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

행진

행진의 스틸사진
감독
파트리스 스파도니
상영시간
55'
제작국가
프랑스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1998
색채
컬러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해외 상영작
2014/04/24(목) 14:26

시놉시스

비디오 촬영 : 자크 벨링, 앙드레 데마르티니 외 1997년 봄, 유럽의 실업자단체들은 유럽정상회담이 열리는 암스테르담을 행해 유럽을 횡단한다. 영국 리버풀에 살고 있는 린다는 대처 정권 이루 늘어가는 실직자 중 하나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녀는 양육해야 할 자식이 있다.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실직자 대열에 함께 하고 있는 그녀는 영국 정부의 실직자 정책을 강하게 비판한다. 리버풀의 또 다른 실업자 JTPF은 구직 알선 회사에 붙어 있는 임시직 구인 광고 앞으로 카메라를 이끈다. 거기에 실업 수당만도 못한 임금의 구인 광고가 즐비하다. 파리의 실직자 운동가인 캐롤은 <행진>의 중심 인물, 전 유럽의 실업자들을 조직하면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그녀의 손에는 비디오 캠코더가 들려 있다. 캐롤은 유로마치의 중인이 되기 위해서 비디오 일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첫 작품이 될 <유로마치>에는 무주택자들의 건물 점거, 톨게이트 기습 점거 등 유럽 민중들의 투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캐롤 외에도 실업자 행진에 참여하고 있는 장 마리와 파리드 역시 비디오 일기를 촬영하면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고 있다. 영화 <행진>은 유로마치에 참가하면서 비디오 일기를 쓰고 있는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전례 없는 대장정을 담고 있다. 실업자들을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이 작품은 유로마치를 차가운 분석의 잣대를 들이대지도 않는다. 영화는 이들의 걸음, 노래, 토론, 기습 점거 모두가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성실한 노동이라고 일깨워준다.

감독소개

파트리스 스파도니

1953년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 8대학에서 영화석사과정을 마쳤으며 같은 대학에서 영화미학을 강의했다. 1996년 <미술...>로 칸 영화제 단편부문에 선정되었고, <Combat dans le siecle>을 제작했다. 현재 AC(반실업운동)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인권해설

실업 문제가 유럽 국가들의 최대 고민이 된 것은 이미 몇 년 전의 일이다. 유럽이 앓고 있는 각종 정치, 사회적 불안 현상, 신민족주의 대두 등의 문제도 높은 실업율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프랑스에서는 3천2백만 명의 실직자들이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전체 노동 인구에서 12%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그리고 이 실업 인구 가운데 1천 5백만 명은 정부 기구로부터 최소한의 생계 수당을 지급받고 있다. 전체 실업 인구 중 거의 절반이 되는 다른 실업자들은 전국실업보험청의 실업 보장 기금의 보호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이러한 공식적인 숫자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실업 수당도 지급받지 못하는 25세 이하의 청년 실업자들과 전례 없이 증가하는 임시적 노동자들을 추가해야 한다. 이러한 실업자들의 수는 대략 2천 7백만 명이나 되는데, 이들은 시간제 노동을 강요당하는 까닭에 주당 노동 시간인 39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따라서 법정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벌면서 근근히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실업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표면에 나타나긴 했어도 조직적인 실업자 운동이 가능하기 된 데는 수년 동안의 지속적인 활동과 투쟁이 있었다.

실업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최초의 조직은 노동총동맹이었다. 이는 프랑스에서 가장 커다란 노동조합 조직으로서 이념적으로도 대부분의 유럽 연방 내의 다른 조직들에 비해서 훨씬 더 급진적인 정치 노선을 따르고 있다. 노동총동맹은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실업자들을 조직해 나가고 있는 유일한 조직이며, 부분적으로 커다란 성공으로 거두어 오고 있다.

80년대 말 무렵에는 전국실업·임시직노동자운동(MNCP)이라는 실업자 운동 단체가 결성되었다. 동시에 한편에서 지방 교회 지도자들이나 생태주의자들에 의해서 실업자 운동 단체간의 연합적 질서가 모색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국적인 실업자 운동이 전개되었다. 실업자 단체간의 상호 부조와 정보의 교환 및 연대를 위한 조직인 일자리·정보·연대를 위한 연합(APEIS)은 파리 지역 내의 공산주의자들의 주도하에 하나의 조직을 결성하였다. 이들 공산주의자들은 실업자 조직들을 통해 온갖 사회 문제에 의해 고통 당하는 빈민들 사이에서 점차 많은 표를 획득하기 시작하던 국민전선(National Front)에 대항하여 투쟁을 전개하였다.

1994년이 되자 실업에 대항하는 연대 투쟁 조직인 '실업에 맞서 함께 행동하자!(AC)'가 출범하였다. 이 운동은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조합 운동가들(민주노동동맹의 좌익 그룹, 통합교원노조(FSU)를 포함한 10대 그룹과 연대·전진·민주주의(SUD)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그들의 주된 목적은 노동 조합과 실업 단체들, 사회적 차별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조직체들(특히 주거권연합(DAL), 전진 앞으로!!(DD!!) 그리고 무주택자위원회CDSL) 등), 그리고 소농총동맹과 인권동맹(Human Right League) 및 수많은 지식인들과 같은 다른 그룹들을 연합하는데 있었다. 1994년 봄, '실업에 맞서 함께 행동하자'는 프랑스 전역에서 '실업에 반대하는 행진'을 조직하였는데, 파리에서 폐막한 이 행사에는 거의 3만 명의 사람들(대부분이 실업자들이었다)이 운집하기도 하였다.

1994년의 벽두부터 실업 문제를 이슈로 한 공동의 행사와 캠페인이 벌어졌는데, 이 투쟁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차별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여 1996년의 실업수당에 대한 요구를 예고한 여러 가지 이슈들이 제기되었다. 1995년 봄에는 가사(家事)문제와 사회적 차별에 관한 또 한차례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렇게 축적된 역량이 1997년 봄에 열린 유럽 행진(European March)을 가능케 했고, 이 유럽 행진은 이후의 실업자 운동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행진에 참가한 수십 명의 프랑스 실업자들은 대략 2개월 동안 유럽대륙을 가로지르면서 상당히 귀중한 개인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행진 과정에서 실업자들은 유럽 각국의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지방의회 의원들 그리고 저널리스트 등과 가지 수많은 공식적인 회합과 논쟁에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업자 운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우선, 실업자 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실업자들 자신이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오랜 기간 실업 상태에 놓여 있던 사람들, 그리고 심각한 재정적 고통 속에서 허덕이던 사람들은 너무나 자주 쉽게 고립감을 느끼고, 자신이 사회적으로 그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를 위해 행동하고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결코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업자 운동을 통해서 그들은 하층 계급의 구성원들을 조직하고 동원함으로써, 이제 하층 계급이 아닌 다른 사회 계급들에 다가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노동 조합들이 대체로 지금까지 조직화에 실패해온 불안정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회 계층들을 실업자 운동세력들은 훨씬 더 효과적으로 조직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여있는 임금 생활자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시도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단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실업자들이 그들 스스로를 하나의 운동 세력으로 조직화함으로써 그들은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을 안겨다 주었다. 그것은 그들이 프랑스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조건의 전반작인 황폐화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이 운동은 유럽의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 하나는 분명히 사회적이고 민주적이며 사회 운동의 승리자로서의 얼굴이다. 이제 다가오는 몇 개월이나 몇 년 안에 이같은 미래의 비젼을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실업자들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양은숙 /인권운동사랑방 자원봉사자>

스틸컷

행진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