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노래하지 않는가?俄們爲什麻不歌唱?

우리는 왜 노래하지 않는가?俄們爲什麻不歌唱?

우리는 왜 노래하지 않는가?俄們爲什麻不歌唱?의 스틸사진
감독
관 샤오렁
상영시간
92'
제작국가
대만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1995
색채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해외 상영작

시놉시스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으로 일본에 대항하던 중국에서 일본이 패망한 후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패주하게 되는데 대만에서 국민당 정권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1950년대 반공을 명분으로 해서 소위 白色恐怖風暴이라는 정치적인 테러를 자행하게 된다. 무자비한 테러와 학살로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해당했고 8000여명이 투옥당하는 끔찍한 인권유린의 상황을 당시 피해자들의 진술을 통해 그 진상을 공개한다.

감독소개

관 샤오렁

인권해설

-대만 현대사의 '그늘', 2·28사건과 백색 테러

15-17세기에 걸쳐 대만에 들어간 중국인을 원류로 하는 대만인을 본성인(本省人)이라고 부른다. 청일 전쟁을 계기로 일본의 식민지가 된 대만은 2차대전의 결과 1945년에 중국으로 복귀했으며 장개석의 국민당이 대만을 장악하면서 대륙에서 속속 '外省人'이 대만으로 들어갔다. 이런 배경에서 1947년 2월 27일, 본성인과 외성인의 충돌로 야기된 대규모 유혈사건이 바로 '2·28사건'이다.

타이페이의 야시장에서 단속경찰이 담배를 암거래하던 여성을 개머리판으로 구타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이에 항의하는 군중에게 발포함으로써 시민 1명을 사망케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항의하는 '본성인'의 시위는 삽시간에 전국에 확대되었으며 대륙에서 급거 증파된 장개석군은 이를 철저히 탄압, 2만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본성인'의 대규모 저항을 탄압한 국민당 정권이 대륙에서 중국공산당에 쫓겨나 중앙 정부를 대만으로 옮긴 직후인 1949년 5월에 계엄령 (이것은 1987년까지 38년간이나 계속되었다)을 선포하면서 대규모 '빨갱이 사냥'을 벌이는 데 1953년 말까지 계속된 이 백색 테러의 진상은 지금도 어둠 속에 감추어져 있다.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중반에 걸쳐 일어난 이 광적인 과정은 지금도 대만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1988년, 이등휘 정권이 출범한 후, '2·28사건'의 진상조사가 진행되었으며 백색 테러의 생존자들이 화소도(火燒島=정치범 유배지)에서 모두 석방되었다.

당시 국민당 정권은 정권 유지의 차원에서 체포 영장이나 절차없이 사람들을 끌어갔고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해 이들을 살해하고 자루에 담아 매장하거나 수장하였으며 심지어는 국방 의학원의 해부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발생했던 2·28 사변의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들의 증언을 듣는 이 영화는 화려한 영화적 수사를 배제하고 담담한 증언에 의존하고 있다. 관 샤오렁이 만든 이 영화는 우리에게 대만의 역사적 비극을 다룬 또 하나의 영화 <비정성시>를 떠올리게 만든다. <비정성시>가 당시의 사건을 극화해서 보여준 것이라면 이 영화는 역사 속에 실존하는 피해자들이 증언하는 진실인 것이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비정성시>를 떠올리는 또 다른 이유는 <비정성시>의 감독인 후 샤오센이 바로 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

스틸컷

우리는 왜 노래하지 않는가 스틸컷1
우리는 왜 노래하지 않는가 스틸컷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