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아Lucia

루치아Lucia

루치아Lucia의 스틸사진
감독
움베르토 솔라스
상영시간
161'
제작국가
쿠바
장르
극영화
출시년도 1969
색채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해외 상영작

시놉시스

움베르토 솔라스의 는 영화사 초창기의 걸작인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의 과 착상이 비슷하다. 1916년에 그리피스는 바빌론에서 노조 투쟁이 벌어진 현대 미국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편협함을 보여주는 여러 에피소드를 교대로 편집해 연출한 을 발표했다. 은 야심작이었지만 재앙으로 끝났다. 그러나 솔라스의 는 사정이 다르다. 이 영화는 세 개의 드라마로 나뉘는데 각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은 모두 '루치아'. 1895년 무렵, 30년대, 혁명 후의 쿠바를 배경으로 세 루시아는 서로 다른 계급과 환경에 처해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인간 해방을 꿈꿀 수 있는 것인지 관객에게 생각하게 한다. 물론 보다 는 훨씬 통이 큰 데다가 재미도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스페인 치하의 식민지에서 귀족으로 살아가던 루치아는 세상 돌아가는 것에 아무 관심이 없이 그냥 그냥 살다가 불행해진다. 스페인 앞잡이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것 때문에 자기 동생이 죽기 때문이다. 30년대가 배경인 두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루시아는 혁명가 알도와 사랑에 빠지고 마카도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경험을 하지만 알도가 죽은데다 바티스타 독재 정권이 들어선 쓸쓸한 현실에서 공장에서 일하며 알도의 애를 키우고 있다. 혁명 후의 쿠바가 배경인 세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루시아는 자기를 집안에 가둬두려는 남편 때문에 불만이 많다. 문맹인 그가 글을 배워 처음 남편에게 남긴 문장은 나는 노예가 아니다라는 것. 에피소드에 따라 멜로 드라마와 코미디의 형식을 적절히 나눠 배치한 솔라스의 연출력은 대중적이면서도 깊이가 있다. 60년대말의 쿠바 영화가 20년대의 옛 소련 영화와 맞먹을 만큼, 내용과 형식이 모두 앞서 있었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고전인 것.(제공 : 인디컴)

감독소개

움베르토 솔라스

인권해설

15세기부터 19세기말까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쿠바는 1899년 1월 1일부터 미국의 군사 점령을 받게 된다. 쿠바는 1902년 5월 20일 미국의 점령 체제로부터 독립하지만 헌법에 미국의 내정 간섭권과 군사 보호권을 허가한다는 내용을 담은 플렛 조항을 부칙으로 넣어야했다.

1934년 이후 정치적인 배후로 있던 바티스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54년 3월 10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 폭압 정치를 강화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청년 변호사 피델 카스트로는 바티스타 정권의 위법성을 법원에 제소하지만 기각되고 학생, 청년을 규합하여 1953년 7월 26일 동부 산디에고 데 쿠바에 있던 모카다 병영을 습격했다. 카스트로는 체포되었지만 1955년 5월 사면으로 석방, 멕시코로 망명하여 "7월 26일 운동"을 조직했다. 카스트로는 1956년 12월 82명의 청년들과 함께 요트 그람마호로 쿠바 동부에 상륙, 바티스타 군에 공습에도 살아남은 동지와 함께 마에스타라 산맥속에 들어가 게릴라전으로 정부군을 타격했고, 1959년 1월 1일 하바나에 입성했다.

1959년 수립된 혁명 정부는 농지 개혁 과정에서 미국계 기업의 토지를 몰수하여 미국과 대립한다. 1961년에는 사회주의 혁명을 선언하여 미국으로부터 경제 봉쇄를 받았고,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쿠바는 △외국 자본 도입 △직접 선거제 도입 △달러 소유 합법화 △개인 영업 완화 △농산물의 자유 시장 등을 허용하게 된다.

그래도 국민의 생활고는 해결되지 않았고 94년에 공공 요금을 인상한 직후 망명을 요구하는 시민과 경찰이 충돌하기도 했으며 뗏목을 이용하여 미국으로 향하는 난민이 3만명을 헤아렸다. 1995년은 경제가 성장하기도 했으나 빈부격차는 여전하다.

<최은아/인권운동사랑방 자료실>

스틸컷

루치아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