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스턴가의 비밀Family Name

얼스턴가의 비밀Family Name

얼스턴가의 비밀Family Name의 스틸사진
감독
미키 얼스턴
상영시간
89'
제작국가
미국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1997
색채
컬러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해외 상영작
2014/04/24(목) 15:24

시놉시스

대본:얼스톤·케이 게이너촬영:엘리엇 락켓세상의 모든 가족은 비밀을 갖고 있다. 그 비밀을 밝히지 않을 뿐이다. 얼스턴가에 깃든 비밀은 2백여년 이상 아무도 관심두지 않던 일이었지만 <패밀리 네임>의 감독 맥키 얼스턴에 의해 지상의 빛을 보게됐다. 맥키의 가족은 2대째 목사를 했다. 맥키 역시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2년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아들은 왜 집안의 기대를 저버렸을까? 맥키는 자기 가족의 뿌리를 찾아가는 이 다큐멘터리의 도입부에서 자신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한다. "아마도 내가 게이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렇다고 <패밀리 네임>이 동성애자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맥키 얼스턴의 관심은 자신과 성이 같은 흑인들을 향한다. 어떻게 흑인과 백인이 한 집안일 수 있을까? 그는 카메라를 들고 조상들이 살던 땅을 찾아간다. 선조들의 고향 노스캐롤라이나 동부에서 그는 얼스턴 종친회에 참석한다. 그리고 백인들로 이뤄진 그 종친회를 끝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흑인 얼스턴 종친회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같은 성을 가진 백인과 흑인 종친회가 몇 마일 떨어진 데서 열렸으나 서로의 모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맥키는 알스턴가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족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 과거의 상처를 후벼파는 행위임을 깨닫는다. 노예가 주인의 성을 따랐던 미국사에 따르면 흑인 알스턴은 백인 알스턴의 노예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백인 알스턴과 흑인 알스턴이 친척이 아니었을까? 가설은 신빙성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흑백 알스턴이 한자리에 모이는 감동적인 순간이 연출된다. <남동철/씨네21 기자>

감독소개

미키 얼스턴

인권해설

"온갖 어려움과 좌절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옛 노예의 자손들과 옛 주인의 자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언젠가 부정의와 억압의 열기로 가득찬 이 사막의 나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바뀔 수 있으리라는. 나의 네 어린 자식들이 그들의 피부색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그리고 또 나는 꿈이 있습니다. 어린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맞잡고 자매와 형제로서 함께 걸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20세기의 명연설 중에 명연설로 일컬어지는 맡니 루터 킹의 워싱턴 연설을 한번쯤은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의 염원에 대한 동감은 높은 수준의 수사학보다는 뿌리깊은 인종차별의 토양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싶다. 오늘날도 그의 연설에 가슴 떨림을 느끼는 인구가 상당수라는 것은 그가 갈아엎길 원했던 인종차별과 갈등의 골이 여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민권운동의 진원지인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의 질환을 호소한다. 미 사법부는 미국인 20명 중 1명은 일생에 어느 한 시기를 교정시설에서 보낸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흑인의 경우는 그 비율이 4명중 1명에 이른다(뉴욕타임즈 99년 3월 7일 보도). 노예농장이 가난과 마약에 빠진 범죄자의 감옥으로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만성적인 인종차별을 그 원인의 하나로 꼽는데 주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다음은 일상 속에 침투한 흑백분리의 심각성을 지적한 예이다. 미국내 한 미디어 조사기관에 따르면 TV 출연진의 인종구성과 그에 따른 시청률에 있어서조차 흑백차이가 크다. 즉 안방의 TV속에서 인종분리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틸컷

얼스턴가의 비밀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