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마타みなまた

미나마타みなまた

미나마타みなまた의 스틸사진
감독
쯔찌모토 노리아키
상영시간
120'
제작국가
일본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1971
색채
b&w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해외 상영작

시놉시스

영화로는 보지 못했다 할 지라도, 선천성 불구인 딸을 목욕시키는 어머니의 사진은 모두의 기억에 선명하다. 는 일본 감독 쓰시모토 노리야끼가 미나마따를 소재로 만든 13편의 연작중 첫 번째 작품으로, 영사기를 둘러메고 일본 전역을 돌아다닌 '상영 활동가들'의 분투에 힘입어 백만명의 관객과 만난 다큐멘터리 백년사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작품의 출발점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생 운동을 한 경력 탓에 근근히 프리랜서 PD로 살아가던 37세의 감독 쓰시모토는 바닷가 마을 미나마따를 찾아간다. 1956년에 발생한 미나마따 지역의 괴질은, 1965년에 이르러 오히려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가고 있었지만 질병은 계속되고 있었다. 질병의 주범인 치쏘 비료 회사는 독성물질인 메틸 수은을 여전히 바다속으로 토해내고 있었고,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는 미명하에 정부와 자본의 공모로 진행된 이 기형적인 산업화 과정에서 수백명의 환자들은 서서히 죽어가거나 혹은 불구로 변해갔다. 비극적인 상황을 소재로 삼은 영화의 얼개는 단순하다. 어부들의 노동으로부터 출발해서 공해의 끔직한 결과를 담담히 그려내며, 투쟁 과정의 고민과 힘을 드러낸 후, 다시 노동의 세계로 돌아간다. 이 단순한 구조를 쓰시모토 감독은 기다림의 미덕으로 뒷받침하면서 인간적인 영상을 창조해낸다. 일련 번호가 붙어있는 환자들의 고백이 담담히 펼쳐지는 가운데 카메라는 관찰의 한계를 넘어서서 삶의 한 부분으로 전화해가며, 선천성 불구인 14세 소녀와의 만남에 이르러서는 작가와 인물이 형성하는 인간적 관계의 모범을 보여준다. 작품이 나온 지 25년, 세월은 흘러 미나마따 환자들에 대한 최종 보상 판결이 1996년에 완료되면서 비극적 상황은 끝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돈을 생명에 앞세우는 자본의 욕구가 존재하는 한 상황은 어디에서건 반복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당대의 현실에 개입함과 동시에 역사를 기록해내는 다큐멘터리 작가의 임무에 대한 쓰시모토 감독의 발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순히 병을 다룬 영화라면 나는 이 영화를 이렇게 찍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영화는 '자본'에 대한 영화이며, '자본'에 대한 투쟁의 영화이다." (1996년, 쓰시모토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감독소개

쯔찌모토 노리아키

인권해설

1956년 처음 확인된 미나마타병은 미나마타시의 질소 비료 공장에서 버린 폐수 가운데 포함돼 있던 유기 수은이 바다로 흘러들면서 어패류를 오염시키고, 이 어패류를 먹은 구마모토, 가고 시마현 지역 주민 2천2백60명이 수은 중독증을 일으킨 대표적인 환경 오염 사건이다.

미나마타병이 처음 발병된 것은 1952년 일본의 작은 어촌 미나마타 연안에서다. 당시 바다는 검붉게 변했으며 조개들은 썩어 들어갔고 물고기를 먹은 까마귀는 허공을 맴돌다 바닥에 떨어졌다. 1년 뒤 연안에서 잡은 물고기와 조개를 먹은 주민들이 손발이 뒤틀리고 혀가 마비되는 처참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수은 중독에 의한 미나마타병을 공식 인정한 것은 첫 발병으로부터 12년 후인 1968년으로 그 사이에 1965년 니가타에서도 제2 미나마타병이 집단 발생했다. 니가타 주민들은 공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는 일본에서 '첫 공해소송'이었다. 정부가 미나마타병을 인정한 968년 이후 소송건수는 급증했다. 1973년 구마모토에서 첫 승소판결이 나왔으나 치쏘사는 보상을 거부했으며 이후 최종 타결이 이루어진 것은 1996년이다. 공식 환자로 인정을 받지 못한 '미인정' 피해자 1만3천여명에 대해서도 일시금 2백60만 엔씩을 지급하는 대신 일체의 소송과 보상을 마무리 짓는다는 조건에서였다.

미나마타병 발병 41주년 되는 해인 지난 1997년 7월 29일, 구마모토현청은 조사 결과 미나마타만에 사는 어패류의 수은 오염치가 규제치 이하로 떨어지는 등 수은 중독으로 파괴됐던 환경이 거의 복원됐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1974년 오염 어류 확산 방지를 위해 미나마타만 중앙부에 설치했던 2천1백6m 규모의 그물을 23년만에 철거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최은아/인권운동사랑방 자료실>

스틸컷

미나마타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