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인권영화제 뉴스레터 울림 3호] 14회 인권영화제 날짜,장소 확정!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0/04/08
영화제 소식
국내작 소개
조금은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 0.39
임덕윤/ 2009/ DVcam/ 환타지 다큐멘터리/ 33분/ 컬러+흑백 ☞'감독 인터뷰 보러가기
장애인으로 사는 삶은 정말 불행한 걸까? 덕윤은 일주일에 3일, 병원에서 투석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중도시각장애인이다. 투석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병원 앞에서 현기증을 느낀 덕윤 곁으로 마치 뱀 한 마리가 다가오듯 낯선 사람이 다가와 그를 부축한다. 놀 란 덕윤은 '다음부터 시각장애인을 도와주실 때에는 인기척을 해줄 것'을 부탁한다. 감사의 말과 함께. 도움의 손길이 공포로 느껴지는 이 불편한 순간을 통해 시각장애인 감독은 비장애인들에게 슬며시 말을 걸어온다. 장애인을 대할 때 불쌍하다고 무작정 도움을 주기 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달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덕윤은 보이스스캐너를 이용해 즉석 미역국을 끓여 밥을 먹고 책을 보고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만나 새로 구상 중인 영화 이야기를 나눈다. 장애는 이제 그에게 있어 조금 불편하지만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 일상이 되어있다. 또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보여지는 시각장애인 감독 특유의 영화적 상상력은 가 비장애인 관객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싶어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감독 인터뷰 전문은 울림 맨 밑단에 있습니다.)
해외작 소개
Fighting the Silence
Ilse & Femke van Velzen/ 네덜란드/ 2007/ 다큐멘터리/ DigiBeta/ 53min/ 컬러
☞'Fighting the Silence'예고편 영상 보러가기
콩고에서 성폭행은 금기시하는 주제입니다. 피해 여성들은 굴욕과 따돌림, 소외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고통 받습니다. 그들은 종종 남편에게 버림을 받거나, 가해자를 부추겼다거나 간통을 했다며 이웃 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안정이나 희망 따윈 없습니다. 그들이 이해와 도움의 손길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정작 사회는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Fighting the Silence"는 성폭행 가해자를 벌하기 보다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힘겹게 싸우는 콩고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성을 열등한 존재로, 성폭행에 대한 논의 자체를 꺼리는 문화 속에서 성폭행 피해자들의 고통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영화는 가족이나 지역사회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것이 두려워 고통을 숨기고 침묵하는 다른 수천 명의 생존자와 그 가족들의 목소리를 찾 아주었습니다.
국제 여러 영화제 상영을 통해서 "Fighting the Silence"는 많은 서양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감독 Ilse 와 Femke van Velzen는 자신들의 작품이 무엇보다 성폭행에 의해 영향을 받은 콩고 국민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이를 위해 '움직이는 상영관'을 만들어 2008년부터 콩코 남부 키부지역의 소도시를 돌아다니며 공공장소에서 영화를 상영해오고 있습니다. 콩고에서 성폭력피해자를 위해 일해 온 다양한 단체 들도 감독들과 손을 잡고 "Fighting the Silence"를 상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콩고 사회에 잘 전달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울림
재미있는(?) 영화제 '개그돌'
어울림 해설
인권영화제에는 자칭 '개그돌' 3인방(H,J,G)이 있답니다.
H 왈: 형을 엄청 좋아하는 동생은? 형광펜!!
다른 사람들은 썰렁하다며 외면하고 싫어하지만
J와 G는 '웃기다'며 서로 좋아하네요.
J: 하하하!! 완전 웃겨!!
G: 대박!! 큭큭 배 아파!!
결국엔, 셋만 놀았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J: 아기가 태어나면 왜 엉덩이를 때리게?
H: 혹시... 생일빵?
하하하하하 하~~
주위의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어이없는 개그를 날리는 '개그돌' 3인방.
그래도 항상 즐거운 인권영화제입니다!
만든 이: 정윤
1984
어두운 CCTV 체험기
편집자 주: 는 전체주의 사회를 경고한 조지 오웰의 소설입니다. 우리 일상 속의 1984는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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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설문조사를 한 게. 말로는 학교의 주인이라면서 언제나 학교의 정책 에 수동적으로 따라가게 하던 우리들에게 의견을 묻다니 어찌된 일인가 했다. 교내 CCTV 설치에 관한 설문지였다.
'CCTV설치는 인권침해를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식의 내용으로 시작하던 유치한 설문 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을 당연하다는 듯 전제로 하던 그 설문지는 교내 CCTV 설치에 찬성하는지 또는 반대하는지를 묻고, 만약 반대한다면 반대하는 이유를 쓰라고 했다.(찬성하는 경우엔 왜 찬성하는지 이유를 묻 지 않았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인권침해 소지를 근거로 문제제기를 할 테지만, 이미 전제에서 그러한 논의를 막아놓은 상황. 또한 찬성할 경우는 그 이유를 묻지 않고 반대의 경우에만 이유를 물음으로써, 반대 측이 찬성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이유를 해명해야만 하는 논의 구도. CCTV설치를 추진하는 선생들의 얄궂은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는 설문지였다.
그렇게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CCTV설치 에 동의하는 사람이 과반수였고 교실과 복도를 제외한 학교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1년 후, 내가 3학년이 되던 해에 같은 설문지가 다시 한번 돌려졌다. 이번엔 복도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겠다는 것이었다. 연이은 교내 도난 사건 때문이란다. 학생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학교 측의 태도에 너무도 화가 났다. 물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또한 물건을 훔친 학생을 꾸짖을 필요도 있다. 허나 이것은 잘못을 저지른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지, 범죄자로 낙인찍고자 함이 아니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이 올바른 인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보다는 , 모든 학생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감시받아야만 하는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학우들의 반응이었다. 우리들 사이에는 불신이 팽배해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내 물 건을 훔쳐갔을지도 또는 훔쳐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불신과 의심이 팽배하고 서로를 감시하는 공간. 10여 년간 받아온 제도권 교육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그러한 것들뿐이었는지, 또는 경쟁만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제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스스로 '야만'을 학습해야만 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검고 탁한 것들이 도난 사건을 계기로 실체를 드 러내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설문 조사는 이루어졌고 그 결과 복도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그렇게 야만스러운 곳에서 지냈다. 그리고 나의 후배들, 후배의 후배들은 기계장치의 감시 와 옆 친구의 감시를 받으며 또는 감시를 하며 그렇게 지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지낼 것이다. CCTV가 설치되기는 쉬워도 한번 설치되고 나면 철거되기는 매우 어렵다는 한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을 찌른다. 못난 선배들 때문에 고생하는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지낸다.
감시 권하는 사회
CCTV에 대한 설치 논란이 한창 뜨거운 감자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논란은 점차 수그러들고 있고, 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과 범죄 예방에 탁월하다는 주장이 팽팽하던 충돌은 어쩌면 케케묵은 논쟁처럼 들리기도 합 니다.
사회가 흉흉해지면서 사람들은 더욱 더 안전과 범죄 예방을 원합니다. 그래서인지 악질의 범죄가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의 CCTV 설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젠 동네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도 제법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익숙해진다는 것만큼 경계해야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CCTV의 속성이 '감시'라는 점에서 아직 CCTV에 대한 불쾌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몇 년 전, 제가 보습학원을 다닐 때 학원에는 자율학습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시간은 '자율'학습시간이라기보다는 '원격 감시'의 학습 시간이었습니다. 교실에 설치되어있는 CCTV를 통해서 학원의 자습 감독 선생님이 교실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떠들기라도 하면 스피커를 통해서 선생님의 호통이 들려올 정도였습니다. 학원의 관리실에 가서 각 교실의 상황이 CCTV로 보이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데 정말 빅브라더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학원은 이 시설을 자랑으로 생각해서 중요한 홍보수단으로 삼았고, 학부모들도 관리가 엄격한, 체계적인 학원으로 신뢰했습니다.
학원의 CCTV, 길 거리의 CCTV, 학교의 CCTV.......처음엔 인권침해를 고민하여 조심스럽게 건의되던 CCTV설치가 그냥 기계 하나 늘리는 정도로 쉽게 치부되는 날이 올까 두렵습니다. 물론, 범죄의 사각지대에 CCTV를 설치하는 일이 때로는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범죄를 막고 안전을 지켜준다는 맹목적인 믿음 그 자체가 우리 사회를 CCTV 권하는 사회로 만드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자원활동가 편지
익숙해 지지 말아야할 것들에 대한 익숙함
언제 그렇지 않은 적이 있기는 했으랴만 요즘 나라가 참 시끄럽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짧은 시간동안 너무도 많은 죽음들을 접했습니다. 법정 스님의 입적, 천안함 침몰, 최진영 씨의 자살, 삼성반도체 박지연 씨 까지. 많은 국민들이 그 소식들에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줄로 압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무감각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백컨대 사실 저는, 법정스님의 입적 보다 무소유가 비싼 값에 거래된다는 사실에 더 흥미가 생겼습니다. 사실 저는, 차가운 바다 속 병사들의 생사여부보다 소위 말하는 '음모론'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사실 저는, 최진영 씨의 죽음이 안타 깝기보다 남매의 기구한 인생사를 다룬 가십성 기사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사실 저는, 박지연 씨의 억울한 죽음에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역시 삼성엔 못 당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제가 나쁜 사람이라 그런 걸까요? 저만 감정이 메말라 버린 걸까요? 차라리 그렇다면 좋겠습니다. 물론, 잘못된 사회현상엔 비판이 필요합니다. 모호한 사고원인은 꼭 밝혀져 유가족들이 더 억울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타인의 죽음에 너무 무감각해진 것은 아닌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그분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것만큼 무 서운 게 있을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죽음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요. 3월 한 달간 이 정도였는데 '잔인한 달' 4월은 또 어떤 잔인함으로 우리를 괴롭힐까요.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고요
이번 주는 내내 야근에 시달렸다. 당연히, 퇴근시간 6시 반을 훌쩍 넘어 10시, 11시가 되어서야 사무실을 나섰다. 그것도 집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을 한아름 안고. 덕분에 계획했던 개인적인 일정도 전면 취소해야 했음은 물론이요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즐겨야할 프라이데이나잇도 워킹나잇으로 전락했다. ㅠ
그런데 야근수당은커녕, 5천 원짜리 저녁 한 끼도 감사합니다 하며 먹어야 했다.
나는 생각했다. - 나 사람 맞지?
이것은 부당합니다. 직원들이 소화할 수 없는 양의 일을 안겨주시고는 그것을 다 못하면 능력부족 운운하면서 야근을 당연시하는 행태를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일만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여섯시 반 입니다. 퇴근하겠습니다!
라고 나는 말 할 수 없었다. '반역죄인'이 되기는 무서웠으니까.
대한민국 국민 중에 입사 시 약속한 퇴근시간에 당당하게 "퇴근하겠 습니다"를 외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용기 내어 그런 말을 할 지 언정, 의지가 약하다느니, 우리 땐 안 그랬다느니, 자기 생각만 한다느니 끝도 없는 욕을 들어먹을 게 뻔하다. 제 시간 퇴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 두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 넘기는 참 이상하고 요사스러운 문제다. 기업의 대표들이 들으면 놀라자빠질 망언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좀 놀아도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주5일제 시행 초기에 우리는 얼마나 불안했는가? 경쟁력이 저하되고 국제사회에서 도태당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덕분에 관광과 레저산업의 부흥을 가져왔다. 주5일만 일해도, 세상은 자알- 돌아가고 있다. 일은 일이다. 일이 곧 생활의 모든 것 이 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지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개발과 성장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던 시절은 이제 갔다. 도대체 국민이 몇 킬로미터짜리 마라톤을 계속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인가? 이제는 숨 좀 돌리며 세상 구석구 석을 돌아봐도 괜찮을 때이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가치들이 숨어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소통들을 필요로 하는지, 우리가 그간 철저히 무시했던 정서적 가치들을 돌아볼 수 있게 국민들을 놔 주는 것이 대한민국을 도태시 키는 일이 되진 않는다.
'미친 듯이 일해서'사회적 성공과 물질적 이익을 얻어야만 사람 구실하는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 미친 노동집착증에 빠진 사회를 살려주길 바란다. 일 말고, 우리는 봐야할 것이 너무나 많다. 기계가 아닌, 사람 사는 세상 아니겠는가.
지난 호 독자의견
정예지 님
이미 조금 지난 일이 되어버린 쌍용자동차 이야기, 사실 언론만큼의 관심만 보였을 뿐 또 하나의 노사분쟁이라고만 여겼던 일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읽으며, 지나치게 상황의 비극에 치우치지 않고 사회의 고질적인 자본 과 노동의 문제에 대해 인간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짚어주고 있는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인권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는 감독님의 말씀이 가슴에 남습니다. 영화제가 더욱 기다려집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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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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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인터뷰 전문
임덕윤 감독
중도시각장애인 감독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많이 불편한 중도 시각장애인 임덕윤 감독입니다. 많이 불편하고 많이 불행한. (하하하) 저는 요즘 들어 "세상이 보 이지 않는 건 조금 불편한 일이지만 꿈이 보이지 않는 건 불행한 일입니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지, 건강을 잃어보니 정말 많은 걸 잃는 것입니다. '돈을 잃는 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영화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가 건강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영화를 찍으면서 다시 안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건강에 관한, 시각장애인들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시각 장애를 영상으로 표현한 방식이 매우 신선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발상은 어떻게 시작이 된 건가요?
영상 표현 방식은, 일상 속에서 관찰을 통해 그려진 이미지들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제 경험과도 연관이 되는데, 만지면 보이고 느끼면 보이더라구요. 샤워를 할 때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샤워를 할 때 문득 비누가 보여요. 그래서 만지려 하지만 사라져버리죠. 나도 모르게 그 전에 비누가 있었던 위치를 기억하는 거죠. 지금도 앞에 있는 탁자를 보지는 못하지만, 만지기만 하면 생김새의 영상을 떠올릴 수가 있어요. 자신도 모르게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죠. 심지어 건너편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형태가 이미지화되어 나타나요.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고, 제가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는 연습을 은연중에 하는 거죠. 영화의 구성은 제 거의 100% 제 경험으로 채워진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영화가 말하고 자 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나요?
병원 앞, 낯선 한 사람이 저를 도와주려는 장면이 어쩌면 제가 이 영화를 공개하는 가장 큰 목적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하철 타는 게 겁날 때가 있습니다. 하루에 서 너 명 이 붙잡아요. 저는 불편하지 않은데. 말도 없이 덥썩덥썩 붙잡는 겁니다. 붙잡고 놀란 후 "도와줄까요" 소리가 들리는 거죠. 그건 공포에요. 요즘은 시민의식이 바뀌어서 깨어있기는 하지만, 방법을 모릅니다. 도움을 준다 고 주었지만 진정한 도움이 아닌 거죠. 제 영화를 보신 분들은 장애인분들을 도와드리기 전에 인기척을 먼저 내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을 알아달라는 거죠.
장애인차별법이나 장애인이동권법이니 만들어져도 사람들이 지키지 않고 모르면 소용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좀더 재미있게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짐으로써 의식이 차차 변화해나가길 기대하는 거죠.
제목 뒤에 붙는 숫자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요?
영화의 버젼을 뜻합니다. 제 영화는 성장하는 영화입니다. 촬영할 때도 찍고 싶은 걸 다 못 찍었습니다. 제 건강도 좋지 않았고요. 주말마다 장편영화를 찍고 있던 촬영기사의 스켸줄 문제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전문적인 스텝이 없었던 것도 한 몫했지요. 이렇듯 영화가 미성숙한 상태에서 출품이 되었지만,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아 첫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았습 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원(1)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계속 버젼을 높일 생각입니다.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완성본의 그림은 어떤가요?
제가 꼭 한 가지 찍고 싶은 그림은, 그동안은 화면이 조악하잖아요. 컴퓨터 그래픽도 그렇고. 친구에게 전화받는 장면 기억하시나요? 그 전에 지팡이를 짚고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번쩍하면서 겨울에서 따뜻한 봄으로,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흑백으로 진행이 되다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면 칼라가 되듯이, 세상이 깜깜했던 게 꽃이 피고 화려한 봄으로 바뀌는 거에요. 그러다가 갑자기 지팡이가 살아있는 듯 튀어나가요. 그리고는 제 앞에 떨어져 있죠. 살아있는 것처럼. 그 때는 제가 눈 뜬 사람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팡이와 함께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는 거죠. 이것은 단순한 지팡이가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인, 지팡이가 시각장애인들에게 눈이 되고 귀가 되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원(1)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영화가 작년부터 많은 영화제를 통해 알려졌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시각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걸 느꼈고, 당신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겠다.' 라는 반응이 주로 있었습니 다.
시각장애인들의 보다 편한 접근권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타 영화제에 가서 관람을 하다보면 지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접근권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요. 영화상영 시 볼 륨에 관한 문제 등 좀더 편하게 관람하기 위한 기술적 장치 혹은 교육이 아직까지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도 부족해요. 현실적인 문제도 있는 걸 알지만, 낯선 곳에 가서 그곳 상황에 익 숙해져야하는 시각장애인들로서는 불편한 게 사실이죠. 소수자 중에서도 소외 받는 소수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재미있게 세상을 바꾸기 위한, 감독님만의 목표가 있다면?
저는 안경을 써도 교정이 안 될 정도의 시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생활이 굉장히 힘들어요. 그 럼에도 제가 영화를 만드는 목적은, 비장애인들도 어려워 하는 영화라는 작업을 시각장애인도 만들 수 있다라는 걸 알게 하기 위해서에요. 장애인들은 무엇이든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두려움이나 꺼려함을 갖고 있다고 봐요.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서 노출이 많이 되면, 그리고 저 또한 그렇게 되면 시각장애인도 똑같이 할 수 있다라는 의식이 보편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장애인들도 여러가지 이유로 힘들잖아요. 힘들지 않으면 사람 인생이 아니죠. 이런 내용들을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장애인들을 어렵게만 바라보는 기존 매스컴과는 달리 말이죠.
인권영화제가 1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지지메시지 부탁합니다!
화이팅~ 화이또! (하하하)
* 인터뷰 질문과 기사의 분량을 고려하여 임의로 편집한 부분이 있습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