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 3호] (활동펼치기/상영작소개) <밀양전> 10일간의 밀양戰, 잊지 말아야 할 밀양傳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14/04/03
(활동펼치기) <밀양전> 10일간의 밀양戰, 잊지 말아야 할 밀양傳
* 시놉시스
앞으로 건설 될 신고리 3,4,5,6,7,8호기에서 생산 될 전기를 수도권으로 송전하기 위해 계획된 765kV 송전탑. 64기가 건설 될 밀양에선 할매들이 송전탑을 막기 위해 국가와 한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와 9년째 싸우고 있다. 할매들이 9년 동안 싸워온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내가 사는 곳은 햇빛이 가득 넘치는 마을 밀양입니더. 지는 10년전에 농사짓는게 너무 힘들어가 좀 쉴라고 공기 좋고 물 맑은 밀양에 터 잡았어예. 내 이웃도 몸이 않좋아서 몸 나술라고 들어오고... 근데 요즘 내 생활이 많이 서글퍼예. 우리 마을에 765인가 뭐신가 송전탑이 들어선다고 난리데. 작년엔 옆마을 어른이 자기 목숨 끊어버렸심니더. 내도 나무 잘라삐는 거 막다가 손자 같은 인부한테 개처럼 질질 끌려댕기면서 평생 못 듣던 욕도 묵고. 그때 두들겨 맞은 상처가 아직도 그대로라예. 밀양에 송전탑이 총64개가 들어선다카는데... 그거때메 8년싸웠어예, 8년! 이야기하자면 긴데, 한번 들어보실랍니꺼!
* <밀양전> 모니터 후, 반빈곤∙반개발∙노동 팀과 활동가(명숙)와의 대담
10일간의 밀양戰, 잊지 말아야 할 밀양傳
제19회 서울인권영화제의 ‘반빈곤, 반개발, 노동’팀이 모두 모인 날은 오랜만에 봄이 찾아온 3월 26일이었다. 몇 명의 자원 활동가들은 앞서 영화를 봤었고, 당일 일찍 온 4명의 활동가는 모임에 앞서 영화 <밀양전>을 감상했다. 영화는 74분의 상영시간 동안 송전탑 건설로 피폐해진 밀양과 그곳의 사람들을 담아내고 있다. 앞으로 건설될 신고리 3, 4, 5, 6, 7, 8호기에서 생산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계획된 765kV 송전탑. 총 64기가 건설될 밀양에선 평범했던 할매들이 송전탑을 막기 위해 국가와 한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와 9년째 싸우고 있었다.
누군가의 부모이거나 할아버지, 할머니일 마을 사람들과 누군가의 아버지, 자식, 손주였을 한전 직원들과 경찰들.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지나다 볼 수 있는, 우리 옆집에 살 것 같은 사람들. 그러나 <밀양전>에서 만큼은 서로의 삶과 삶의 방식이 정반대인 적이었을 뿐이었다. 어찌 보면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처럼 보였다. 당신들의 삶을 지키고자 했던 마을 사람들은 순진한 농사꾼들일 뿐이었지만, 그 상대는 국가의 공권력을 등에 업은 공기업 직원들과 경찰들이었다. 거기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던 할배, 할매들은 결국 공사 중단을 이끌어 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중단이었다. 모든 것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영화는 끝을 맺었고 그 이후에 밀려오는 씁쓸함이란 진한 에스프레소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약속했던 늦은 7시가 되자 ‘반빈곤, 반개발, 노동’팀의 모든 활동가가 모였다. 그리고 인권운동사랑방의 상임활동가이자 밀양 사람들의 구술서를 만들고 있는 명숙 활동가도 자리를 함께했다. 밀양과 관련해 많은 활동을 하는 분이어서인지 1시간 남짓의 대화를 통해 영화에 담긴 것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에서 다루지 못한 싸움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2005년에 계획된 송전탑 사업이 2007년이 돼서 승인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밀양의 4개 면에 송전탑이 세워지는 공사가 시작됐다. 자신들의 삶을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은 강압적인 국가 정책에 당연히 반대했고 국가는 한전을 통해 개별적으로 사람들을 회유하고 주민 공동체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맞섰다. 이는 결코 돈이나 보상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평생의 노력이 닮긴 각자의 인생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재산 강탈’의 문제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송전탑을 증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그러한 강탈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실제 정부는 비교적 최근에 지은 신고리 3, 4, 5호기뿐 아니라 낡은 1, 2호기의 수명을 연장하여 전기를 생산, 운반하기 위해 송전탑 증축이 필요했다. 이를 신속히 진행하기 위한 제대로 된 주민들과의 협의 없는 강행처리가 사태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보았듯이 낡은 원자력 발전소는 언제든 시한폭탄처럼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음에도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려는 국가의 정책이 이 밀양 송전탑 싸움의 원인이자 핵심이다. 또한, 정책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공권력으로 강제 진압하면서 벌어졌던 물리적, 언어적 성폭력. 겁을 주기 위해 집으로 전화하거나 직접 방문. 심지어 관련 주민들을 구속.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하게 자행되는 상황이 지금껏 밀양에서 벌어져 왔다.
명숙 활동가가 모든 설명을 끝마치고 질문을 받기 시작했을 때, 자원 활동가들은 서슴없이 본인들의 생각을 물어봤다. 이에 명숙 활동가는 차분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 주었고 때로는 다른 자원 활동가들과도 의견을 교환하면서 대답해주었다.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어떻게 하면 NIMBY 현상에 대한 반감을 줄일 수 있는 지었다. 사실 같은 밀양에 사는 시민도 ‘나랏일인데’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밀양의 시위는 NIMBY 현상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었다.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 위해 하는 싸움이고 심지어 지중화나 대체 에너지 같은 다른 방안도 이미 제시되어 있다. 결국, 대한민국의 친기업, 친재벌적인 분위기와 도시 사람들의 이기심이 지금의 밀양을 지역 이기주의로 보게 하는 것이었음을 질문의 답을 듣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 대체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이에 명숙 활동가는 에너지 자체가 무공해라면 대체에너지인지, 또 주민들을 쫓아내면 그것을 대체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져주었다. 왜 시골이나 한적한 곳에서 도시로 에너지를 옮겨야 하는가. 이것을 또 다른 착취라고 볼 수 없는가. 에너지 문제만 놓고 본다면 밀양 송전탑 투쟁은 탈핵과 관련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주주의란 어떠해야 하는지, 시민권이란 어떻게 존중받아야 하는지 등 밀양 주민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이 생각해 봄 직한 ‘우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밀양의 이야기가 슬슬 마무리될 무렵,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힘들게 겪었던 이야기를 들어주고 수면 위로 올리는 것, 무소불위인 양 행해지는 국가의 권력을 제어하고 수위를 조절하는 것, 무엇보다 그 두 가지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그렇다. 영화 <밀양전>은 10일 동안의 밀양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전투를 담은 ‘밀양戰’이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이 잊히지 않게 ‘밀양傳’으로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2014년 봄날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