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간의 고백

22일간의 고백

22일간의 고백의 스틸사진
감독
김태일
상영시간
50'
제작국가
한국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1998
색채
color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국내 상영작

시놉시스

제작 : 김동원대본 : 류미례촬영 : 권주현배급사 : 푸른영상 지령, 잠입, 탈출, 고무, 찬양, 통신, 회합 ……. 국가보안법상의 이 항목들이 다른 범죄와 가진 차이는 혐의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기본적인 인권이 유보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혐의를 받는 것은 곧바로 범죄 행위의 단정으로 비약되고 여론을 통한 판정은 증거의 개연성이나 법정의 최종 판단을 때론 부차적인 문제로 만든다. 1993년 김삼석·김은주 남매 간첩사건과 1995년 김동식 감첩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관련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안기부의 사건 조작과 인권 유린을 기록하고 있다. 이 작품이 제기하는 첫번째 문제는 결정적이거나 최소한의 증거도 없이 사건 당사자들에게 범죄 혐의가 부여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프락치를 동원한 안기부의 간첩 사건 조작 의혹과, 무리한 수사와 심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유발되었을 가혹 행위의 의혹을 자연스럽게 제기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끼워 맞추기식의 조작이 결국 정치적 용도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해 냄으로써 이 작품은 사건의 본질에 도달하려 한다. 군사 정권의 마지막 대통령 노태우의 비자금 사건 와중에, 그리고 안기부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이전에 터진 두 사건의 의도는 현재 우리가 소위 '북'과 '총풍'에서 확인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조작의 이러한 정치적인 본질을 밝히는 것만큼 중요한 대목은 22일간 폭력적인 상황에서 개인들이 겪었던 비인간적인 경험에 관한 증언이다. 조작의 심리학이라 부를 만한 이것은 뻔히 눈앞에서 진실과 거짓이 자리를 바꾸고 있음에도, 또 탈취당하는 진실이 바로 자기 자신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항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할 때, 지켜야 할 무엇이 자신에게 남아있는지 회의가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혐의를 찾아내도록 하는 상황의 전도가 가능해진다. 물리적인 폭력 없이도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들고 본의 아니게 삶이 왜곡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22일간의 악몽이 치른 값비싼 교훈이다.

감독소개

김태일

1963년생으로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국내 대표적인 독립영화 프로덕션인 '푸른영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첫 작품 <원진별곡>을 연출했으며 대표작으로 <분단을 넘어선 사람들> <어머니의 보라빛 수건> <풀은 풀끼리 늙어도 푸르다> 등이 있다.

인권해설

1993년 9월 13일 국가안전기획부는 반핵평화 운동연합 정책위원 김삼석 씨와 김씨와 여동생 김은주 씨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회합·통신·혐의로 구속했다. 안기부에 따르면 김씨는 1992년 1월 누이 동생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1974년 울릉도 거점 간첩단 사건의 재일 총책이던 북한 간첩 이좌영 등에게 포섭되어 국내 정세와 재야 운동권 실태 등을 보고하는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일본을 오가며 공작금 60만 엔을 받고 국내에서 간첩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貧だ 영장도 없이 체포되어 이틀 동안이나 행방을 모른 채 잡혀가 수사과정에서 구타 등의 가혹 행위와 성적 모욕을 당하며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다. 이 사건은 본인들이 혐의를 극력 부인하고 고문을 주장하면서 조작 시비에 휘말렸다.

이 사건은 안기부가 1993년 9월 국가안전기획부법 개정안 상정으로 권한과 위상이 대폭 축소되자 존재 의의를 부각시키기 위해 조작한 간첩 사건으로 분석된다.

1995년 10월 24일 충남 부여에서 군·경이 남파 간첩 김동식, 박광남(가명)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박광남을 사살하고 김동식을 생포한 '부여침투 무장간첩사건'이 발생했다. 김동식은 신문 과정에서 재야 인사 7명을 포섭하고, 이미 포섭된 박충렬(당시 전국연합 사무차장), 김태년(당시 성남미래준비위원회 위원장)에게 무전기를 전달하는 임무를 띠고 왔다고 진술하였다.

이에 따라 함운경, 우상호, 이인영, 허인회 등 학생 운동권 출신으로 각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4명을 간첩 김동식(본명 이승철)을 만났음에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국가보안법상의 불고지 혐의로 구속하였다. 뒤이어 박충렬 씨와 김태년 씨를 비롯한 50여 명의 재야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계속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증거도 없이 오직 김동식의 진술에만 의거해 재야 인사들을 구속한 뒤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자 다른 사건에 연관시켜 무리하게 기소하였고, 김동식의 기자 회견 형식으로 박충렬 씨 등의 혐의를 텔레비젼으로 중계함으로써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이 사건은 199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재야 세력의 정치권을 진출을 차단하고 보수층의 안정 심리를 자극하려는 정치적 계산에서 만들어진 안기부의 정치 공작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스틸컷

22일간의 고백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