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으로: 자유를 향한 투쟁

문 밖으로: 자유를 향한 투쟁

문 밖으로: 자유를 향한 투쟁의 스틸사진
감독
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
상영시간
78'
제작국가
프랑스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2016
색채
컬러
포맷
HD
화면비율
16:9
자막
Korean
배급

상영정보

시민을 묻다
해외 상영작
2017/06/03(토) 14:50
다목적홀
2017/06/04(일) 13:00
마로니에공원

시놉시스

틴스코이 장애인 수용시설에 있는 장애 당사자들은 시민으로서 스스로의 삶을 꾸리고 내일을 그릴 권리를 박탈당했다. 법원에서 드물게 탈시설을 ‘허용’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틴스코이로 보내진 율리아와 카쨔는 법원에서 자신이 시민으로 살아갈 자격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만, 당사자로서 그들의 이야기는 재판장에서 쉽게 지워진다. 국가는 그들에게 덧셈 뺄셈 질문을 하고, 기억력 측정을 위한 시험을 보며 심지어는 자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 보이라고 하기도 한다. <문 밖으로: 자유를 위한 투쟁>은 율리아와 카쨔의 탈시설을 향한 투쟁에 초점을 맞춘다. 국가가 누구에게 시민으로 살아갈 자격을 부여하고 어떤 이에게서 그것을 박탈하는지, 그 과정에서 국가의 태도 역시 여실히 드러난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정현

감독소개

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 사진

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

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는 사진작가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의 사진 작업은 러시아, 노르웨이, 프랑스, 미국, 독일에서 알려져있다. 2009년에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 밖으로: 자유를 위한 투쟁>은 그의 세 번째 작품이다.

작품해설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 여기에서 지내길 원하지 않는다. 이 말들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율리아와 카쨔는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오랜 투쟁을 한다. 부당함을 이야기하며 저항하기도, 그들이 말하는 시민의 모습에 자신을 구겨 넣기도, 다시 주어지게 될 기회를 마냥 기다리기도 한다.

국가는 율리아와 카쨔의 존재를 지우고, 덮어버린다. 지워진 존재는 틴스코이에만 있는 건 아니다. 광화문 역사 지하에서 5년째 부양의무제,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한국에도 의사 앞에서 셈을 해보고,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수많은 율리아와 카쨔가 있다. 1급부터 6급까지, 등급이 매겨진 이들은 많은 곳에서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보다는 장애 1급, 3급과 같은 것으로 설명된다. 시설이 아닌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자립하고 싶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국가는 탈시설 정책이랍시고 또 다른 시설들을 만들어낸다.

국가는 끊임없이 묻는다. 시민이 맞냐고. 그렇다면 증명해보라고. 우리도 묻는다. 이 문밖으로 넘어가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느냐고.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인권해설

8년 전, 시설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그녀가 한글공부를 할 수 있는 노들야학에 왔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수를 셀 수 없었던 그녀에게 기억된 숫자는 없었고, 아주 어릴 때 장애인시설에 보내졌다고만 했다. 그렇게 처음 들어간 시설에서 몇 번을 옮겨져 3번째 시설에서 30대 초반에, 그녀는 노들야학으로 와서 처음 자신의 이름을 썼다. 몇 번의 한글 수업을 같이 했었다. ‘사’와 ‘ㅆ’이 막 헷갈릴 무렵, 그녀가 “우리 엄마는 ‘ㅅ’을 몰랐다”고 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 야학 교사와 엄마를 찾는 프로그램에 나가면서 정리한 자료에 의하면 아마도 어머니는 지적장애인이었을 거다.

 

그녀는 지금도 처음 시설에서 나온 친구와 함께 자립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야학에 처음 와서 이름을 또박또박 쓰고 한글과 수학이 아니면 공부가 아니라면서 복도를 뛰쳐나갔던 그녀는,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와 ‘ㅆ’을 헷갈려 한다. 누구보다 민중가요를 좋아하여 쉬는 시간에는 이어폰을 꽂고 복도에서 약간의 뭉개진 단어를 내지르듯 노래를 부르고, 혼자서 야학으로 찾아온다. 그녀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는 한 권의 책, 그 이상으로 정리될 만큼 깊고 넓은 다양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나와 당신과 같이 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시설에서의 삶, 그것은 개인의 서사를 거부당한 삶이다. 시설 안에서는 더는 어떠한 이야기도 생산되지 않는다. 반복되는 일과 속에 비슷한 날들이 지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나이’의 내가 되어있다. 그 삶의 시간이 통째로 부정당한 채 장애인들이 수용시설에 들어간다. 가족의 가난으로 돌보아질 수 없을 때, 혹은 그 가난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어 직접 시설로 들어가기도 한다. 혹은 그녀처럼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과정을 지나 시설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가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지켜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장애인수용시설 인강원에서 원장이 거주인을 폭행한 사태가 벌어지자, 2014년 3월 13일 국무회의에서 유사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 해결책을 지시했다. 그리고 “장애인 시설에서 인권침해와 비리가 일어나는 일이 오래 전부터 반복되고 있는데, 이런 고질적 관행을 이제는 끊어야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땠을까. 오히려 장애인수용시설의 수용인원은 2012년 553개 25,932명에서 2016년 626개 26,758명으로 증가했다. 심지어 신고시설 외 개인운영시설, 미신고시설은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았기에 조사에서 빠져있는데도 말이다.

 

‘좋은 시설’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2006년 최우수 부랑인보호시설로 보건복지부상을 받고 최우수 평가시설로 대통령상을 받은 대구시립희망원은 2016년, 내부의 끊임없는 신고를 통해서 범죄시설임이 밝혀졌다. 2010년 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309명이 사망하였고, 명확한 사인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책임자는 아직까지도 처벌받지 않고 있다. 장애인은 끊임없이 ‘보호’라는 미명 아래 배제되어 왔다.

 

그래서 요구한다. 더 이상 장애인을 배제하고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마련하라고. 이 대한민국 땅에 속한 시민의 범주에 장애인도 속한다면, 장애인수용시설을 (규모와 상관없이) 해체하고 그녀/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과 예산이 뒷받침된 “탈시설*국가계획”을 세우라고 말이다.

 

한명희 (노들장애인야학)

 

스틸컷

문 밖으로: 자유를 위한 투쟁 스틸컷1
문 밖으로: 자유를 위한 투쟁 스틸컷2
문 밖으로: 자유를 위한 투쟁 스틸컷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