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ゆきゆきて神軍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ゆきゆきて神軍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ゆきゆきて神軍의 스틸사진
감독
하라 카즈오
상영시간
122'
제작국가
일본
장르
다큐멘터리
출시년도 1987
색채
color
포맷
화면비율
자막
배급

상영정보

해외 상영작

시놉시스

병사로서 뉴기니아 전선에 파견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귀국한 오쿠자키는 과거 독립 공병대 36연대 웨이웍 잔류 부대에서 패전 직후에 2명의 병사가 대장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진상 규명에 나선다. 살아남은 상관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이실직고할 것을 강요하는가 하면 천황이 참혹한 전쟁의 책임자임을 주장하며 일본 전국를 누비고 다닌다. 이 과정에서 오쿠자키는 여러 번 투옥의 쓴맛을 본다. 하지만 먼저 죽은 동료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그리고 진상을 밝히겠다는 편집광적 집념은 굽힐 줄을 모른다. 그런 오쿠자키와 밀착하면서 제작한 에서 하라 카즈오 감독은, 오쿠자키의 맹렬한 투지 앞에 여지없이 드러나는 일본인들의 위선과 애써 자신들의 전쟁 범죄를 외면하려는 일본의 정서를 훌륭하게 고발하고 있다. 오쿠자키의 등뒤에서 그와 동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의 카메라는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먼저 카메라에 노출된 사람들의 태도에서 그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떳떳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반응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아무리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해도 이미 관객은 카메라에 노출되는 그들의 태도에서 진실을 읽어내고 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반응은 추적 과정에 동참하는 카메라의 참여이다. 인물들의 시선이나 행동을 통해 카메라의 존재는 영화 속에 명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관객이 단순한 구경꾼으로서가 아니라 또 다른 오쿠자키로서 영화속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실제의 오쿠자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객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해 내고 있다. 경찰에게 제지당하는 장면이나 상관을 찾아가서 추궁하는 장면에서 이런 점은 잘 나타나고 있다. 하라 카즈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오쿠자키와 함께 뉴기니아 전장의 진상을 규명함과 동시에 위선에 가득찬 일본인들의 죄악을 '진상 규명'하고 있다.

감독소개

하라 카즈오

인권해설

태평양 전쟁의 패전이 임박해서 일체의 지원이 끊긴 뉴기니아 전선 일본 잔류병들은 견디기 어려운 처참한 상황에 빠졌다. 굶주림과 말라리아, 동료들의 죽음은 잔류병들을 극심한 공포속으로 내몰았다. 태평양 전쟁 중의 뉴기니아 전선과 버마 전선이 병사에게 베트남 전쟁보다 더 가혹했다는 사실은 일본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백인을 '흰 돼지', 흑인을 '검은 돼지'라고 부르면서 먹던 일본병들이 아군 병사마저도 먹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오쿠자키 켄조 (奧崎謙三)는 제2차 대전 중 독립 공병대 36연대의 병사로서 격전지 동 뉴기니아로 파병된다. 이 부대는 패주를 거듭하면서 지리멸렬이 되어, 결국 살아 남은 것은 1천명 중 36명에 지나지 않았다.

오쿠자키의 경력은 화려(?)하다. 부동산업자를 '과실치사' 시켜 10년이라는 세월을 독방에서 보내는 동안 그는 자신의 진정한 표적은 천황임을 깨달았다. 출옥 후인 1969년 1월, 오쿠자키는 신년 하례 행사로서 황거(皇居-천황의 거처) 밸코니에 서서 국민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천황을 향해 "야마자키! 천황을 쏴라!"며 전사한 전우의 이름을 부르면서 새총으로 4개의 빠

찡코 알을 날렸다. 다시 독방행. 이 사건은 일본 패전 후 처음으로 천황의 전쟁 책임을 추궁한 직접 행동으로서 일본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 후 이른바 '황실 포르노 삐라'를 뿌리고 다시 독방으로 갔으며, 출옥 후에는 전 수상 다나까를 표적으로 삼았다. 이 영화는 그 무렵부터 약 5년에 걸쳐 촬영·편집된 것이다.

1983년에 오쿠자키는 과거 뉴기니아에서의 중대장 아들을 권총으로 쏘아 13년형을 받게되는데, 이 때 그의 표적에는 자민당 다나까 파 국회의원이나 남경 대학살 관계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서준식/집행위원장>

스틸컷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스틸컷