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영화제 뉴스레터 울림 108호] 내년 인권영화제 준비를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0/11/05
소식
[알릴 소식] 11월 12일 화기애애
11월 12일 금요일 7시 반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3층 보현교육실(종로 조계사 맞은편)에서 인권영화제 정기상영회 화기애애가 열립니다. 이날은 11월 11일~12일에 열리는 G20 마지막 날인 이날에 G20으로 강화된 신자유주의 경찰국가화에 대해 얘기해봅니다. 상영작은 입니다.
[알릴 소식] 12월 10일 화기애애 & 송년회
12월 10일 화기애애는 인권영화제 송년회와 함께 합니다~!! 아직까지 못 와보신 후원인분들! 이날 화기애애 & 송년회에 오셔서 2010년을 아련하게 돌아보고 2011년을 기운차게 준비해보아요~ 인권영화제도 2010년, 역시나 다사다난했네요. 거리상영 3년째, 인권영화제 15주년. 좋은 작품들. 고마운 사람들. 새롭게 찾아온 이, 멀리 떠난 이도 있었어요. 2010년 마지막 인권영화제 정기상영회 화기애애. 이날 인권영화제를 지지해주시는 많은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꼭 시간 비워두세요~
일시: 12월 10일 금요일 7시 반
장소: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3층 보현 교육실(종로 조계사 맞은편)
[알릴 소식] 15회 인권영화제 준비를 위한 해외출장
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일숙, 은진이 15회 인권영화제 준비를 위한 해외출장(11월16일~12월1일)을 다녀옵니다. 11월 17일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 참가합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해외인권영화제네트워크 멤버들과도 만나는 자리도 갖습니다. 15회 인권영화제에 상영될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나고 올 수 있길 바라며 영어의 압박에 울고 있는 은진을 위로해주세요ㅠ (일숙은 열심히 영어공부 중~)
[지난 소식] 10월 특별한 화기애애 - 다운로드 해적들 영화제
10월 화기애애는 다운로드 해적들과 만나는 특별한 자리를 가졌습니다. 지난 10월 18일 월요일 2시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가진 '다운로드 해적들 영화제'에서는 ,,,, 5편을 통해 현 지적재산권체제를 뜯어보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영화 상영 후에는 스웨덴 해적당 유럽의회 의원 아멜리아와 함께하는 토크쇼가 이어졌습니다. 저작권자의 배타적인 권리만 강화하는 현 저작권법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였습니다. 이날 상영된 작품은 우리도 해적이다 홈페이지(http://pirateparty.kr/)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인권영화 다시보기
문화독점자본에 고(告)함
노블 피어 리그(The League of Noble Peers)|영국·독일|2006|32분16초|다큐|한글자막
바야흐로 하이-테크놀로지의 시대가 도래했다. 언젠가부터 아이폰이라는 외래문물(?)이 들어오더니 국내의 대기업들도 비슷한 것들을 따라 만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너도 나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가하면, 심지어 상대방이 어느 곳에 있는지 그 위치까지 쉽게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신기하고도 무서운 세상이다.
20세기 말, 뉴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던 우리들과 우리들의 언니오빠들은 지금의 아이폰만큼이나, 또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신문물을 접했다. 바로 인터넷의 등장이다. 인터넷은 종래의 미디어와 달리, 수용자와 공급자의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다운로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터넷의 특성은 콘텐츠를 복제하고 공유하는 데도 매우 용이하였고, 그에 따라 대중음악, 영화 등의 콘텐츠가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롭게 흘러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어디에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있다. 바로 음반업계가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저작권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인터넷을 통한 복제는 아티스트들에게 피해를 입힌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들 말대로 인터넷을 통한 복제행위가 아티스트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백보 양보해서 그렇다고 해도 그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새롭게 등장한 테크놀로지 탓일까? 아니면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음악을 공유하는 대중들?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기술(technology)에 적응하지 못하는 띨띨한 음반업자들 때문일까?
19세기 초 영국에선 기계화로 인해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섬유기계를 파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음반업계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큰 차이점이 있다. 기계를 파괴한 사람들은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임에 반해, 자유롭게 흘러가는 인터넷 세상을 통제하려는 사람들은 돈을 지니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발언권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발전된 기술이 약자들을 자본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분명한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새로운 기술이 많은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면 분명히 바람직한 일이며,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여 문화 콘텐츠를 독점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에 따르면 대중문화산업계를 긴장하게 만드는 새로운 기술들은 계속해서 등장해왔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테이프 녹음기가 등장했을 때 그들은 지금과 비슷한 반응들을 보였고, 처음 비디오 녹화기가 등장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안돼,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또는 영화를) 복제할 수 있게 됐어!' 하지만 그들은 이내 다른 방법들을 고안해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며 발전된 기술에 적응해왔다. 복제를 하고 공유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이러한 행위들을 매우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이같이 자연스러운 행위를 통제하기보다는 새로운 방법들을 강구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그들에게 훨씬 유리할 것이다. 물론 그들은 카피레프트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대안을 내놓아봐.' 하지만 우리들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밥벌이를 걱정해 줄만큼 한가롭지 않다.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 그것은 우리들의 몫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의 몫이다.
수건 돌리기
'찰리 채플린'
소라가 수건을 여러개 놓아 두었네요. 개그철학, 기억에 남는 작품, 호야는 왜 착한 건가요(?)였죠. 어떤 수건을 고를까 하다가 수건 세 개를 묶어 보았습니다. 그러니 한 사람이 생각나는군요. '찰리 채플린'입니다. 억지로 끼워 맞춘 건 아니에요. 기억에 남는 영화중에 '모던 타임즈'와 '위대한 독재자'등 찰리 채플린의 작품들이 많고 그의 영화들을 보면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찰리는 늘 착한 인물이잖아요. 그리고 요건 좀 억지처럼 보일 수 있는데 찰리와
제 생일이 같습니다. 뭐 이런 이유로 이번 수건 돌리기는 '찰리 채플린'이 되었네요.
제가 찰리를 처음 만난 것은 흑백 TV 시절 간간히 돌려보던 채널 2번의 AFKN(주한미군방송)을 통해서 였습니다. 무성영화이니 영어를 못 알아들어도 내용은 대략 이해 가능했습니다. 당시에는 단편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자료화면으로 나오더군요. 그런데 그때는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 코미디 보다 '웃으면 복이와요'를 더 재미있게 보았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찰리 채플린의 영화는 저에겐 그저 코미디 였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다시 찰리를 만난 것은 '모던 타임즈'를 통해서 였습니다. 부연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현대자본주의 사회를 잘 꼬집었던 작품이었죠. 찰리가 컨베이어벨트의 톱니바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장면이나 우연히 시위대의 선두에 서게 된 찰리의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은 아직도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비슷한 시기에 보았던 '위대한 독재자'도 생각이 나네요. 당시 '5공 청문회' 정국이라 한국 사회와 오버랩 되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던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후 나온 '시티 라이트' '황금광 시대'는 아예 비디오 테이프를 구해서 몇 번씩 봤었네요. 그의 영화는 여전히 코미디였지만 이전에 보았던 영화들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뭐랄까요 웃기긴 한데 마음은 짠~한 그런 느낌이요. '황금광 시대'의 실업자 찰리는 구두를 삶아서 스테이크처럼 식사를 합니다. 그것도 맛있다는 듯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말입니다.
찰리는 이외에도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연기했습니다. '모던 타임즈'에서는 공장 노동자로, '위대한 독재자'에서는 이발사로, '시티 라이트'에서는 실업자로 말입니다. 주로 사회적 약자들이죠. 그들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연기하는 찰리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에겐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현실인 것이죠. 찰리는 현실 속 비극적인 상황을 영화 속 코미디로 치환시키며 사람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 이라구요. 비극적인 유년을 보냈던 찰리가 한 말이라 더욱 마음에 와 닿네요. 작년은 찰리 채플린이 태어난지 120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어쩌면 1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리도 달라진 것이 없는지...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이 여전히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음~ 다음 수건은 민지에게 돌립니다. 찰리가 살았던 120년 전에 태어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다면 어떤 사람과 어떤 영화를 가지고 진행을 하고 싶은지?
자원활동가 편지
꼭 필요한 곳에 우리의 관심과 정열을 쏟길
최근 뉴스를 접하면서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명이 달린 급하고 중요한 일보다는 수다에 그칠 일에 관심과 정열을 쏟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누리꾼들이 타블로의 학력과 국적 의혹에 관한 진상을 밝혀 달라는 수사를 요구하면서 검찰과 경찰을 바쁘게 하고 미디어가 이 일에 얼마나 많은 기사를 쏟았는가. 중학교 여교사가 남자 중학생과 연애를 한다는 뉴스가 나오자 어떻게 찾았는지 누리꾼들은 그 여교사의 얼굴과 남편얼굴을 인터넷에 전파시키기에 바빴다. 어디에도 이것은 한국을 뒤흔들 대단한 뉴스가 될 수 없다.
반면 한국의 미디어를 대서특필할 일은 사람들의 무반응 속에 별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는 1998년 이후 22명의 백혈병 및 림프종 환자가 발생해 이 중 10명이 숨졌다. 시민단체와 피해자 가족들은 생산과정에 사용된 발암성 물질이 발병 원인이라고 주장해왔다.
울산 현대미포조선의 정규직인 김석진씨는 2008년 그가 같이 일하고도 월급을 반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도와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이 일에 개입하자 동료들이 회사 기강을 문란케하여 안전사고 위험을 높인다며 그런 운동을 그만두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들은 30년 넘게 근무한 김씨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누군가의 불행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그 시간에 우리의 관심이 너무나도 필요한 일에 부지런함과 정열을 쏟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남편과 엄마 사진이 이유 없이 인터넷에 떠다니고, 누가 올린 악성 댓글 때문에 자살을 하는 일도 멈출 것이다.
특별기고
상처를 위무하며 세상에 저항하다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읽고
우리 몸의 중심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심장? 배꼽? 뇌? 모두 틀렸다. 우리 몸의 중심은 바로 가장 아픈 곳이다. 모든 신경이 그 곳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한 가운데는 바로 가장 아픈 곳이다. 그 중심에 언제나 오롯이 서서 시대와 정권의 탄압 속에 시를 읊는 '사람이 있다.' 거리의 시인, 현장의 시인, 송경동. 올해 초 용산 참사 희생자 장례식에서 쩌렁쩌렁 울려퍼지던 그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그의 시는 활자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향해 그렇게 소리치고 있다.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서.
"너는 물어보았니/ 강변 땅 위의 별인 조약돌에게/ 골재가 되고 싶으냐라고 물어보았니/ ...(중략)... / 삼성, 엘지, 대우, 현대건설에게 물어보았니/ 다국적 물 기업, 땅 값에 눈 먼 지주들/ 정권에 빌붙은 기생충 거머리들에게 물어보았니"
-「너는 누구에게 물어보았니」中
그의 두 번째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2009). 송경동은 급하게 변하는 시대만큼 사회 곳곳에 발빠르게 움직이며 시의 적절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시들 중 3부는 아예 투쟁 현장에 바치는 헌시(獻詩)다. 2006년 진압 경찰에게 뒷머리를 맞고 사망한 고(故) 하중근 열사, 고양에서 노점으로 붕어빵을 팔다 시청의 강압적 단속으로 나무에 목을 매단 고(故) 이근재씨, 2004년 WTO회담 저지 중 자결한 농민 이경해씨, 2007년 한미 FTA 반대 투쟁 중 분신한 가난한 택시운전사 허세욱 열사 등 세상의 아픔과 상처가 죽음으로 내몬 영혼들을 위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콜트․콜텍 노동자 투쟁, 용산 참사와 4대강 사업 반대 등 이 시대를 바쁘게 흐르다가 「촛불 연대기」에 아서는 말 그대로 이 시대 민중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박노해, 백무산의 시까지도 난 낯설었어. 이건 분명 우리의 이야기지만 우리 전부의 이야기는 아니다는 생각. 내가 만난 사회 하층민중들은 그렇게 전형적이지만은 않았어. 그렇게 희망차지만도 않았고, 순수하지만도 않았어. 오히려 수많은 갈등과 모순의 응집덩어리였지. 난 더 비루한 바닥으로 내려가 그런 사람들을 표현해보고 싶었어."
송경동 시인은 벌교에서 태어났다. 1991년 돈 3만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새끼목수로, 배관공으로, 용접공으로 떠돌았다. 그는 이 시절의 노동자 체험을 갉아먹으며 시를 쓰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이 노래하는 대상에 직접 다가가 결국 체화되어야만 시를 쓴다. 여느 지식인처럼 민중을 대상화하고 자신의 입을 닦는 것이 아니다. 실제의 그는 이토록 날카로운 시를 쓰는 사람답지 않게 어눌한 말투를 지니고 있다. 어렸을 적 이질을 앓았는데 익모초를 너무 많이 달여 먹어 이질은 나았지만 혀가 마비되었다고 한다. 눌변은 때로 달변보다 낫다. 달변가들만이 횡행하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그의 어눌한 말은 다음에 어떤 단어를 이야기할까 기대하게 한다. 가끔씩 청자가 적당한 낱말을 말해주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나오는 그의 언어는 청자가 생각한 차원을 넘어서는 놀라운 것들이다. 그는 시인이다.
그의 시가 직설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이라 하여 서정성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직접적인 설명과 연설보다 감각적 비유가 우리네 삶을 더욱 잘 표현하기도 한다.
"문득, 주름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마흔 넘다보니 나도 참 많은 주름이 졌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고여 있는/ 골도 있다 왜 그랬을까?/ 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첩첩한 고랑도 있다/ ...(중략)... /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수많은 아픔의 고랑과 슬픔의 이랑들을 모아/ 어떤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일 거라고/ 혼자 생각해보는 것이다"
- 「주름」 中
숨 가쁜 투쟁의 삶에도 사랑은 피어나고 인생에 대한 통찰이 존재한다. 시인만의 감각적 언어는 그만큼의 진솔한 체험과 세상의 아픔을 담아내서인지 독자에게 울림을 준다. 마흔의 나온 그의 첫 시집『꿀잠』보다도 시대와 인생의 안목이 깊어진 듯하다. 세상이 그만큼 깊어졌기 때문일까?
"이십대에는 미처 하지 못한 공부를 하고 싶었고, 삼십대에는 사람들 속에서 실천운동을 하며, 나도 누군가와 더불어 내 삶을 나누고 싶었지. 그리고 마흔이 되면 본격적으로 문학을 해봐야지 다짐했지."
그의 말에 따르면 본격적 문학의 길에 접어든지 4~5년이 되어가지만 그는 전보다 더 거리에 많이 보인다. 최근 송경동 시인은 기륭전자 장기농성장에서 포클레인 위에 올랐다가 떨어져 발목복합골절을 당했다. 전치 10주를 받았다. 노순택 사진가는 '송시인이 시를 쓰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라 평했다. 시대가 시인에게 영감을 주지만 시인의 삶은 여전히 시대에 저항한다. 시와 삶이 하나 된 사람이다.
그의 걸음은 느리다. 말도 느리다. 마흔 넷에 두 번째 시집이 나온 것처럼 그가 살아온 삶도 더디간다. 하지만 시인의 걸음은 바르다. 또박또박 걸음을 걷고 또박또박 시를 쓴다. 보르헤스는 "모든 작가는 자신의 선구자를 만든다."고 했다. 송경동 시인이 시대의 가시덤불에 새로운 길을 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울림 독자 여러분께
울림 독자 여러분, 이번 울림은 어땠나요? 기사에 대한 의견, 읽고 난 감상, 울림을 위한 조언 등이 있으면 메일(hrfilmfestival@empal.com)로 보내주세요. 독자 여러분들의 소중한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