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4호] 국내작 소개 <그리고 싶은 것> & 감독 인터뷰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3/05/14
그리고 싶은 것 The Big Picture
권효 KWON Hyo | 한국 Korea | 2012 | 다큐 | 94분 | HD | 컬러 | 16:9
2007년 여름, 그림책 작가인 권윤덕은 한국과 중국, 일본의 그림책 작가들과 함께 <평화그림책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그녀는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그림책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동료 작가들의 뜨거운 지지 속에서 작업을 시작하지만, 그림을 그려나갈수록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상처가 권윤덕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한편 일본과 한국의 작가들은 그녀의 스케치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결국 일본측 출판사는 그녀의 그림책 출판을 연기한다. 그녀는 점점 지쳐가고, 그림책의 완성은 멀어져만 간다.
5월 25일(토) 14:10 상영
감독인터뷰
Q1. 먼저 감독님 소개를 부탁드려요.
A. 저는 다큐멘터리 만들고 있는 ‘권효’라고 하구요. 이번 인권영화제에서 그림책 작가 권윤덕 씨를 주인공으로 한 <그리고 싶은 것>이란 작품을 만들었고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Q2. 감독님의 영화들이 전부 다큐멘터리인데 다큐멘터리란 장르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했어요. 딱히 역사학자가 되겠단 생각은 없이 역사가 좋아서 들어갔는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내가 하는 것들이 맞는 일인지 뭘 하고 살아야할까에 대한 고민. 군대 갔다 오면서 사회 비판적 활동을 하고 싶었고 거기엔 시민단체 및 운동가의 삶도 있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 저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독립다큐를 보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어요.(웃음) 솔직히 말하면 대학시절 디지털카메라가 유행했었는데도 카메라를 잡아본 적이 없었어요. 찍기보단 찍히는 편이었고 알아야 되는 것도 많아 보였고, 영화한다고 하면 특이하고 잘난 애들이 해야 할 것 같고, 저와 관계없다 생각했어요.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했고요. 이런 말하면 누워서 침 뱉기지만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냥 카메라 들고 찍으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이켜보면 생각이 없었죠. 배우다보니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어렵고 견고하며, 대중을 설득하는 예술을 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Q3. 주로 상업영화를 많이 보다가,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니까 다큐멘터리 찍는 과정상의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중간에 권 작가님의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것을 들으셨을 때 어떠셨나요?
A. 다른 다큐멘터리 감독 분들도 비슷하시겠지만, 가장 요구되는 자세가 듣는 거거든요. 그리고 두 번째가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거예요. 어떤 이야기를 하면 동영상을 통해 표정이라든지 몸짓 등 여러 가지가 보이는데 이런 것들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거예요. 주인공 개인사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정도의 예상을 하고는 갔지만, 막상 그걸 마주 했을 때 꽤나 당황했죠. 더군다나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리액션을 하고 싶은데 저의 리액션이 또 촬영되니까. 권 작가님이 이야기 한참 하시고 나서, “어 근데, 자기는 되게 반응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뭐 고충이랄 것 까진 아니고… 그런 면에서 예민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A. (안보영 프로듀서님) 그 인터뷰 하고 나서 회의를 한 번 해야 했던 게, 이야기를 알고 이 그림책 작업을 팔로잉하는 것이 저희가 그려오던 그림이었거든요. <꽃할머니>를 그리는 과정에서 한국, 일본 오가며 그런 작품을 구성하고 완성해 나가는 부분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한테는 나름 결정적인 순간이 온 거예요. 개인사를 우회하면서 애초에 그려오던 그림대로 가야 되는 건지에 대한 의논들을 하게 되었고, 결론은 이 <꽃할머니>라는 그림책 만드는 과정과 권윤덕이라는 주인공이 작업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개인사를 우회하고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Q4. 영문 제목이 인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A. 다른 영화들도 비슷하지만 보통 원제목을 직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새롭게 짓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그리고 싶은 것>을 직역을 할까 생각도 했는데 주변에서 다 말려서 어떤 게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번역해주시는 분이 몇 가지 안을 제시하셨어요. 그 중에 가 있었어요. 단순히 크기가 큰 그림이 아니라 세상을 담는 그림이란 뜻으로 <꽃할머니>란 그림책이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걸 통해서 현재를 환기시키려는 뜻을 담고 있고, 그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니깐 그걸로 하자고 해서 결정이 났어요.
Q5. <꽃할머니>에서 ‘성적인 내용과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 인해 아이들이 혼란을 겪을 것이다’라는 다른 사람들의 우려가 가장 핵심이 되어서 그림책 출판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들에게 내용을 전달했을 때 아이들은 그 우려가 무의미할 정도로 올곧고 명확하게 내용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가장 큰 반전이었고, 오히려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시선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을 실제로 겪으면서(특히나 아이들과 직접 만나 소감을 듣는 장면을 찍을 때) 감독님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셨는지 궁금합니다.
A. 어른들은 아이들은 이렇게 느낄 것이다, 규정을 짓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이 <꽃할머니> 같은 경우는 모두들 아이들을 굉장히 사랑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개인 책을 만드시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본인들이 봤을 때 이게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 좀 적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을 하는 거고, 그게 어떤 작품의 수준이나 작가의 의도가 나쁘다고 해석한 건 아니었어요. 그러나 실제로 이제 아이들을 보면서 모니터링 해보니깐 정말 엉뚱하거나 전혀 생각하지 못한 대답들을 많이 했었고, 그 중엔 작가가 정말 이걸 알까? 이런 것까지도 포함이 됐던 거죠. 예를 들면 댕기가 있어요. 첫 장부터 끝까지 보면 꽃할머니가 머리에 댕기를 묶고 있어요. 이게 끝까지 놓치지 않고 꽃할머니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을 표현한 것이에요. 어른들은 왜 댕기를 계속 묶고 있는 건지 잘 못 보잖아요. 그런 감상을 보면 작가가 의도했던 거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Q6.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반일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면 '일본이 나쁘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감독님이 생각하시기에 위안부 문제를 바라볼 때 요구되는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정서적인 접근들 혹은 다른 프레임들로 이 문제를 놓고 본다면 그 본질을 자꾸 놓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를 예로 들어보면, 독일에서 전쟁을 일으키면 독일 대중이 환호하면 이상한 거고, 영국에서 참전 선언했을 때 영국 국민들이 환호하면 괜찮은 것인가 하는 질문도 요점을 드러내는 좋은 질문이 될 수 있겠네요.
그렇게 역사적으로 본질적인 부분들을 놓치다 보면 선과 악의 구분을 할 수밖에 없고, 대상을 계속 타자화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 프레임은 사실 쉽죠. 단순히 나쁜 놈이라는 혹은 적이라는 대상을 정해두고서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이오. 그런 프레임에 빠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 이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사실 위안부 단체들은 정서적인 접근의 프레임에 벗어난 지 오래에요. 애당초 시작부터 그랬고. 증오와 분노로서 위안부 문제를 접근하는 게 아니라 책임 있는 일본의 국가적인 사과와 배상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단추이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여성, 국가적인 성폭력, 가부장제 문제, 남성중심주의, 군대를 중심으로 한 군사문화와 여성과 인권을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얘기하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예요.
그래서 요구되는 자세는 사실 하나인 것 같아요. 수요 집회도 한 번 나가보시는 등, 이 문제에 대해 공부를 하실 필요가 있는데, ‘태평양 전쟁 시기에 여성들이 일본 군대에 끌려가서 성폭력을 당했다’에서 그치는 공부가 아니라, 왜 여성은 항상 전쟁이 일어나면 성폭력을 당해야 하는지. 왜 국가는 그런 것들을 조직해서 하는지. 시각을 넓히다 보면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국가 폭력의 관점에서 보는 게 가장 쉬울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위안부 문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상이나 혹은 여성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등의 프레임들이 다 녹아있는 문제인데, 국가적인 폭력의 문제로 바라보면 여성문제도 마찬가지고 다른 여러 가지⋯ 뭐 소수자의 문제로서도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에 국가적인 폭력의 문제로 보는 게 가장 쉽고 적절한 프레임인 것 같아요. 핵심은,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것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서 위안부 문제를 접근하면 위안부문제 뿐만이 아니라 다른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기도 하거든요. 때문에 국가폭력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쉽고, 위안부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그런 걸 하기 위해서 저는 <그리고 싶은 것>이 아주 조그맣지만 그런 발걸음이 되길 바란 것도 있어요. 이 문제가 그냥 단순히 옛날, 과거의 일로 매몰되지 않고 현재에 여전히 유효하려면 이 문제를 보다 더 큰 프레임으로 가져올 수 있는 노력을 해야 되는데, 그게 예술이 해야 될 역할인 것이죠.
Q7. 최근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회문제가 있으신가요?
A. 요즘 하고 싶고, 고민 중인 이슈는 학교문제에요. 극영화일지 다큐멘터리가 될 진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문제를 고민 중입니다. 드러나는 양태로는 자살이 되겠고 그 속엔 왕따, 입시 경쟁 등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지가 고민이에요.
Q8. 마지막으로, 18회 서울 인권영화제 응원이나 지지의 메시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서울인권영화제가 결코 녹록지 않았던 길을 걸어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꾸준히 온 것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여전히 한국에는 인권문제와 관련한 문제들이 계속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담고 있는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서울인권영화제라는 공간이 정말 소중한 것 같아요. 이 영화제가 광장에서 열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갖고 있는 특성이 극장에서 상영하는 게 더 좋으니까 내년, 내후년에는 극장에서 좋은 영화들이 상영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