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서울인권영화제 울림 4호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3/05/01
소식
인권영화 멍석 깔기
영화 속의 인권, 인권 속의 영화
2013년 5월 2일 목요일 인권재단 사람 다목적홀(2층)에서 '인권영화'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영화 속의 인권 14:00~16:00
사회: 황혜림(독립영화 프로듀서)
인권을 말하는 영화가 있다. 굳이 '인권영화'라 규정하지 않더라도, 영화가 인권을 담을 때, 영화는 인권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영화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인권감수성은 무엇인가?
(1) 서울인권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가 만난 인권영화
- 은진(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2) 타영화제 프로그래머: 인권영화 프로그램을 선정할 때 선정 기준
- 김영우(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
(3) 다큐멘터리 감독: 인권을 담아 영화를 만들 때 만나는 기대와 한계
- 오정훈(다큐멘터리 감독.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장)
(4) 인권활동가(또는 학자): 인권을 담은 영화가 가져야 할 인권 감수성
- 김영옥(여성학자.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5) 영화 속 이야기꾼/당사자: 당사자의 힘_대상화에 대한 문제 의식
- 정욜(영화 (이혁상 연출)_영화 속 이야기꾼)
인권 속의 영화 16:20~18:20
사회: 황혜림(독립영화 프로듀서)
서울인권영화제는 진보적이고 대중적인 인권운동을 위해 매년 인권영화를 상영한다. 그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세상의 변화를 위해 인권영화를 만들고, 인권영화를 상영하고, 인권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인권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우리는 인권운동을 위해 영화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1) 인권활동가: 인권운동으로서 인권영화의 역할과 기대
-김정아(인권재단 '사람' 사무처장)
(2) 영화감독: 인권운동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 제작자의 인권까지 (가제)
- 손경화 (다큐멘터리 제작자)
(3) 관객: 인권영화를 보는 이유, 인권영화가 갖는 힘
-이끼(관객)
(4) 영비법: 인권영화는 어떻게 상영되어야 하는가? (영비법 개정 문제)
-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18회 서울인권영화제 공식 포스터가 나왔습니다
올해 서울인권영화제의 포스터입니다.슬로건은 '이 땅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 입니다. 올해의 슬로건을 멋지게 표현해주신 한결님께 감사드립니다.
국내작 소개
그리고 싶은 것 The Big Picture
권효 KWON Hyo | 한국 Korea | 2012 | 다큐 | 98분 | HD | 컬러 | 16:9
2007년 여름, 그림책 작가인 권윤덕은 한국과 중국, 일본의 그림책 작가들과 함께 에 참여한다. 그녀는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그림책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동료 작가들의 뜨거운 지지 속에서 작업을 시작하지만, 그림을 그려나갈수록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상처가 권윤덕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한편 일본과 한국의 작가들은 그녀의 스케치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결국 일본측 출판사는 그녀의 그림책 출판을 연기한다. 그녀는 점점 지쳐가고, 그림책의 완성은 멀어져만 간다.
5월 25일(토) 14:10 상영
감독인터뷰
Q1. 먼저 감독님 소개를 부탁드려요.
A. 저는 다큐멘터리 만들고 있는 '권효'라고 하구요. 이번 인권영화제에서 그림책 작가 권윤덕 씨를 주인공으로 한 이란 작품을 만들었고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Q2. 감독님의 영화들이 전부 다큐멘터리인데 다큐멘터리란 장르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했어요. 딱히 역사학자가 되겠단 생각은 없이 역사가 좋아서 들어갔는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내가 하는 것들이 맞는 일인지 뭘 하고 살아야할까에 대한 고민. 군대 갔다 오면서 사회 비판적 활동을 하고 싶었고 거기엔 시민단체 및 운동가의 삶도 있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 저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독립다큐를 보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어요.(웃음) 솔직히 말하면 대학시절 디지털카메라가 유행했었는데도 카메라를 잡아본 적이 없었어요. 찍기보단 찍히는 편이었고 알아야 되는 것도 많아 보였고, 영화한다고 하면 특이하고 잘난 애들이 해야 할 것 같고, 저와 관계없다 생각했어요.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했고요. 이런 말하면 누워서 침 뱉기지만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냥 카메라 들고 찍으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이켜보면 생각이 없었죠. 배우다보니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어렵고 견고하며, 대중을 설득하는 예술을 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Q3. 주로 상업영화를 많이 보다가,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니까 다큐멘터리 찍는 과정상의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중간에 권 작가님의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것을 들으셨을 때 어떠셨나요?
A. 다른 다큐멘터리 감독 분들도 비슷하시겠지만, 가장 요구되는 자세가 듣는 거거든요. 그리고 두 번째가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거예요. 어떤 이야기를 하면 동영상을 통해 표정이라든지 몸짓 등 여러 가지가 보이는데 이런 것들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거예요. 주인공 개인사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정도의 예상을 하고는 갔지만, 막상 그걸 마주 했을 때 꽤나 당황했죠. 더군다나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리액션을 하고 싶은데 저의 리액션이 또 촬영되니까. 권 작가님이 이야기 한참 하시고 나서, "어 근데, 자기는 되게 반응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뭐 고충이랄 것 까진 아니고... 그런 면에서 예민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A. (안보영 프로듀서님) 그 인터뷰 하고 나서 회의를 한 번 해야 했던 게, 이야기를 알고 이 그림책 작업을 팔로잉하는 것이 저희가 그려오던 그림이었거든요. 를 그리는 과정에서 한국, 일본 오가며 그런 작품을 구성하고 완성해 나가는 부분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한테는 나름 결정적인 순간이 온 거예요. 개인사를 우회하면서 애초에 그려오던 그림대로 가야 되는 건지에 대한 의논들을 하게 되었고, 결론은 이 라는 그림책 만드는 과정과 권윤덕이라는 주인공이 작업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개인사를 우회하고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Q4. 영문 제목이 인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A. 다른 영화들도 비슷하지만 보통 원제목을 직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새롭게 짓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을 직역을 할까 생각도 했는데 주변에서 다 말려서 어떤 게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번역해주시는 분이 몇 가지 안을 제시하셨어요. 그 중에 가 있었어요. 단순히 크기가 큰 그림이 아니라 세상을 담는 그림이란 뜻으로 란 그림책이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걸 통해서 현재를 환기시키려는 뜻을 담고 있고, 그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니깐 그걸로 하자고 해서 결정이 났어요.
Q5. 에서 '성적인 내용과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 인해 아이들이 혼란을 겪을 것이다'라는 다른 사람들의 우려가 가장 핵심이 되어서 그림책 출판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들에게 내용을 전달했을 때 아이들은 그 우려가 무의미할 정도로 올곧고 명확하게 내용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가장 큰 반전이었고, 오히려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시선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을 실제로 겪으면서(특히나 아이들과 직접 만나 소감을 듣는 장면을 찍을 때) 감독님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셨는지 궁금합니다.
A. 어른들은 아이들은 이렇게 느낄 것이다, 규정을 짓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이 같은 경우는 모두들 아이들을 굉장히 사랑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개인 책을 만드시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본인들이 봤을 때 이게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 좀 적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을 하는 거고, 그게 어떤 작품의 수준이나 작가의 의도가 나쁘다고 해석한 건 아니었어요. 그러나 실제로 이제 아이들을 보면서 모니터링 해보니깐 정말 엉뚱하거나 전혀 생각하지 못한 대답들을 많이 했었고, 그 중엔 작가가 정말 이걸 알까? 이런 것까지도 포함이 됐던 거죠. 예를 들면 댕기가 있어요. 첫 장부터 끝까지 보면 꽃할머니가 머리에 댕기를 묶고 있어요. 이게 끝까지 놓치지 않고 꽃할머니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을 표현한 것이에요. 어른들은 왜 댕기를 계속 묶고 있는 건지 잘 못 보잖아요. 그런 감상을 보면 작가가 의도했던 거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Q6.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반일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면 '일본이 나쁘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감독님이 생각하시기에 위안부 문제를 바라볼 때 요구되는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정서적인 접근들 혹은 다른 프레임들로 이 문제를 놓고 본다면 그 본질을 자꾸 놓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를 예로 들어보면, 독일에서 전쟁을 일으키면 독일 대중이 환호하면 이상한 거고, 영국에서 참전 선언했을 때 영국 국민들이 환호하면 괜찮은 것인가 하는 질문도 요점을 드러내는 좋은 질문이 될 수 있겠네요.
그렇게 역사적으로 본질적인 부분들을 놓치다 보면 선과 악의 구분을 할 수밖에 없고, 대상을 계속 타자화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 프레임은 사실 쉽죠. 단순히 나쁜 놈이라는 혹은 적이라는 대상을 정해두고서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이오. 그런 프레임에 빠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 이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사실 위안부 단체들은 정서적인 접근의 프레임에 벗어난 지 오래에요. 애당초 시작부터 그랬고. 증오와 분노로서 위안부 문제를 접근하는 게 아니라 책임 있는 일본의 국가적인 사과와 배상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단추이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여성, 국가적인 성폭력, 가부장제 문제, 남성중심주의, 군대를 중심으로 한 군사문화와 여성과 인권을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얘기하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예요.
그래서 요구되는 자세는 사실 하나인 것 같아요. 수요 집회도 한 번 나가보시는 등, 이 문제에 대해 공부를 하실 필요가 있는데, '태평양 전쟁 시기에 여성들이 일본 군대에 끌려가서 성폭력을 당했다'에서 그치는 공부가 아니라, 왜 여성은 항상 전쟁이 일어나면 성폭력을 당해야 하는지. 왜 국가는 그런 것들을 조직해서 하는지. 시각을 넓히다 보면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국가 폭력의 관점에서 보는 게 가장 쉬울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위안부 문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상이나 혹은 여성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등의 프레임들이 다 녹아있는 문제인데, 국가적인 폭력의 문제로 바라보면 여성문제도 마찬가지고 다른 여러 가지⋯ 뭐 소수자의 문제로서도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에 국가적인 폭력의 문제로 보는 게 가장 쉽고 적절한 프레임인 것 같아요. 핵심은,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것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서 위안부 문제를 접근하면 위안부문제 뿐만이 아니라 다른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기도 하거든요. 때문에 국가폭력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쉽고, 위안부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그런 걸 하기 위해서 저는 이 아주 조그맣지만 그런 발걸음이 되길 바란 것도 있어요. 이 문제가 그냥 단순히 옛날, 과거의 일로 매몰되지 않고 현재에 여전히 유효하려면 이 문제를 보다 더 큰 프레임으로 가져올 수 있는 노력을 해야 되는데, 그게 예술이 해야 될 역할인 것이죠.
Q7. 최근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회문제가 있으신가요?
A. 요즘 하고 싶고, 고민 중인 이슈는 학교문제에요. 극영화일지 다큐멘터리가 될 진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문제를 고민 중입니다. 드러나는 양태로는 자살이 되겠고 그 속엔 왕따, 입시 경쟁 등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지가 고민이에요.
Q8. 마지막으로, 18회 서울 인권영화제 응원이나 지지의 메시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서울인권영화제가 결코 녹록지 않았던 길을 걸어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꾸준히 온 것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여전히 한국에는 인권문제와 관련한 문제들이 계속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담고 있는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서울인권영화제라는 공간이 정말 소중한 것 같아요. 이 영화제가 광장에서 열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갖고 있는 특성이 극장에서 상영하는 게 더 좋으니까 내년, 내후년에는 극장에서 좋은 영화들이 상영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해외작
안톤의 여름방학 Summer with Anton
야스나 크라지노빅 Jasna KRAJINOVIC | 벨기에 Belgium | 2012 | 다큐 | 61분 | HDCam | 컬러
모스크바 외곽에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안톤은 친구들과 호수에서 어울리거나 그림을 그리며 여름방학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큰 배낭을 메고 군복을 입은 채 청소년 병영캠프에 간다. 아이들은 캠프파이어 대신 행군과 사격 훈련을 받는다. 영화는 아이들이 총을 겨누는 과정을 어떻게 배우는지 조용하고 차분하게 보여준다.
5월 25일(토) 16:35 상영
해외작 한줄평
다른 영화보다 어떤 감상을 끌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소년들이 여름 캠프의 일환으로 군인 체험을 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싶었습니다. 그 때는 몰랐던 겁니다. '그것이 문제로 보이지 않게 돼버리는 것이 진짜 문제'라는 걸.
(석수)
머리를 삭발하고 군복을 입고 식사를 위해 앉아있는 안톤은, 영화 시작 부분의 긴 머리에 테크토닉을 추고 할머니와 파리채를 가지고 노는 평범한 소년의 모습이었던 안톤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었습니다. 안톤의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을 움직이는 데가 있었습니다. (김정완)
군사훈련캠프에 흥미와 기대를 갖고 있는 안톤. 그러나 훈련 내내 그의 표정의 변화는 거의 없다.
그렇기에 권총을 들고 위협과 저지의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보이는, 안톤의 몰입된 표정과 몸짓이 영화 전반을 통틀어 가장 눈에 띄는 장면 중 하나라 생각이 된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훈련캠프에 참여를 하면서 안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안톤의 외침은 누구를 향한 외침일까? 왠지 모르게 그의 외침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Don't come any closer! stand back!" (김재상)
활동펼치기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돌아보기
-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반성폭력 교육
지난 4월 18일 목요일에는 매주 열리던 정기회의 대신 반성폭력 교육이 있었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강사로 초대한 경 님과 함께하는 "섹슈얼리티 ... 너무나 익숙한, 그러나 너무나 낯선 이야기 ... 성폭력"이라는 제목의 교육이었다. 저녁 7시부터 세 시간 동안 이어진 이 자리에는 상임, 자원활동가를 통틀어 25명 정도가 참여했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활동가들을 위해 반성폭력 교육을 준비한 이유를 상임활동가들에게 들어볼 수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자가 노력하기 위해서, 그리고 평소에는 신경쓸 여유가 없을 문제에 대해 다같이 고민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교육은 경 님이 활동가들에게 '자신이 생각하기에 인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다들 어려운 질문이라며 난처해하면서도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이어서 경 님은 준비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보여주며 섹슈얼리티 개념부터 시작하여 섹슈얼리티와 성폭력의 관계, 성폭력의 개념과 맥락, 성폭력에 관한 잘못된 통념, 그리고 실생활에서 성폭력의 맥락을 짚어보는 실전문제 등 총 7개의 장으로 구성된 강의를 진행하였다.
강의 내용이 약간 어렵기는 했지만, 이때 느낀 어려움은 지금까지 섹슈얼리티와 성폭력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아가 섹슈얼리티와 성폭력은 그때그때 개개인들의 경험과 감정을 살펴보면서 우리 모두가 처해 있는 역사적, 문화적 권력 관계의 맥락을 통찰할 때에야 비로소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이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게 어찌보면 당연하다고도 생각된다. 이날 강의를 바탕으로 우리의 평소 생각과 경험을 되돌아보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자원활동가편지
당신은 지금 뭘 하고 계신가요?
얼마 전 프랑스 의회는 동성결혼 합법화를 최종 승인했습니다. 여전히 프랑스 내부에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국제적 영향력이 큰 나라의 이러한 결정은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동성결혼 합법화'의 바람을 더욱 거세게 해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이런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죠. 얼마 전 민주통합당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차별금지법'을 철회했습니다. 수많은 보수 단체들의 반대 성명과 하루 1000여 통의 항의 전화, 셀 수 없이 올라온 반대 댓글들에 꼬리를 내린 거죠. 이를 보도한 기사 밑에는 온통 차별금지법을 반대한 세력들과 입법을 철회한 국회의원들을 욕하는 댓글들이 가득했습니다. 물론 저도 안 하느니만 못 한 짓을 벌인 국회의원들이나 보수 단체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 비난 댓글을 달 수가 없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통화 버튼을 눌러 목청을 높이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때, 내 앞가림에 바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입법 철회 일주일 후인 4월 25일은 오늘날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이 죽음으로 몰고 간 '故육우당'이 하늘나라로 간 지 10년째 되는 날입니다. 꽃다운 나이의 청소년이 죽음으로 동성애자의 인권에 대해 울부짖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입으로만 인권을 외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이젠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모르시겠다고요? 어렵지 않습니다. 5월 23일 지인들의 손을 붙잡고 서울인권영화제에 오는 것. 그게 바로 시작입니다. 참 쉽죠잉?
갑자기 기승전'홍보'가 돼서 당황스러우신가요?
에이~ 뭘 새삼스럽게...
다 알면서...
내가 모르는 공간에서 영원히 길을 잃고 싶어라.
나는 예술의 정체성은 설득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말하는 다른 '사랑'을 설득하는 일.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다른 '사랑'의 존재를 그저 설득시키는 일이라 생각한다. 인권영화제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물론 인권영화에는 다큐멘터리만 있는 것이 아님에도,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주로 다큐이다. 다큐의 어떤 점이 인권을 대변하기에 적합한 것인지, 다큐의 정체성을 묻는 화두를 항상 나 자신에게 던져왔었다. 다큐는 예술일까 아니면 사실의 기록일까. 다큐가 하려는 설득은 예술로서의 설득인가 기록으로서의 설득인가. 내 대답은 후자였다. 예술이 다른 '사랑'을 설득하는 일이라면 다큐는 '사랑'이 아니라 '억울함'을 설득시키는 매체라고 생각했다. 억울함을 호소해 관객을 분노시키는 설득을 하는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큐가 진짜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느꼈을 때, 그리고 그 정체성이 스며들어 다큐가 비로소 '억울함'이 아닌 다른 '사랑'을 설득하는 지점들을 발견했을 때, 내 대답은 달라졌다.
다큐는 그 자체로 모든 프레임이 클로즈업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화면에 얼굴이 꽉 차는 클로즈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삶 자체를 들여다보는 클로즈업이다. 모르는 '개인'들의 공간에서 길을 잃은 감독이 그 공간에 초점을 맞춘 채, '개인'에게 한없이 줌인을 하고 있다. 감독은 카메라라는 나침반을 들고 온 신경을 집중한 채, 생전 처음 와본 공간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것이다. 다큐는 공간 안에서 언제나 '개인'들을 카메라에 담은 채 그 주위를 계속 맴돈다. 다큐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서,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길을 헤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개인'들 주위를 맴도는 시간이 무르익어갈수록, 다큐라는 '클로즈업'은 더욱 힘을 발휘한다. 렌즈가 굳이 앞으로 당기는 물리적인 힘이 없이도 다큐 그 자체가 클로즈업이 되는 경이로운 지점들을 가지게 된다. 그 때 비로소 다큐 속 인물이 '개인'으로 보이고, 모르던 공간을 인식하게 된다.
다큐에는 앞서 말했듯 '개인'이 나온다. '개인'은 흔히 선과 악으로 판단되는 극영화의 일반적인 캐릭터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그냥 '개인' 그 자체에다. 그들은 그들이 겪은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변영주 감독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러 갔을 때, 그들이 사과 한 쪽도 나누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마음이 아려왔다고 했다. 그녀들은 살기 위해 독해져야 했고, 그 성격이 그대로 만들어져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감독은 사과를 나눠주지 않고 다 드시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생존 에너지를 느끼고, 오히려 할머니들이 사랑스럽다고 느꼈다고 한다. 바로 이 지점이다. 다큐에는 살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부당한 세상 속에서도 살기위한 그들의 모습은 건강하다. 오래 전부터 존재가 삶에 대한 가장 예의바른 태도라고 생각해왔다. 다큐에서는 필사적으로 삶에 예의를 지키는 '개인'들만이 살고 있다.
다큐가 삶의 순간에 불현듯 들어가 그 과정을 묵묵히 바라보는 매체라고 해도, 엔딩은 필요하다. 다큐가 도달하고자 하는 엔딩은 극영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엔딩과 가장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큐가 도달하는 마지막 과정은 결말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다큐는 부당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거나, 아니면 제자리를 계속 뱅뱅 돌뿐이다. 가령 해결된다고 해도 또 다른 이차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다큐가 지향하는 마지막은 결말이 아니라 도중의 장면이다. 해결되지 않을, 아니 해결되어도 마냥 행복해질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 '개인'은 울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 있다. 분노하거나 잠시 체념한다. 투쟁하거나 잠시 휴전한다. 어떤 장면이 마지막을 장식하든 그건 다큐의 물리적인 제한일 뿐, 그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러나 다큐는 그런 물리적인 시간을 이용해 마지막 장면에 '아름답다'라는 형용사를 부여한다. 주인공은 상황과 부딪혀 다친 몸을 일으킨다. 일어나는 방법이 어떤 모습이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응하며 부딪히는 그 모습에서 아우라를 발견한다. 그 아우라는 정말로 아름답다. 형용사를 추가한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을 마지막으로 다큐는 카메라라는 나침반을 버리고 그 속에서 영원히 길을 잃기를 자처한다.
다큐감독들은 이미 자신이 카메라에 담은 '개인'과 사랑에 빠져있다. 그래서 다큐를 통해 우리를 설득시키려한다.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는 사랑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저 모르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득시키려 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억울함을 호소하는 설득이 아니다. 다큐들마다 같은 정체성 안에서 여러 각주들로 다르게 설명될 것이다. 이 각주들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면, 분노를 한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자신 안에서 공감을 찾아내려한 증거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다큐 앞에서는 눈물을 흘릴 수 없다는 역설이기도하다. 다큐가 진정 바라는 감정이 눈물어린 혹은 분노하는 공감이 아니라면, 어떤 힘으로 우리를 설득시킬 수 있는 것일까. 동정은 추하고 연민은 도달하기 어려운 지점이니, '내가 모르는 공간에서 영원히 길을 잃고 싶은 묘한 감정'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닐까. 길을 헤매다 보면 길을 알 수는 없어도 그 길의 체취가 느껴진다. 이해와는 조금 다른,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눈부신 어떤 감정일 것이다. 그것이 다큐가 모르는 공간을, 모르던 삶을, 그리하여 모르던 사랑을 우리에게 설득시키는 지점이라고 믿는다. 그 지점에 도달한 다큐는 비로소 예술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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