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세계에서 위계 구조란 시작부터 존재해왔다. 이 애니메이션은 경제의 비뚤어진 논리를 아이러니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감독소개
산티아고 보우 그라소 Santiago Bou GRASSO
인권해설
노동이 우리의 일상시간을 지배하는 모습을 상징하듯 애니메이션 은 시계의 클로즈업으로 시작된다. 오늘도 다시 시작된 노동의 하루는 시계 알람소리와 함께 어김없이 찾아온다. 한 남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조명을 켜고, 아침 식사를 하고, 옷을 차려 입으면서 출근 준비를 한다. 그는 직장에 가기 위해 차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 문 앞에 다다른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등장하는 조명, 식탁의 의자, 옷걸이 등 모든 사물은 인간의 모습이다. 사물화된 인간은 도처에 있지만 생명을 가진, 얼굴을 가진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의 노동이 만든 사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정작 인간은 지워지고 출처를 삭제해 버린 상품만이 펼쳐져 있다.
애니메이션 은 인간이 사물화된 세상을 보여 주지만 달리 보면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많은 인간의 연결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은 인간이 서로의 노동에 의지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지워 버린,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나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린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는 상품이 계속 만들어지고 그것을 구매할 능력이 있고 그래서 행복할 수만 있다면, 일을 하는 인간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다고 여겨지고 이들의 고통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현실에 눈을 뜨게 한다. 의 마지막 장면은 1시간이 넘는 영화만큼이나 6분의 여운이 길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삶을 유지시키는 노동이 아닌 삶을 파괴하는 노동의 현실이 눈앞에 보인다. 문득 페미니스트 레베카 웨스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힐 수 없다. 하지만 현관의 발판과 나는 다르다고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페미니스트로 부른다.”
인권해설
노동이 우리의 일상시간을 지배하는 모습을 상징하듯 애니메이션 은 시계의 클로즈업으로 시작된다. 오늘도 다시 시작된 노동의 하루는 시계 알람소리와 함께 어김없이 찾아온다. 한 남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조명을 켜고, 아침 식사를 하고, 옷을 차려 입으면서 출근 준비를 한다. 그는 직장에 가기 위해 차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 문 앞에 다다른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등장하는 조명, 식탁의 의자, 옷걸이 등 모든 사물은 인간의 모습이다. 사물화된 인간은 도처에 있지만 생명을 가진, 얼굴을 가진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의 노동이 만든 사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정작 인간은 지워지고 출처를 삭제해 버린 상품만이 펼쳐져 있다.
애니메이션 은 인간이 사물화된 세상을 보여 주지만 달리 보면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많은 인간의 연결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은 인간이 서로의 노동에 의지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지워 버린,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나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린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는 상품이 계속 만들어지고 그것을 구매할 능력이 있고 그래서 행복할 수만 있다면, 일을 하는 인간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다고 여겨지고 이들의 고통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현실에 눈을 뜨게 한다.
의 마지막 장면은 1시간이 넘는 영화만큼이나 6분의 여운이 길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삶을 유지시키는 노동이 아닌 삶을 파괴하는 노동의 현실이 눈앞에 보인다. 문득 페미니스트 레베카 웨스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힐 수 없다. 하지만 현관의 발판과 나는 다르다고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페미니스트로 부른다.”
호연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