 안녕! 허대짜수짜님 / 16:10 Election Day / 17:50 Remains |
6월 2일 마로니에 공원 | 20:00 잘 있어요 이젠, 밥, 마야 거르츄 / 21:00 Gevald, You should have the body / 21:40 No place for you at this work place |
6월 3일 마로니에 공원 | 20:00 거리에서 / 21:40 천막 |
6월 4일 마로니에 공원 | 20:00 Colegiales, People's Assembly / 21:10 War on Democracy |
6월 5일 마로니에 공원 | 20:00 Kyrill. From the army of lost soldiers, Afroband / 20:30 Ironeaters / 22:00 폐막식 |
기획
포스터에 담긴 이야기
모여라~ 살바한테 포스터 얘기 듣자
인권영화제의 얼굴, '포스터'가 단장을 마치고 우리 앞에 섰다. '와, 예쁘다'는 탄성들이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꽃' = '아름답다'는 상투적 연결어가 떠올랐던 걸까. 그렇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그리 예쁘기만 한 건 아닌데... 포스터를 그린 홍보팀의 자원활동가 살바달리(최조윤정, 이하 살바로 부르기로 한다)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자.
살바는 이번 인권영화제 거리 상영(마로니에 공원)으로 결정되기까지의 전과정을 지켜봤다. 심의에서 상영등급을 받지 않은 영화는 상영관에 걸릴 수 없다기에 거리로 나서기로 했으나, 서울시청이나 관할구청이 거리상영을 쉬이 허락하지 않아 적당한 거리를 찾아 헤매야 했다. 그러는 동안 '하는 거 봐서 허가를 내 주겠다'고 어르는 소리도 들어야했다. 이런 갑갑한 과정이 포스터에 나타나야 했다.
우선 홍보팀에서 회의를 갖는다. 그림은 살바가 그린다. 두번의 수정을 해서 탄생한 이미지라고 한다. 손에 들린 가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현 심의제도의 잣대로 재단당하는 인권영화제의 상황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 물론 거리로 나왔기에 아직 잘려서는 안 되지만 또 언제든 잘릴 수 있는 상황도 알 수 있다.
가만히 보니 이번에는 독특한 식물 모양이 눈에 띈다. 잘 보시라. 얼핏 사람이 보일지도 모른다. 살바는 '양성구유'에 관심이 많다.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대립적인 면을 결합시킬 수 있는 개념이 '양성구유'라고 한다면 살바는 모든 사물 안에서 이를 발견한다. 주전자라는 사물은 물을 담기도 하지만 쏟아내기도 하니까. 일면 모순적이기도 한 이런 결합을 추상 없이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완성된 결과를 놓고 얘기를 하는 건 그나마 편하다. 하지만 두 번의 수정을 거친 세 번째 이미지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수작업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컴퓨터작업과 달리 수작업은 그림과 모종의 인격적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그 관계를 두 번이나 절단해야 했던 살바, 힘들었을 것이다. 정말 그랬단다. 회의가 열렸을 때, 친구는 마구 짓이겨졌다. '이 부분은 너무 잔인하다, 저 부분은 너무 패배적이다' 말을 듣는 것 자체가 피곤해서 지쳤단다. 포스터 제작에 왜 참여했나하는 후회부터 시작해 온갖 회의가 밀려왔다. '얼마나 고생해서 그린 건데... 그럴 거면 니들이 그리든가!' 화가 나서 외쳤다, 속으로만. 턱까지 차오르는 말은 속으로만 외치고 끝에 가서 뱉는 말은 '다시 그려 보겠다'였다. 개인 그림이 아니라 인권영화제 그림이니까. 틀린 말들을 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포스터는 다듬어지고 나아졌다.
잠깐 살바의 수작업 과정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야겠다. 먼저 스케치를 한다. 포스터 크기의 나무판에 한지를 붙이고 캔버스를 대신할 밑작업을 한다. 여기에 스케치를 옮긴 후, 윤곽만 남기고 다시 지운 다음 채색을 한다. 이것을 사진으로 찍으면 포스터가 된다는 말씀.
사실 살바에게 회의과정은 심의였다. 하지만 이들의 심의에는 소통과 합의, 그리고 공감이 있었다. 하여 '살바의 목소리'가 작품 속에 그대로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헉. 근데 '가위든 손'이 위협을 가하고 있다. '살바의 목소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학교 어딘가, 거리 어딘가에 포스터가 걸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 포스터를 보고 살바의 그림처럼, 지켜야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러 마로니에 공원에 하나 둘 사람이 모이는 일만 남았다.
감독을 만나다②『길』의 김준호 감독
'정의이기 때문에 이 길을 갔던' 대추리 사람들
2006년 제 10회 인권영화제의 마지막 스크린은 평택 대추리의 황새울 들녁에 걸렸었다. 국가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그대로 드러낸 평택미군기지이전과정, 그 자리에는 늘 카메라로 대추리의 소식을 기록하는 감독들이 있었다. 올해 인권영화제에서는 대추리를 지키는 방효태 할아버지를 곁에서 촬영하면서 최후의 대추리 사람들과 임시이주 상황을 그려낸, 김준호 감독의 '길'이 상영된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연륜과 열정이 묻어나는 신림동의 '푸른영상' 사무실에서, 울림은 김준호 감독을 만났다.
'길'이 첫 작품이신데, 대추리 이야기를 찍게 되신 계기가 있다면요?
2006년 3, 4월에 원래 푸른영상에서 대추리 관련 영상을 찍고 계시는 정일건 감독 촬영을 도와주러 한번 갔었어요. 그때가 에 직접 씨를 뿌릴 때였어요. 워낙 사람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고, 저도 특별히 누구랑 얘기하는 일 없이 왔다갔다 했었어요. 그때는 대추 초등학교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5월 4일 행정대집행 때 촬영하러 갔었어요. 그 때 여기 문제들이 심각한 거구나 하고 느꼈어요. 여기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몰랐었는데, 그날이 워낙 전쟁 같은 날이라서... '우리 나라에 이런 일이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리고 다시 마을로 들어갔죠. 촬영을 하러 가게 된 뒤에는, 거기서 자고 그랬어요.
방효태 할아버지가 영화에서 가장 비중있게 등장하고 계세요. 할아버지와 특별히 친하셨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친해지게 되셨나요?
원래는 푸른영상 수습작으로 찍으려고 한 거예요. 5월 4일 이후 검문 때문에 마을에 들어가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 때문에 거기에서 살아야 했어요. 일주일 중 5일은 대추리에, 이틀은 서울에 있었어요. 아는 지킴이 형 집에 얹혀 살았죠. 할아버지가 그 집 옆집에 사셨어요. 할아버지를 자주 마주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가 일을 워낙 열심히 하시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를 많이 찍게 되었죠.
대추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미군기지이전만 없었으면 정치와는 전혀 무관하게 사셨을 것 같아요. 어찌보면 역사의 소용돌이에 놓여서 범법자가 되셨는데, 주민들의 분노가 매우 컸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 미국기지확장이 된다 했을 때 마을 주민들이 투쟁을 했었죠. 점점 아무리 얘기를 해도 받아주지도 않고, 우리와 먼저 얘기하고 사업을 진행시켜라 이렇게 말을 해도 거들떠도 안보고... 이렇게 점점 분노가 쌓였죠. 순식간에 토지수용위원회에서 공탁이 되고, 주민들은 범법자가 된 거예요. 법의 논리와 맹점이 그냥 그러난 거예요. 힘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법인데, 막상 자기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는... 총 안쏘고 사람 죽이는 거죠.
9,24평화대행진 하기 전에 전국을 순회했던 적이 있어요. 저는 카메라를 들고 따라갔고, 일반시민 인터뷰를 하면, '아무리 그래도 정부와 싸움이 되느냐' 이런 반응이 많았어요. 주민들도, 지킴이들도 알고 있어요. 그래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거죠. 내 땅 가져가고, 내 집 가져가는데, 그래도 어떻게 보상해주고 가져가라 하겠어요. 승패는 중요한 게 아니었던 거죠.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정의이기 때문에 이 길을 간다.'라고...할아버지가 늘상 술 드시면 똑같이 하시는 말씀이세요.
영화를 보면 할아버지가 계속 소주를 권하시는데, 술은 잘 하시나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거기선 마셔도 안 취했어요. 왜냐면 땀을 빼니까... 서울에서는 작은 잔에 마시면 머리아픈데, 거기서는 큰 잔에 들이키지만 쭉 들이키고 나면 좋아요. 취해도 그냥 들에 쓰러져서 자면 돼요.
작품이 특별히 영상미가 있다고 느껴졌는데요?
제가 찍은 게 거의 할아버지가 나올 때고요. 풀샷이나 이런 거는 일건이 형이 찍었어요. 제가 의도한 것 보다는, 저는 이것을 기획하고 찍지 않았어요. 할아버지나 주민들이 만든 거죠. 제가 찍으면서 '이 장면을 이렇게 써야겠다' 하고 찍은 거는 없어요. 카메라 대고 있으면 비행기가 지나가고, 할아버지가 일하시고. 아마 보시면서도 특별한 구성 같은 것을 찾기 힘드실 거예요. 구성이나 기획이나 촬영이나 제가 의도한대로 된 것은 없어요. 주민들이 만든 화면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맞아요.
대추리 최근 소식이 있다면요?
임시거주하고 계시죠. 지킴이들이 모여서 그 곳에 종종 가요.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하기 전에, 영화 '길'도 주민들께 먼저 상영했었어요. 방효태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병원 모시고 가느라 못 오셨어요. 노트북으로 보여드리려니 화면이 너무 작고, 서울은 안 올라오려고 하시고...
김준호 감독과 인터뷰를 마치고 인권운동사랑방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촉촉히 봄비가 내렸다. 원래대로라면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어야 할 대추리 들판에, 올해에는 포크레인 소리와 트럭 소리만 오갈 것이다. 김준호 감독은 같은 땅이라고 해도 도시와 대추리에서 그 의미가 얼마나 다른지 강조했다. 손수 집을 짓고 가꾸어 온 농민들에게는 딴데로 이사간다는 게 의미가 다르다고. 그 밭에서 얼마를 얻을 수 있을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성취감으로서 일 자체가 몸에 익어있어 땅과 한몸이 되어서 자연의 순리대로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삶의 일부인 땅을 지키기 위해, '정의이기 때문에 이 길을 갔던' 대추리 사람들. 그들과 함께했던 '범법의 기억'을 인권영화제가 열리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다시 한번 되살리고 싶다.
상영작 리뷰
무죄(김희철/ 2007/ 60'/ 다큐)
누군가 내 눈을 가리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어느 어두운 지하실이다. 평범한 농가에서 흔하디 흔한 쟁기와 고물 라디오, 수첩들이 책상 위에 놓여있다. 건장한 사내가 말한다, 뭐 생각나는 거 없냐고. 사실대로 불라고.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모른다고 답한다. 그러자 주먹질, 발길질이 이어진다. 건장한 사내가 또 말한다. 잘 생각해보라고. 진실을 말하라고. 난 또 답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게 진실이라고. 그러자 수건을 뒤집어 씌운다. 고춧가루를 붓는다. 진실을 말할 때마다 고문은 더욱 가혹해진다. 64시간 고문이 지속되기도 한다. 무슨 약물주사를 내 팔에 놓기도 한다. 정신이 든 어느 날 나는 거짓말을 해본다. 그 라디오로 북한과 정보를 주고받았다고. 그러자 신기하게도 고문이 멈췄고 그들이 내 말을 경청하기 시작한다. 이에 고무된 나는 계속 이야기를 지어낸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대로. 증거인멸을 위해 쟁기로 라디오를 부수고 산기슭에 가서 그것을 묻었으며 북한과 계속 접촉하고 있었다고. 결국 고문에서 해방된다. 지장을 찍고 창살 안에 갇힌다. 반복되는 하루를 살고 세상으로 꺼내진다. 18년이 지나있다.
꿈. 사실 이 꿈은 그 누구의 꿈도 아니다. 어떤 이들의 현실이었다, 악몽 같은. 영화 속에서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은 그 악몽을 증언한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고문이 시작되었기에 이야기를 꾸며낼 수밖에 없었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이들에게 남긴 생채기는 너무도 깊다. 그래서 기억을 꺼내 증언을 하는 일이 쉽지 않다. 눈물은 자주 무겁게 떨어졌고, 시선은 오랫동안 초점 없이 허공에 던져졌다.
어떤 이는 '사랑하고 싶다'고 절규했다. 행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무죄'를 판결하는 일보다 사랑할 수 있는 힘이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 그들에게 더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피해자들은 '무죄' 판결을 원한다. 이들에게 '무죄'는 당연하다. 다만 행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무죄'를 논하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와디, 다리를 건너 Bridge over the Wadi(Barak heymann& Tomer Heymann/이스라엘/2006/55'/다큐)
'와디, 다리를 건너(Bridge over the Wadi)'. 이것은 학교의 이름이다. 아랍의 와디 아라라는 지역에, 유대인 학부모들과 아랍인 학부모들이 두 개의 언어를 쓰는 학교를 설립했다. 오랜 시간에 걸친 분쟁의 산물인 적개심을 아이들이 그대로 물려받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와디, 다리를 건너 학교'를 만든 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아랍인 교사와 유대인 교사가 함께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두 개의 언어로 하나의 관점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아이들이 각자의 집에서 배우고 있는 역사와 전통은 다른 한 쪽의 신념과 직접적으로 충돌한다. 유대인 부모는 학교에서 알라에게 절하는 법을 배워온 아이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고, 아랍인 부모는 유대인 명절 '하누카'때에 '우리는 어둠을 몰아내러 왔다'고 노래하는 아이를 보고 이렇게 반문한다. "누가 누구에게 온 것이며, 그 어둠은 어떤 어둠인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를 미워하도록 교육받고, 유대인 아이는 '빼앗은 땅에서 살고 있다'는 몹쓸 원죄 같은 것을 갖기 쉽다. 말하자면 '벽을 넘어서' 학교는, 죄책감도 차별도 없는 상호존중의 균형을 찾기 위해 비틀거리고 있는 셈이다. 이 비틀거리기의 과정은, 유대인이 전반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취할 수 있는 공평한 관점이란 무엇일까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교사들은 유대인의 독립기념일을 얘기할 때, 아랍인들이 무력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날이라는 것 역시 설명해야하지만 이로 인해 아이들이 죄책감을 가져서도 안된다는 어려움을 겪는다. '다른 사람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모든 걸 끊임없이 미화시켜야 하는 것 같다'는 한 아랍인 선생의 눈물은 이 균형잡기의 지난함을 보여준다.
'와디, 다리를 건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또래의 한국 아이들과 비교해볼 때 전쟁과 군대에 대해서 훨씬 상세히 알고 있고, 언젠가는 자신이 군대에 가게 되리란 사실도 알고 있다. 한 아이가 "네가 우리 집에 폭탄을 던지면 나도 너네 집에 가서 폭탄을 던질 거야."라고 말하자 어떤 아이는 "난 누구에게도 폭탄 같은 거 던지지 않는 모임에 들 거야."라고 한다. 여기에 또 다른 한 아이는 "그건 지휘관이 선택하는 것이지, 우리는 아무 결정권도 없다"고 응수한다. 유대인들이 아랍인들을 죽이는 불행한 미래를 또래의 일상적 대화인양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다. 그러나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무조건적인 분노를 학습하지 않는다는 것, 실체가 없는 적을 상상하지 않는다는 것, 아랍인 친구와 유대인 친구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적인 미래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와디, 다리를 건너 학교'가, 보다 평등하게, 평화를 바라보는 지점에 착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