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 Outskirt

변방 Outskirt

변방 Outskirt의 스틸사진
감독
피터 뤼지크
상영시간
95'
제작국가
우크라이나
장르
극영화
출시년도 1998
색채
흑백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해외 상영작
2014/04/24(목) 15:53

시놉시스

제작 : 레브 카그노대본 : 피터 뤼지크, 알렉세이 사마라도브촬영 : 니콜라이 이베이신 우랄의 한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필립과 그의 동지들은 민영화 이후 자신들이 자자손손(공산주의 이전에도) 경작하던 농장이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팔렸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땅을 되찾기 위해 동지들을 규합하여 '땅 되찾기 대장정'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거래에 연루되어 있는 마을 이장, 당 간부, 공무원 등을 차례차례 찾아가 그들을 응징하려 하지만 오히려 동지들이 죽거나 다치고 만다. 이들은 '병력'의 손실을 무릅쓰고 모스크바까지 진출해 이 거래의 피라미드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석유 자본가를 찾아낸다. 땅을 다시 되찾기 위해 준비해 온 돈을 건네는 이들에게 자본가는 코웃음을 치며 자신이 전세계에 이룩해 놓은 석유왕국의 건설을 역설한다. 거래는 물 건너간 것. 다음 장면, 이들의 분노한 눈동자는 불타는 모스크바와 교차된다. 최근 러시아 영화가 헐리우드화 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초기 소련영화에 대한 패로디를 통해 소련영화 전통의 자부심을 군데군데 드러내는 한편 인물설정에 있어 할리우드 스타일의 차용한 것도 돋보이는데 이것은 역으로 미국영화에 대한 조롱의 역할을 한다. 소련영화와 미국영화에 대한 경의와 조롱이 혼합되어 코믹하고, 의미심장하며, 슬프고 과격한 또 하나의 탈장르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영화 말미, 주인공들이 자본가를 응징하고 집단 농장으로 돌아가지만 결코 공산주의의의 부활을 염원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가 코믹한 패로디라고 하지만 러시아 사람들에겐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러시아의 현재를 가장 리얼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수많은 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한 러시아 네티즌의 촌평처럼 이 작품이 표현하려는 것은 변화된 체제 아래서 '시달리고 있는 민중들의 삶'이다. <인권영화제>

감독소개

피터 뤼지크

인권해설

소비에트 러시아의 농지는 스탈린에 의해 1929년부터 강제적으로 실시된 농업집단화 정책을 통해 집단농장(콜호즈)과 국영농장(소브호즈)에 귀속되었다. 농업집단화의 명분은 토지를 개인이 아니라 전 인민의 소유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토지는 국가의 소유가 되었고, 토지의 매매는 금지되었다. 그런데 60년대에 접어들어 집단적 농업경영이 생산성의 저하를 보이자, 농지의 소유형태를 다양화하자는 요구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농지의 소유관계와 관련해 구체적인 개혁정책을 실시하지는 않았다. 농지소유의 근본적인 변화는 소련 붕괴이후에 이루어졌다. 옐친 정부는 집권초기에 "토지개혁 실행에 관한 긴급조치"(1991.12.27)라는 대통령 포고령을 발표했고, 이어서 정부령 86호인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의 재조직에 관한 규정"이 이틀 뒤 발효되었다. 이로서 농지에 대한 소유권은 인민대표 소비에트에서 각 지방의 "토지개혁 및 토지자원 위원회"에로 이전되었다. 위의 두 포고령에 따르면, 1993년 1월 1일까지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의 토지와 재산은 구성원들에게 무상으로 배분되며, 농민들은 이 기간 내에 사적 소유, 집단?분할소유, 기타 소유를 결정해야 했다. 급진개혁가들은 농지의 탈국유화와 농업생산의 탈집단화를 통해 생산성의 향상과 생산의 증대, 농업부문에 대한 정부보조금 삭감 등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이들은 소비에트 정권에 의해 탈취된 토지를 농민에게 반환해야한다는 점에서 농지 사유화의 명분을 찾았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주장인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러시아의 농민들은 역사적으로 한 번도 자신의 토지를 소유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영농을 인정한 1861년의 농노 해방이후 반세기가 지난 20세기초에야 비로소 유럽지역 농가의 24%(약 2백40만)정도가 자영농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 중 절반은 1908∼1915년에 자신들의 토지를 다시 매각하고 임금노동자로 전락했다. 농지의 사유화는 급진개혁가들의 예상과 달리 농민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다. 94년 1월 1일 현재 전체 농장의 95%가 재등록을 마쳤는데 이중 자영농에게 불하된 토지의 비율은 불과 3.8%에 불과했다. 농민들이 토지소유를 꺼리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농장의 탈퇴에 따르는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독립 이후 예상되는 불확실한 이익보다 집단농장이 확실하게 보장하는 수입을 선호했다. 이러한 우려는 근거가 있다. 집단농장에서 독립한 소수의 농민들은 당초 약속되었던 저리융자나 세제혜택 같은 정부의 금융지원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정부는 1993/1994년의 농산물 수매이후 인플레이션 억제를 구실로 대금지불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상당수의 자영농이 파산하거나 커다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처럼 자영농민들은 집단농장에 잔류했더라면 분산되었을 고통을 혼자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러시아 농민들이 집단농장을 탈퇴하지 않는 것은 경험에 근거한 판단이다.

과거의 농민공동체 미르가 혹독한 자연조건에서 발생하는 재난에 집단적으로 대처하는 안전장치였다면, 소비에트 정권의 강압적 농업정책의 결과였던 집단농장은 현재 혼란스러운 러시아의 경제난국에 처해있는 농민들에게 안식처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농민들이 살아온 질곡의 역사가 이들을 이처럼 안전에 민감하게 만든 것이다.

<윤용선/외국어대 강사>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