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상영작소개) <자, 이제 댄스타임> 낙태, 과연 찬반을 따질 수 있는 문제일까?

 

 

* 시놉시스

낙태는 있지만, ‘낙태한 여자’는 없다?! 2009 년 대한민국 한 산부인과 의사단체가 낙태를 시술한 병원과 동료의사들을 고발하는 사건으로 떠들썩해진다. 이를 계기로 종교, 시민단체, 각종 협회들은 성명을 내고 언론 또한 물만난 마냥 연일 보도를 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부산스런 움직임에 가려져 드러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용해진 듯 보이는 몇 년 뒤,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싶습니다’란 한 장의 웹자보를 본 여성들이 카메라 앞에 선다. 평범한 직장인, 교직에 있는, 곧 학부모가 될, 아직 학생인 그녀들. 찬반 논란에 가려져 있던 그녀들의 경험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과거로 간다.

 

* <자, 이제 댄스타임> 모니터 후, 여성∙성소수자∙장애 팀의 대담

낙태, 과연 찬반을 따질 수 있는 문제일까? 

윤상: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낙태를 반대했었다. 깊게 생각해서였다기보다는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며, 살인이라고 하는 그런 정도였다. 왜냐하면 중학교 때 꽃동네에서 봉사활동 할 때 낙태 반대하는 영상을 봤다. 애기들 시체 같은 자극적인 영상들. 그게 머리에 깊게 남아있어서 그랬던 거다. 이 영화를 보니 아무도 반대할 수 없는 명제 같은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고통당하는 여성에 대해 생각 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영훈: 나는 낙태에 대한 생각을 유보했었다. 하지 않았다. 이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찬성이나 반대로 정확히 입장을 정하는 게 힘들다.

윤상: 입장을 결정한 건 아니고 너무 놀랐다. 그렇게 낙태를 많이 하는지 몰랐다. 그럼에도 말하지 않고 숨겨야만 하도록 만들어 낙태를 쉽게 하지 못하게 하는 거구나 했다. 차라리 합법화시키는 게 여러모로 더 좋은 점이 많을 것 같다.

영훈: ‘낳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임산부들의 선택이 사회적 틀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돼서이다. ‘내가 애를 낳는 순간부터 내 인생은 끝나는 거야. 애를 낳으면 내 인생은 애를 먹여 살리는 게 되어야 해.’ 그런 생각 때문에 낙태를 생각하는 건지. ‘난 지금 임신을 할 때가 아니야’ 같은.

레고: 모든 낙태 경험들이 단일한 경험은 아니다. 그 여성들이 다 같은 생각으로, 같은 이유로 같은 선택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영훈: 저기 나온 분들(영화에 출연한 낙태 경험 여성들)은 어떻게 보면 경제적으로 낙태가 가능한 분들이었던 것 같다.

세정: 경제적 요건이 되어서 가능했다는 말에 반대하는 게, 경제적 요건에 따라 낙태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으로 가능한 선택이 나누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낙태를 한다는 선택이 경제적으로 봤을 때 가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닐까.

레고: 그렇기도 하지만, 이건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몸, 섹슈얼리티에 대한 문제다.

윤상: 낙태를 찬성하자는 거랑 합법화하자는 건 다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낙태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낙태를 찬성하는 거다.

세정: 낙태 합법화라는 말이 좀 거슬린다. “몸에 대한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다른 선택들에 있어서는 합법적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지금 “범죄화”되어있는데 합법화라기보다는 “비범죄화”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라고 생각된다.

레고: 맞다. 그래서 영화 속 법대교수가 말한 것처럼 합법, 불법으로 하면 규범 차원에서만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게 되는 거다.

옥희: 기존에 여성들이 낙태를 하기로 결정한다는 것이,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이 있으니까, 모든 것들을 고려했을 때를 이야기하는 거다. 이 영화에서 볼 것은 낙태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강제되고 있다는 것. 전통적 규범들이 낙태를 하지 않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등의 절대명제를 심어주는 것. 이걸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낙태는 “불법”이 되어야만 하는 거다. 낙태를 찬성하고 반대한다는 논리보다는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레고: 생명권과 여성의 몸에 대한 것을 뒤섞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에 너의 몸은 낙태를 할 수 없도록 강제되어야 해.’라는 말이 된다. 결국 당사자는 빠진 논의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임신 중 초음파 등 여러 검사를 하고, 태아에게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낙태가 허용된다. 이건 곧 장애혐오의 논의까지 될 수 있는 거다.

옥희: 법적인 판단기준을 가지고 큰 공동체의 틀에서 생각하는 사람들, 개인으로 판단하지 않고 공동체, 국가 기준에서 의사결정기준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는 것에서 장애인은 또 제외되는 것이다. “정상적 생명”으로 생명을 규정하는 것. 우리가 인권을 이야기할 때는, 그냥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세정: 그런 의미에서 아이를 죽이는 것 자체에도 생명과 인권의 잣대를 가지고 올 수 있지만, 임신을 할 수 있는 나이대의 사람들이 평균수명까지 산다면 앞으로 살아갈 삶에 있어서 똑같은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훈: 이 영화를 보면서 마지막에 밥 먹는 장면에서도 보이고 (영화의 낙태 경험 여성들 중)교사의 이야기에서 나오듯이, 자기도 자기 엄마도 낙태를 경험한 것 같은데 이것을 공유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제일 크게 다가왔다. (낙태 경험 여성이) 6명 정도 나오는 것 같은데 가족 누구에게 얘기했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임신을 하는 순간부터 사회적 고립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사회적 고립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낙태한 이후의 삶에서도 계속되는 고통에 대해서도 그렇고.

윤상: 생각해 보니까 수업 때 한 번 이 문제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태아의 인권을 말하면서 낙태를 금지하는 건,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여성들의 인권보다 지금 뱃속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

레고: 인권의 개인으로 보면 어렵고 시스템도 함께 봐야 한다. 주로 낙태를 할 거라고 여기는 미혼모, 한 부모 가정 등의 낙태율을 보면, 정책적으로 출산을 장려했을 때의 낙태율이 더 높았다.

매생이: 나도 태아 성감별해서 낙태하기도 하고, 기혼여성들이 낙태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듣기도 했다. 영화 시작에서도 그렇고. 이걸 처음에 왜 안 보고 싶다고 했냐 하면, 난 이 문제에 있어서는 고민을 끝낸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낙태를 왜 하면 안 돼?’라고 생각했고 불법인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헌법이 있기도 훨씬 전부터 낙태는 늘 있어 왔다. 심지어 의술이 발달하기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전에 본 <레볼루셔너리 로드>라는 영화에서도 그렇고, 낙태를 하려면 기구를 가지고 혼자서도 한다. 불법, 합법으로 나누는 것도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성미: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낳는다 해도 모든 책임은 낳은 사람한테 있고, 낳으면 일단 양육, 경제, 본인의 삶에 대한 그런 것도 있고 전부 다 혼자 책임져야 한다. 그런 걸 본인이 책임져야 되고 낙태를 한다고 해도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그렇게 만든 사람들도 분노를 가질 거고, 그렇게 되면 모든 책임은 그 사람한테 있는 게 된다. 그렇게 되면 너무 무섭다. 만약에 내가 저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까. 결국 모든 걸 임신한 당사자 한 사람이 끌어안도록 만드니까.

레고: 영화 초반에 낙태 경험 여성들이 블러 처리되어서 나오다가, 개개인이 각자 직업 등 구체적인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게 싹 없어지는 그 장면이 너무너무 좋았다. 처음에 틀었을 때, 블러 처리되어서 나오길래 계속 그럴 줄 알고 좀 실망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도 다른 낙태 관련 영상들처럼 여겼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서 참 좋았다.

세정: 종교적으로도 굉장히 ‘원래(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생명은 소중한 거야’라고 말하는 종교가 있는데. 중세에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도 굉장히 좁았다. 중세에 엄청난 살육들도 많았는데, 종교의 이름으로 참 많이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은 원래 소중해’라고 말하면 문제가 있다. 마지막에 헌재에서 얘기하는 것 중에 여성 국회의원이 ‘남성 국회의원들은 ’우리 모두는 태아였다‘는 논리로 낙태를 반대하지만, 그건 우리 모두는 임산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고 한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대법원장이 그걸 남녀 성대결로 몰고 가면서, 마치 여성 국회의원이 남녀 대립 구도 차원에서 말하는 양 여기는 것이 제일 황당했다.

지현: 옛날에 반성폭력 교육할 때 낙태 관련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오늘도 중간 중간 도구가 좀 나오기도 했고. 그 영화에도 피 나오는 끔찍한 장면들이 있었다. 근데 ‘만약 나라면?’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참 그 무서운 공포나 그런 걸 이기고? 라고 해야 하나?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게⋯ 모르겠다. 하여튼 저번 영화도 이번 영화도 무서웠던 점이 있었다. 저번에 봤던 영화가 더 충격이 컸다. 오늘 영화는 맨 처음에 그 배우 오디션이라고 알고 그랬는데(낙태 경험 이야기하는 데에서) 한 명 한 명 블러가 없어질 때, 그때 믿을 수 없었던 그런 느낌이 있었다. 배우 오디션 장면에서 배우가 연기를 할 때는 저런 감정인데 어떻게 카메라 앞에 나올 수 있었지? 싶었는데 그 이후에 당사자가 블러가 벗겨지니까 한 명 한 명 스타일이 달랐던 게, 한 명은 발랄하고 한 명은 목소리가 계속 떨리고(낙태하고 골방에 있었다는 그런 거) 어떻게 인터뷰를 할 생각을 했었을까 싶었던 거다. ‘나를 예쁘게 보고 싶었다. 내 경험에 대해 나누고 싶었다.’고 하는 게 참 와 닿았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한 명씩 시장 입구에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부분도 있었고 각자의 위치에서 카메라를 응시를 하는데, 그게 딱 ‘여기 사람이 있다’ 그런 느낌으로 정리되는 것 같았다. 아직 낙태라는 것은 평범하지 않고 음지에 있는 것이고 하는 등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 많은 생각이 들었다. 중, 고등학교 때 사회 시간에 찬반 토론 하는 것에서 낙태 주제도 꼭 있었는데 얼마나 내가 생각 없이 무슨 입장을 가졌는지 모르겠는데. 합법화 같은 단어도 그렇지만 중, 고등학교 때 그렇게 자동적으로 내 머릿속에 만들어지고 그걸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찬성한다, 반대한다 이야기하고. 아까 대입 이런 이야기했는데. 나라면? 나는 너무 무서워서 낳는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수술실이 더 무섭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레고: 그래서 “영상의 정치”라고 하는 게, 참 그런 게 문젠 거 같다. 초음파 사진, x-ray 등 마찬가지 맥락인 것 같다. 자극적으로나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이, 혹은 지나치게 자세하게,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까지 보여주면서. 그렇게 보여주면서 각인시켜서, 어떤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거다.

 

-매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