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

4월 9일

4월 9일의 스틸사진
감독
김태일
상영시간
125'
제작국가
한국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2000
색채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국내 상영작
2014/04/24(목) 17:22

시놉시스

푸른영상 제작사법부의 살인재판이라는 오명만큼이나 역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남아있는 '인혁당(인민혁명당)'사건. 분단으로 인한 아픔들에 관심을 갖고 있던 감독은 3년 전 인혁당의 진실 찾기에 뛰어든다. 그러나 인혁당 관련자 대부분이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살아있고 잘못하면 오해소지가 많다는 등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인터뷰를 거절하면서 난관에 부닥친다. 하지만 감독은 새로운 길 찾기에 나선다. 이제 인혁당이 실재했느냐 아니냐보다는 그들이 추구했던 바, 바랬던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 감독은 작품을 찍으면서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왜곡 없이 이해될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갖춰져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작품은 풍부한 영상자료와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잊고 사는 세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러준다.

감독소개

김태일

인권해설

1964년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인혁당 사건'을 발표한다.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하던 학생들을 배후 조종했다는 '인혁당'. 그러나 당시 사건을 담당하던 검사(이용훈, 김병리, 장원찬)들은 어떠한 증거물도 없다는 이유로 공소를 기각한다. 언론에서 터져 나온 고문 조작 사실들, 일각에선 중앙정보부 해체론까지 나오게 했던 1964년의 '인혁당 사건'은 애초의 연루자 47명 중 13명에 대해서만 유죄가 선고됐고, 도예종에 대한 3년형을 최고로 일단락됐다.

다시 10년 뒤..... 인혁당 사건은 1974년 '인혁당 재건위'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유신반대운동이 한창이던 1974년에 학생들은 전국적인 학생데모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 시도들은 박정희에게 영구집권의 길을 열어놓은 유신헌법의 수호 무기인 긴급조치에 의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바로 '민청학련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발표에 따르면, '북괴'의 지령을 받은 '인혁당 재건위'와 일본 공산당계가 '민청학련'을 배후 조종했다는 것이다.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들은 '민청학련'과 함께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이 가운데 8명이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정은성/천주교 인권위원회>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