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 마지막 전투 VIETNAM : THE LAST BATTLE

베트남 : 마지막 전투 VIETNAM : THE LAST BATTLE

베트남 : 마지막 전투 VIETNAM : THE LAST BATTLE의 스틸사진
감독
존 필거,데이비드 문로
상영시간
52'
제작국가
영국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1995
색채
컬러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해외 상영작
2014/04/24(목) 17:16

시놉시스

저널리스트 존 필거는 1975년 사이공의 미 대사관에 남았던 미국인들이 대사관 건물 옥상을 통해 헬기로 도주하는 것을 보도했다. 그가 20년 뒤 다시 베트남을 찾았다. 존 필거는 이 영화가 단순히 종전 20주년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저지른 추악한 죄악을 환기시키면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완성한 20세기 위대한 민족투쟁의 현재를 취재했다. 외국 자본에 대한 개방정책 때문에 베트남의 위대한 역사가 박제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염려가 스며들어 있는 이 영화는 베트남이 '그들 방식으로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감독소개

존 필거,데이비드 문로

인권해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대패한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물러난 뒤 인도차이나반도에 민족자주적인 정권이 들어서자 그 연쇄파급효과를 두려워한 미국은 남베트남의 고딘디엠 정권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베트남에 끼어들게 된다. 그러나 부패와 폭정으로 이미 베트남 민중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고 있던 고딘디엠 정권은 오히려 공산주의계열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베트남의 전민중들로부터 지지를 받게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결국 더 이상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고딘디엠이 미국의 묵인하에 사살됨으로서 그의 10년 독재정치는 마감된다. 그러나 이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면서 미국은 베트남에 대해 직접적 개입이라는 강수를 두게 된다. 1965년 베트남과 미국의 전쟁이 본격화 되면서 미국은 25개국에 참전을 요청하였으나 너무나 명분이 부족한 전쟁이었기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대만, 필리핀, 타이, 영국, 한국등 단 7개국으로부터만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나마 전투병력을 파견한 나라는 한국뿐이었으며 당시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던 박정희정권은 개발독재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 받는 조건으로 미국의 참전요청을 받아들여 미국 다음으로 많은 32만명이라는 젊음을 죽음의 계곡으로 내던지게 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은 1965년부터 68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면 미국의 요청으로 참전했던 한국군은 왜 그처럼 민간인학살을 저질렀는가? 여기엔 크게 두가지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첫째, 한국전쟁은 병사들에게 공산주의자는 죽여도 되는, 아니 반드시 죽여야만 되는 존재라는 극단의 반공이념을 각인시켰고, 이 병사들에게 베트남의 모든 인민들은 베트콩이거나 잠재적인 베트콩의 협조자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둘째, 미군이 주로 대량폭격을 이용한 주요거점 작전에 투입되었다면 한국군은 베트콩과 직접 대면할 기회가 많은 수색작전에 주로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이 베트남전에서 단지 우방 미국을 도우러 갔던 한국군을 가장 잔인한 군대로 기억하게 만든 것 아닐까. 그리고 미국은 이 점을 전략적으로 이용한 것 아닐까.

베트남정부와 한국정부가 조사한 공식 집계에 의하면 약 5,000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1975년 '미국친우봉사회'가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베트남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총 5개 성에서 80여 건의 피해가 발생하였는데 희생된 민간인 숫자만 해도 약 9,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김숙경/국제민주연대>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