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여인들戰場の女たちシグロ

전장의 여인들戰場の女たちシグロ

전장의 여인들戰場の女たちシグロ의 스틸사진
감독
세키쿠치,노리코
상영시간
55'
제작국가
일본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1989
색채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해외 상영작

시놉시스

일본은 아직도 침략전쟁의 책임을 부정한다. 그들이 침략하고 약탈한 아시아에 대해 무책임을 주장한다. 그것은 전쟁이었을 뿐 아시아 각지의 민중들을 착취하거나 강탈한 적이 없다고 역설한다. 수백만 명이 살해당하고 유린당했으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특히 성의 노리개였던 정신대 위안부는 아예 없었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사실이 밝혀지자 이제는 일본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장사꾼들의 몹쓸 짓이었다고 강변한다. 전쟁을 일으킨 전범인 천황은 제2차 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자살한 독일의 히틀러나 처형당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달리 미국의 비호 아래 천수를 누리고 얼마 전에 죽었다. 지금도 일본인은 천황을 그리워한다. 오늘의 젊은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은 여전히 제2차 대전의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침략 전쟁을 신성시한다. 정부도, 국민도,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역사를 외면한다. 과거를 망각하면 다시 과거는 되풀이된다는 신념을 가진 양심적인 여성감독 세키쿠치 노리코의 기록 영화인 은 일본군이 1942년부터 3년 반 동안 일본군이 침략, 점령했던 파푸아 뉴기니아 민중들이 반세기가 지나서도 침략의 상처를 깊이 안고 있음을 증언한다. 그 민중들은 총칼로 위협하는 일본군에게 자신들의 유일한 생존수단인 식량을 빼앗기고 노동력과 정조를 유린당했다. 사생아를 낳기도 했으나 어머니는 반세기동안 그 사실을 숨기다가 혹시 아이 아버지를 찾을까하여 인터뷰에 응한다. 여기서 파푸아 뉴기니아는 근대 제국주의 침략에 만신창이가 된 제3세계를 상징하는 하나의 소재에 불과하다. 적도 하에 놓인 그곳은 17세기의 네덜란드의 침략이래 수많은 서양 제국주의의 착취에 시달리다가 제2차 대전 중에는 일본군에게 점령당했고 1975년에 독립하기까지는 호주의 신탁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도 소위 대영 제국주의의 잔재인 영연방에 속해 있다. 일본군은 원주민들을 철저히 지배하여 그 의식까지 일본화 했다. 자신을 다나카로 부르는 남자는 지금도 일본군이 그들을 구했다고 믿으며 일본의 군가를 힘차게 불러대며 일본 춤을 춘다. 그러나 대부분의 원주민은 잔혹했던 일본군을 기억한다. 일본군은 매춘에 불응하는 원주민을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강간했다. 저항한 여성들은 수용소에 강제로 끌려가 처형당했다. 그러나 아직도 '지옥의 전장'으로 영웅시되는 뉴기니아 전투에 참전한 일본인들은 원주민에 대한 착취를 철저히 부정한다. 원주민은 더럽고 피부병도 많은데 어떻게 접했겠느냐는 기가 막힌 헛소리까지 한다. 위안부는 없었다고 잡아떼나 감독은 그 증인들을 찾아낸다. 대부분 한국여성으로 구성된 위안부들이 코스모폴리탄 호텔이라는 이름도 희한한 위안소에서 몇 마일이나 줄을 선 일본군인들에게 유린당했음을 밝혀낸다. 위안소에 근무했던 원주민은 위안부들이 다 죽었다고 증언한다. 이 영화는 1989년 동경 국제영화제에서 일본 카톨릭영화상 우수상, 1990년 멜보른 국제영화제에서 기록 영화 부문 대상을 받았다.

감독소개

세키쿠치,노리코

인권해설

-일본군 위안부

일본은 식민지 또는 점령지의 13-18세 사이의 여성들 약 10-20만명을 강제로 취업을 시켜준다고 속여 군이 직접 나서거나 그리고 민간업자를 시켜서 강제적으로 모집한다. 그리고 군의 엄격한 통제하에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가하면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고, 패전 후에는 이 여성들을 유기, 살상하였으며 기록을 없애 역사 속에 폐기처분하려 했다.

이제 한국,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에서 그 피해자들이 나서 과거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1990년 11월 국내에서 일본군 정신대 문제를 제기하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발족한다. 정신대 문제가 밝혀지면서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1991년 봄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과 더불어 신고센터가 개설되어 많은 사례가 접수되기 시작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되어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수요시위는 10월 23일로 238차를 맞았다. 수요시위 등 정신대 할머니들과 정대협의 용감한 투쟁으로 1996년 4월 52차 유엔인권위에서는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을 이행할 것을 권고하기에 이른다. 앞서 2월에는 ILO 전문가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성적 노예로 강제 노동을 금지하고 있는 ILO조약 제29호를 위반한 것이며, 일본 정부는 피해 여성들에 대한 보상을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게 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반성과 사죄는커녕 국민의 후원금으로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겠다고 나서는데 이러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에 크게 반발하여, 1996년 10월 18일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시민연대」가 발족한다. 온국민의 힘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

스틸컷

전장의 여인들 스틸컷1
전장의 여인들 스틸컷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