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금지Ban

입국 금지Ban

입국 금지Ban의 스틸사진
감독
박성미
상영시간
50'
제작국가
한국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1998
색채
color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국내 상영작

시놉시스

촬영:황동걸대본:최수진제작:영상기록 다큐-인 재일 동포의 국적은 '조선'과 '한국'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설령 안다 하더라도 조선 국적은 곧 북한 국적이라고 잘못 알고 있기 쉽상이다. 지난 6월 방문한 무용가 백향주씨의 경우도 '조선'국적을 북한으로 잘못 소개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조선'이 가리키는 나라는 어디인가? 정확히 말하면 '조선'은 국적이 아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외국인 등록증의 국적란에 적혀 있는 '조선'은 지역적으로 한반도 출신을 나타낸다. 일제 시대 이주한 재일 동포들은 해방이 되기 전에는 일제의 내선 일체 정책으로 일본인 취급을 받다가 해방 후 외국인으로 분류되었다. 1948년 일본에서 외국인 등록법이 생기고 외국인 등록증이 발급되었을 때 이들의 국적은 모두 '조선'이었다. 때는 남북한 모두 어떠한 정부도 수립되지 않았던 무렵이다. 1965년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교를 맺은 수 한국 국적으로 바꿀 수 있게 되었고 일본이 북한과 수교를 맺지 않은 관계로 북한 국적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70년대까지 한국 국적으로 바꾼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조석적'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기민 정책'을 쓰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진 사람들, 북한이든 남한이든 모두 고국인데 어떻게 한 쪽을 택할 수 있느냐는 사람들 그리고 반대로 양쪽 모두를 불신해서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은 사람, 북한에 친지들이 살고 있는 경우 등 정치적인 성향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현실적 조건들로 인해 이들은 조선적으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오히려 '조선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그후 남한과 북한의 위상이 엇갈리기 시작하면서 한국 국적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조선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한국 정부는 아직도 냉전논리를 적용하고 있다. 여권이 없는 이들은 일본 정부에서 발급해주는 '재입국허가증'으로 외국을 드나들지만 한국 방문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는 특히 재일동포 3세들이 겪고 있는 국적문제를 다루어 국적 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감독이 만난 성칠룡 씨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1996년 그는 조선적 여성인 이현선 씨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성씨가 평소 자주 가던 서울로 신혼 여행을 계획했지만 뜻대로 되지 못했다. 영사관에서 이씨에게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면 국적을 바꿀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여 년을 조선적으로 살아온 그녀는 그런 외압으로 국적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재일 동포 3세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국적 때문에 일본 땅에 살면서도 분단 고국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미 효력을 상실해버린 냉전 논리에 희생당하고 있는 조선적들의 현재와 이들의 간절한 통일 염원을 이야기하는 한편 한국 정부의 고집스러운 태도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감독소개

박성미

1968년 출생. 서울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부터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하다 1995년 일본유학 후 연출을 시작했다. KBS 수요기획 <퇴계와 산대놀이, 그 부활의 기록>을 제작 총괄했으며 현재 다큐-인에서 대표로 활동중이다.

인권해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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